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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판단, 법원 판례를 보라

[과로死회] 과로와 업무상 재해 판결-정신질환, 뇌심질환

우리 사회는 여전히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 사회 생활을 정상적인 혹은 바람직한 사회 생활로 보고 있는 듯하다. '저녁이 있는 삶', '워라벨', '일 생활 쉼의 균형' 같은 말의 등장은 역으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과로사회인지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과로 기준은 주 60시간인데, 주 60시간을 일하면서 다른 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보다는 상황이 비교적 나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저출산의 원인을 야근으로 보고 저출산 대책으로 근로 시간을 줄이는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우리는 과로를 당연히 여기고 과로를 권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고, 이는 여러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다.

정신질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판결(2000년~2016년) 분석의 결과를 3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별표 3을 예시 규정으로 보아 다양한 정신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위 시행령에서 예시하고 있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적응장애, 우울병 에피소드 이외에도 공황장애(대법원 2014두2928, 대법원 2010두6243), 혼합형 불안우울장애(대구고등법원 2012누943) 등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둘째, 법원은 정신질환의 원인으로 해고 압박, 업무 변경으로 인한 스트레스, 실적 스트레스 등을 인정하고 있다. 법원이 과로만을 원인으로 보아 정신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 판결은 없다. 더 정확히는 과로만을 원인으로 업무상 재해를 주장한 사례가 없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하다. 원인을 한 가지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고, 대부분의 과로에는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예를 들면 해고의 전 단계에서 실적 압박, 업무 압박 등을 받으며 과로를 하고, 직장 내 괴롭힘의 일환으로 부당 전보, 보직 강등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업무에 부적응하거나 상사, 동료, 거래처와의 불화가 생기기도 한다. 법원은 전보 후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려고 과로한 사례(대법원 2014두2928, 대법원 2014두2935),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였음에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사례(대법원 2013두4637) 등에서 이를 원인으로 한 정신질환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셋째, 법원은 업무 변경과 업무 과중, 그 압박이 다른 스트레스 요인들과 겹쳐진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업무변경과 업무량 증가(서울행정법원 2015구합50092), 업무 변경, 업무 과다, 실적 압박(서울고등법원 2015누99), 업무 변경, 납기 단축, 초과 근로(대구고등법원 2014누6037), 공기단축 요구, 업무 과중, 인력 감소(대법원 2013두21793), 업무 변경과 실적 부담(서울고등법원 2016누37630), 업무 변경, 실적 압박(서울고등법원 2015누41311), 업무 변경, 부당 전보, 상사와의 갈등(대법원 2014두5262) 등을 원인으로 한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였다.

그렇다면 뇌심질환에 관하여 법원은 어떻게 판단해 오고 있는지 살펴보자. 2015년 행정소송 중 근로복지공단 패소 뇌심혈관질환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선, 법원이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평가하는 기준은 전반적으로 근로복지공단(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판단보다 넓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피면, 공단은 고용노동부 고시 및 근로복지공단의 지침을 절대시하여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반면, 판례는 '고용노동부 고시'를 예시규정으로 보아, 고시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라 할지라도 각 경우마다 상당인과관계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여 결정한다. 영업업무 담당자의 주말 산행 역시 불가피한 작업의 일환이라 보기도 하고(서울고법 2015누35668), 대기 시간 역시 업무의 연장으로 보며(대법원 2014두47822), 교대 근무 및 야간 노동은 주간노동만 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육체적, 정신적 부담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다(대법원 2015두49269).

또한, 공단은 과로 및 스트레스의 인정에 있어서 '노동 시간'에 매몰되어 경직된 판단을 하나, 법원은 노동시간 외에 인력 감축, 물량의 변화 등 다양한 지표로 평가되는 노동 밀도를 반영하여 업무의 증가를 인정한다. '스트레스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공단은 정량적이고 객관적 평가가 어려운 업무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관계 갈등, 감정 노동, 고용 불안 등에 대하여 고려하지 못하는 반면, 법원은 63세의 남성이 광산 자원개발 업무로 카메룬 출장근무 중 허혈성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 사건에서, 첫 국외 근무로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점을 하나의 노동 강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인정한 것이다(대법원 2014두41619).

의학적 측면에서도 공단은 기존 질환이 뇌심혈관질환 발생의 기여가 클 것으로 판단하여 업무관련성을 배제한 반면, 법원은 과로함으로 인해 질병 발생이 앞당겨 질 수 있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흡연과 음주의 경우, 공단의 경우 업무와의 관련성을 배제하는 요인으로 사용하는 반면, 법원은 흡연 및 음주가 있었으나 건강상태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기여도가 낮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 역시 급격한 업무 환경의 변화에만 치우쳐서, '만성적인 과로 상태'에 있어서는 장기간 힘든 일을 수행하여 '익숙해졌으므로 영향이 없다'며, 만성과로를 '적응'상태로 평가하는 사례가 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로 근무한 40세 남성에 대하여, 1심 법원은 급격한 업무 환경 변화 없이 충분히 적응하였으므로 과로를 인정하지 아니한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13구합62787). 이는 장기간 같은 업무를 수행할 경우, 오히려 과로가 누적되어 스트레스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장기간 동일 업무의 수행이 과로 및 스트레스를 배제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법원이 정신질환 및 뇌심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판단한 사례들은 공단에서의 판단보다 훨씬 다양한 요소들을 반영하여 그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사례에서 공단의 과로에 대한 평가가 편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바, 피재자(被災者)들은 행정소송을 또 치러야만 하는 불필요한 경제적, 정신적 고통을 안고 있다. 즉 과로에 대한 평가 자체가 편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한, 이 사회는 앞으로도 과로를 당연히 여길 것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와 공단의 지침에만 매몰되지 아니하고, 각 사건마다의 다양한 요소들을 판단하여 과로에 대하여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것이 과로를 권장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천지선, 전민경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산재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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