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법인세와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인상되었다. 법인세율은 22%에서 25%로 3%포인트 인상되었고, 소득세율은 38%와 40%가 각각 2%포인트씩 인상되어 40%와 42%가 되었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그동안 몇 차례 인상되었지만,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은 28년 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감세 조치를 부분적이나마 원상 회복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조치다.
최고세율 인상 이외에도 대기업 공제 감면 축소, 상속·증여세 신고 세액 공제 축소, 대주주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한 세율 인상, 배당 증대 세제 종료 등이 포함되어 전체적으로 담세 여력을 고려한 부자 증세의 성격을 띠고 있는 점도 이번 세법개정안의 장점이다. 서민층을 위한 월세 세액 공제와 근로장려금이 확대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고용 증대 세제 등을 포함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증세 규모와 증세 대상에서 아쉬운 세법개정안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있다. 증세 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세입 순증 효과는 연간 5.5조 원 규모로 예상되는데, 이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위한 소요 재원인 연간 35.6조 원의 15%에 불과한 수준이다.
증세 규모가 작은 것과 연관된 문제로 증세대상도 너무 협소하다. 법인세의 경우 과세표준 2000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3%포인트 세율 인상이 적용되는데, 2016년 신고 기준으로 해당 기업이 129개에 불과해 총 신고기업 64만5061개의 0.02% 수준이다. 손실이 발생하여 불가피하게 법인세를 납부하지 못하는 기업을 제외하고 계산해 봐도 증세 대상이 0.03%에 불과하다.
소득세의 경우에도 과세표준 3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만 2%포인트씩 세율 인상이 적용되기 때문에, 2015년 귀속 기준으로 대상 인원이 9만3000명에 불과하다. 근로소득자 기준으로 0.1%, 종합소득자 기준으로 0.8%만이 증세 대상이다. 증세 대상을 협소하게 잡은 것이 증세 규모가 빈약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나머지 공약 이행 재원은 세출 구조조정 95조 원과 초과 세수 60조 원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법개정안 발표 자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솔직하게 이야기 했듯이 세출 구조조정은 만만치 않은 과제이다. 불필요한 지출 축소는 당연히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과제이지만, 달성 여부가 불확실한 지출 축소가 핵심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될 수는 없다.
초과 세수도 중요한 재원 조달 방안으로 삼기에는 불안한 점이 많다. 다행히 5월 말까지 세수는 작년의 같은 기간 대비 11조 원 이상 더 걷힌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추세가 5년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지난 6년 동안의 예산 대비 세수 실적 합계가 마이너스였기 때문이다.
재원 마련에 특효약은 없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 재원 조달 문제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정공법인 증세가 핵심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어야 한다. 재정 지출 절감이나 초과 세수가 부수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될 수는 있겠지만, 핵심적인 방안은 정공법이어야 한다.
법인세는 증세 범위 확대해야
증세가 핵심적인 재원 조달 방안이 되기 위해서 우선, 법인세 증세 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근 조기 공개된 2016년 신고 자료를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이명박 정부의 감세 조치의 효과는 약 8.6조 원으로 추정된다. 달리 표현하면 법인세율을 전체적으로 원상 회복한다면 8.6조 원의 증세 효과가 기대된다는 의미이다.
과세표준 구간별로 원상 회복 효과를 계산해 보면, 과세표준 2억~200억 원 구간의 원상 회복 효과가 5조 원이고, 과세표준 200억 원 초과 구간의 원상 회복 효과가 3.6조 원으로 추정된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이중에서 2000억 원 구간만 원상회복하는 방안이니, 증세 효과가 3.6조 원에도 못 미치는 2.6조 원으로 계산된 것이다.
세수만 줄고 그 효과가 불투명했던 이명박 정부의 2009년 감세 조치를 원상 회복하는 차원에서 과세표준 2000억 원 초과 구간이 아니라 최소한 200억 원 초과 구간을 증세 대상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나아가 증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과세 표준 2억 원 이상에서 200억 원 이하 구간의 세율도 일정 정도 인상해야 한다.
경기가 어려우니 법인세를 올리면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데, 법인세는 이익이 발생해야 내는 세금인 것을 간과한 주장이다. 기업이 어렵다는 의미는, 달리 표현하면 손실이 발생했다는 의미인데, 그러한 기업은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법인세율을 올린다고 손실이 발생한 기업의 부담이 증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기가 좋지 않고 기업이 양극화 될수록, 법인세 증세는 더 필요하다. 손실이 발생하는 기업에는 법인세를 내지 않도록 하는 것 이상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 산업 구조조정을 하려해도 재원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기에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이익을 내고 있는 기업들이 좀 더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 강화 시급
소득세는 세율 인상보다 더 시급한 과제가 제대로 과세되지 않는 자산 소득에 대한 과세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식 양도 차익이나 주택 임대 소득 과세인데, 소득이 있으면 과세를 한다는 원칙이 자산 소득에 대해서 잘 지켜지지 않는 문제를 시정해야 한다.
주식 양도 차익에서는 대주주의 경우 세율을 20%에서 25%로 올리는 방안이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되었지만, 주식 양도 차익과 부동산 양도 차익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이 정도 세율 인상은 충분하지 않다. 다른 소득과 마찬가지로 누진세율로 과세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과세 대상이 되는 대주주 범위다. 현행 25억 원인 대주주 범위가 종목별 기준임을 고려하면 좀 더 빠른 속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기준이라면 100억 원을 4종목에 나누어 25억 원씩 투자하고 있으면 대주주에 해당하지 않아, 양도 차익에 대해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대차대조표상 가구평균 순자산 규모 3억~4억 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종목별 25억 원 기준은 지나치게 높다. 흔히 주식 양도 차익 과세 대상을 확대하자고 하면, 개미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반론을 펴는 경우가 많은데, 종목별 25억 원이 개미투자자의 기준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종목별 25억 원의 기준은 2018년 15억 원, 2020년에 10억 원으로 단계적으로 낮춰질 예정이었다. 이번 세법개정안에 추가적으로 2021년에 3억 원으로 낮추는 방안이 포함되었는데, 범위를 확대하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주택 임대 소득 과세도 앞당겨서 시행해야 한다. 2000만 원 이하의 소규모 주택 임대 소득 과세가 유예되면서 전체적으로 주택 임대 소득 과세가 유명무실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0만 원 이하의 소득을 얻는 사람이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상황에서 3000만 원의 소득을 얻는 사람이 성실히 종합 소득으로 높은 세율의 세금을 부담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세청장에 대한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4만8000명만이 주택 임대 소득을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자료상 다주택자가 187만 명임을 고려하면 극소수의 사람만이 주택 임대 소득을 신고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건강보험료 개편안이 확정되어 건강보험료 부담 문제가 해결된 점을 고려하면 더 이상 과세 일정을 미룰 명분도 없다. 당초 2017년부터 과세 예정이었던 주택 임대 소득에 과세 방안이 2016년 하반기에 논의될 때, 마지막 반대 사유가 건강보험료 부담이었다. 그런데, 올해 초 개편된 건강보험료 부과 체계에서는 분리 과세 소득은 건강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소규모 주택 임대 소득의 과세 방법은 종합 과세가 아니라 분리 과세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료 이슈가 사라진 것이다.
보유세, 최소한 공시지가로 과세해야
이번 세법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대폭 후퇴시킨 부동산 보유세는 부분적이라도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세율을 대폭 인하하고 공정 시장가액 비율 상승을 중단시켰는데, 세율은 일단 그대로 두더라도 최소한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유세를 과세해야 한다.
현재 보유세(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는 실거래가도, 공시지가도 아닌 가격에 부과한다. 공시지가에 60%~80%에만 보유세를 부과하는데, 이 비율이 공정 시장가액비율이다. 이 비율이 도입될 때의 계획에 따르면 2017년이면 모두 100%에 도달해 있어야 했다. 공시지가는 실거래가와는 다르게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라고 보면 최소한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유세를 부과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유한국당은 담뱃세가 주로 서민들이 부담하니 담뱃세를 내리자는 주장을 하는데, 그러한 접근보다는 담뱃세 인상에 대응되는 세금, 즉 주로 부자들이 내는 세금을 같은 비율만큼 올리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다.
부자들이 주로 부담하는 세금을 담뱃세 만큼 인상하는 차원에서 보유세의 부분적인 원상 회복을 더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나아가 보유세 원상 회복은 증세로 확보되는 세수도 상당하지만, 자금을 좀 더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한다는 점에서 성장 동력을 회복하게 하는 의미도 있다.
이렇게 법인세, 소득세, 보유세가 정상화된다면,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은 안정적으로 확보될 것이다. 대략 소요 재원의 절반 이상이 정공법인 증세로 확보된다면, 지출 축소와 초과 세수를 통해 나머지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전체 계획의 신뢰도도 올라갈 것이다.
한편, 법인세, 소득세, 보유세의 정상화는 공평 과세를 확립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세금을 공평하게 부담하고 있다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확산된다면, 이것을 기반으로 추가적인 증세도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 복지국가 재원 기반을 만든 정부가 되길
한동안 북유럽에서 온 악마 사장님이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회자되면서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는 열망이 확산된 적이 있다. 대선 과정을 거치면서 중부담 중복지와 같은 표현이 널리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북유럽과 같은 복지국가, 그 중간 단계로 중부담 중복지로 가려면 누군가는 재원 마련에 대한 초석을 놓아야 한다. 공짜 점심이 없듯이 재원을 마련하지 않은 복지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인기 없는 정부라면 이와 같은 증세는 절대 시도해 보지도 못할 일이겠지만, 지지율이 70~80% 넘나드는 문재인 정부라면 충분히 도전해 볼 수 있는 과제이다.
본격적인 증세를 추진한다면 단기적으로 인기를 좀 잃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0년 후, 20년 후에는 분명 '헬조선'이 아닌 '헤븐조선'이 되는 기반을 만든 정부로 기억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과감하고 솔직하게 포용적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는 증세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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