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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명, 이유도 없이 갑자기 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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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명, 이유도 없이 갑자기 죽고 있다

[과로死회] 신자유주의적 죽음에 맞서는 법, 과로죽음의 재정치화

'원래 지병이 있었다'

한해 평균 300명 여명이 과로사로 쓰러진다. 대략 하루에 1명꼴이다. 이 수치는 산재승인률이 2000년대 중후반 이후 20%대로 뚝 떨어진 것으로 매우 제한적인 수준의 실태를 담고 있다. 산재 신청을 못한 경우, 산재 신청조차 할 수 없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과로로 인한 사망자의 수는 한해 천 단위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과로로 추정되는 돌연사에 대한 기사는 연일 이어진다. 휴대폰 하청업체 노동자의 돌연사, 택배기사의 연이은 돌연사, 우체국 집배원의 잇따른 돌연사까지! 그야말로 '이유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이다. 위 사례만 놓고 보면 과로죽음이 특정 직업에 한정되는 것 같지만, 정부 부처 사무관의 돌연사, 대기업 휴대폰 연구원의 연이은 돌연사, 대형게임퍼블리셔의 잇단 돌연사, 지방법원 판사의 돌연사, 방송사 PD의 돌연사를 함께 놓고 보면 과로죽음은 직업을 불문하고 발생한다.

그간 과로로 인한 죽음, 일명 과로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주변화되어 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먼저 지적할 문제는 죽음과 업무와의 연관성이 없다는 논리("사망사고와 과로를 연관 지을 근거는 없다")와 죽음의 원인을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논리("사망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원래 지병이 있었다")가 난무한다는 사실이다. 두 논리는 돌연사가 발생했을 경우 사측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이자 가장 강력한 대응논리다. 이렇게 과로로 인한 죽음을 개인 선호․선택의 결과, 개인적인 사유로 설명하는 논리들(과로죽음의 탈정치화 전략)은 장시간 노동의 구조적 위험을 은폐하는 주범이다.

과로와 죽음 간의 연관고리를 드러내는 일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연관성을 둘러싼 각축이 치열한데, 자본은 '배째라'는 식으로 "(출퇴근 일지를) 보여줄 의무가 없다", "외부인은 들어 올 수 없다"며 정보 접근을 차단한다. 정보의 불평등한 조건은 과로죽음을 개인화하는 자본의 입장만을 강화한다. 이러한 가운데 장시간 노동의 폭력성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고, '이유도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죽음은 연이어 양산되고 있다. '업무와의 연관성 없음'이라는 장막을 거둬내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개입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관련 조치로 망자와 관련한 출퇴근 일지 등 돌연사의 원인 규명을 위한 정보를 유가족 요청시 공개할 것, 입증 책임을 유가족‧사측‧노측‧정부가 공동으로 질 것 등이 최소한으로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과로로 인한 죽음은 언제나 개인 탓으로 돌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른 문법으로 읽어야 할 장시간 노동

최근 노동의 과정이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노동 시간과 관련해 보면, 이전의 노동 시간은 작업장에 제한된 형태였다면 현재는 작업장 안팎을 가리지 않고 연장된다. 장시간 노동을 다른 문법으로 읽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변화에는 크게 성과 장치 요인과 기술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성과 평가는 노동자가 작업장을 벗어나도 시시각각 매겨진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롭다고 하더라도 실적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계측되지 않는 노동 시간의 양도 상당하고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신체 부하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만만치 않다.

한편 디지털 모바일 기술은 노동과 비노동의 경계를 허무는 핵심 요인으로 노동의 과정을 빠르게 바꿔내고 있다. 노동 시간도 작업장에 구속적이었던 형태에서 탈공간화되고 있다. 신기술이 매개하는 새로운 노동의 세계에서 노동의 탈공간화는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다. 여기서 노동자는 작업장을 벗어나도 일의 네트워크에 묶여 있게 된다. 이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직장인들의 공감 신조어 1위가 '카톡감옥', '전자발찌', '새벽불림'이었던 이유다. 이렇게 성과 평가, 스마트워크, 플랫폼 노동 등 새로운 장치들이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에 덧대지면서 과로사의 위험은 높아지고 있는 게 오늘날의 노동 현실이다. 동시에 노동 시간이 탈공간화되면서 과로죽음을 규명하는 일이 곤란해지는 점 또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작금의 과로사는 만성화된 장시간 노동의 위험에 신자유주의적 성과 장치, 기술 장치 같은 새로운 위험이 덧대지면서 나타나는 문제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과로사의 유형을 나눠보면, 전형적인 형태가 장시간 노동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사망하는 경로다. 이를테면, 휴대폰 제조업체 노동자의 돌연사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발전주의적 형태의 과로 사망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장시간 노동에 노출된 상태에서 실적 압박 같은 방아쇠 효과가 작용해 사망하는 경우가 눈에 띠게 늘었다. 이를테면, 게임노동자의 돌연사나 보험·증권 등 금융노동자의 돌연사를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산재 인정 기준에 못 미치는 노동 시간임에도 실적 압박 같은 업무의 질적 요인으로 사망하는 사례도 포함될 수 있다. 핵심은 실적 압박․성과 평가 등의 개별화된 경쟁 장치는 턱밑까지 차오른 과로사의 위험을 '격발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적 과로사의 특징이다.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형태로 양적 접근(시간량)을 넘어서 업무의 질적 특성을 포착하려는 관점과 대응이 요구된다. 이에 대한 관점의 부재는 '길이'만으로 포착할 수 없는 후자의 형태를 방치하는 의도치 않은 문제를 낳게 된다.

탈정치화된 과로죽음의 재정치화

마지막으로 과로사에 대한 통념 몇 가지를 반박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과로사를 특정 직업이나 특정 지위, 특정 연령이나 특정 계층 등 특정한 집단만의 비극이라는 생각은 노동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통념이다. 그 통념은 자본이 읊어온 개인환원론, 탈정치화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로사는 성별, 나이, 지위, 직업을 불문하고 발생한다. 위험에는 예외가 없다. 물론 과로사 위험은 하층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통할 것이다. 그렇지만 과로사는 과로사회가 잠재한 일반적인 위험이다. 그 위험은 개별화된 성과 장치가 덧대지면서 심화되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과로사를 흔치 않은 일이라고 보는 것 또한 탈맥락적인 통념이다. 과로사는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위험이다. 예외적인 일이라는 통념 또한 자본이 읊어온 예외주의 담론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로사의 발생 빈도를 보면, 결코 적지 않다. 과로사는 야특이 일상인 우리네 삶의 일상화된 위험이다.

과로로 인한 죽음이 연이어 발생함에도 사회적 인식은 부재하다. 심신이 '나약한·허약한' 사람의 문제로 보거나 “건강 관리를 못했다”, “원래 건강이 좋지 않았다”거나 개인이 감내해야할 몫으로만 여긴다. “건강 관리 잘 해야지”라는 대처도 마찬가지다. 진단이나 대안이 '자기관리' 담론, '감내' 프레임의 언저리를 멤돌고 있다. 과로죽음을 개인의 특수한 문제로 타자화하는 화법들이다. 과로사를 예외 상태의 우연적적인 비극이라고 보는 예외주의적 시선야말로 과로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편향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자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언어가 어느 정도로 침투되어 있는지를 말해주는 증거일 것이다.

과로죽음은 주변적이거나 개인적인 비극이 아니다. 과로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우리의 현재를 조망하는 결정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과로사가 개인적인 죽음으로 유통·소비되는 사회적 맥락, 다시 말해 사회구조적 위험의 산물로 연결되지 않는 또는 못하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비판적 분석, '과로죽음의 재정치화'가 필요한 대목이다.

김영선 노동 시간센터 연구위원은 과로사예방센터와 무료노동신고센터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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