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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보류하고 평화에 집중하자!

[이충렬의 정권+교체] 문재인 민주정부의 신조선책략

1. 신조선책략이 필요하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민주정부는 대북정책을 포함한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새로운 프레임을 세울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국가이익과 한반도의 평화를 주체적 관점에서 추진할 국가대전략이 필요하다.

1880년 일본에 파견되었던 수신사 김홍집은 청나라 외교관 황쭌센(黃遵憲)이 쓴 조선책략을 기증받아 조선에 갖고왔다. 이 책은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을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의 남진에 대한 방어책으로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하여 자체의 자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청나라의 관점에서 한반도의 국제정세를 해석한 책이었다. 세계정세와 국가전략에 대해 조선의 지도층이 받은 최초의 충격이었다.

지금 우리는 세계패권국 미국을 겨냥하는 ICBM 개발에 목숨을 거는 북한과 전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 한반도 상공에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세계 1,2위 패권국의 기싸움이 팽팽히 전개되고 있다.

2. 한미동맹은 산소, 한중무역은 쌀

대한민국은 미국이 없었다면 6.25전쟁으로 나라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고, 전쟁 후 가난을 극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세계 5대세력(미중일러유럽)이 부딪치는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존재조건이었다.

냉전 시기 우리는 미국에 줄섰기 때문에 오늘의 세계체제에서 후진국의 롤모델이 되는 중견국의 위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대한민국에게 있어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냉전이 소련의 해체로 끝난 이후 우리는 새로운 친구를 얻었다. 개혁·개방으로 노선을 전환한, 마르크스(馬克思)주의를 국가기본이념으로 삼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고 드디어는 세계의 시장으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받은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다. 오늘날 대중국 무역은 미국과 일본을 다 합친 것보다도 많고, 대중국 흑자로 우리는 다른 나라와의 적자를 다 메우고도 더 많은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중국시장에 더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중국시장없는 한국경제의 앞날을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한중무역은 대한민국의 생존에 '쌀'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소와 쌀 중에서 어느 하나만 우리 임의로 취사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둘을 다 안고가야 한다. 문제는 산소와 쌀이 팽팽하게 세력대결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사드 설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은 한반도에서 극렬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 기싸움은 앞으로 한 세기이상 벌어질 패권다툼의 서장에 불과하다.

3. 원교근교(遠交近交)의 신 전략

전쟁과 외교전략의 고전적 개념으로 원교근공(遠交近攻)이라는 용어가 있다. 냉전 시기 대한민국이 선택한 노선이 바로 이것이다. 한미군사동맹으로 소련·중국·북한의 공산주의와 대결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대결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한국의 안보보수세력(극우세력)은 지금도 반중국 반북한 노선을 중심에 두고 북한의 레짐체인지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보수세력 내부에서도 시장보수세력을 중심으로 이에 반발하는 세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싸드의 졸속배치로 중국의 반발을 산 결과 중국으로부터 지금까지 받은 경제적 손실이 약 15조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다.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외교전략을 폐기하고 원교근교(遠交近交)의 신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미·중·러·유럽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과도 우호선린관계와 협력관계를 심화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나라의 동아시아 국가컨셉은 '평화촉진자'를 지향해야 한다.

원교근교(遠交近交)란 말은 쉽지만 실천은 매우 어렵다. 현대사에 외교지혜를 발휘한 2개의 사례를 들고자 한다.

1978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수립할 당시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문제가 쟁점이 되었을 때, 덩샤오핑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서로 영유권 주장을 해봤자 문제가 해결되겠는가. 차라리 서로의 주장을 현 상태로 봉합하자. 한 백년쯤 뒤 후손들이 우리보다 더 좋은 해결방안을 만들 수도 있지 않겠나." 이 당시 중국 외교전략의 핵심개념은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였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뒤 중국은 대국굴기(대국이 일어서다라는 뜻)로 외교전략을 바꾸었다. 2012년 중국 최고지도부는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공식적으로 제기하였다.

베트남은 미국과 잔혹하고도 긴 전쟁을 치른 나라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을 견제하고 경제건설을 도모하기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하였다.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이 국제규범과 인권정신에 위배되는 잔혹한 행위를 자행한 것에 대한 증언들이 매우 많다. 그런데 베트남은 한국에 어떠한 배상청구나 사죄요구를 하지 않았다. 반대로 한국과의 우호적 관계 유지와 자본의 유치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들이 과거의 역사를 모르거나 잊은 것은 아닐 것이다.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현재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덩샤오핑의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에서 우리는 원교근교(遠交近交)의 훌륭한 사례를 보게된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친미·친중과 용미·용중의 실용적 자세를 취하는 것이 될 것이다.

4. 통일은 백년쯤 보류하고 평화에 집중하자

우리 헌법은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 역시 조국통일을 목매어 외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통일에 대한 염원을 백년쯤 보류하고, 전쟁을 끝내는 평화체제 구축에 전념하자'는 제안을 하고싶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남북한에서 통일 이야기만 나오면 주변 강대국이 너무 민감하게 경계한다. 한반도에 통일국가가 들어선다면 역내의 세력균형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단순히 동아시아만의 문제가 아니라 초강대국간의 세계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뇌관이 된다.

통일을 부르짖을수록 통일에 장애물만 쌓이는 역설이 일어난다. 어느 강대국이 겉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한다고 말하겠나? 그러나 그들의 속셈은 복잡하기 짝이 없다.

사실 분단과 내전은 일본의 몫이여야 했다. 그런데 한반도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강대국으로부터 지워진 이 운명을 '우리민족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다. 독일은 전범국이니까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억울하지만 주변 강대국들의 동의와 협력 속에서만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게 되어있다.

두 번째 이유는 통일을 부르짖을수록 평화가 위협받는 현실 때문이다. 남북한이 통일을 자꾸 거론하는 이상 체제를 달리하는 남북한 사이에 하나는 결국 소멸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적 전제가 발생한다.

지금 남북한은 공식적으로는 전쟁 중이다. 남북한 사이에는 정전협정조차 없다. 미국이 중간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고 있는 꼴이다.

독일통일도 통일을 지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손쉽게 이뤄진 역설의 측면이 있다. 남한도 북한도 체제 인정 없이 전쟁상태에서 통일을 부르짖는 건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명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전쟁리스크를 줄이고 평화체제를 더 빨리 만들기 위해서는 '통일에 대한 열망을 백년쯤 보류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주변 강대국에 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면서 남북한이 교류나 경제협력을 강화하여 실질적인 경제공동체로 빨리 나아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5. 남북정상회담보다 남북미 3자정상회담을 추진하자

미국이 한반도문제에 외세인가? 당사자인가? 북한은 남한에게는 '우리민족끼리'하자고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바뀌면 '통미봉남'을 외치면서 '미국하고만' 상대하려고 한다. 한반도 정세가 '우리민족끼리' 해결될 문제인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한반도문제에서 외세로 배척할 것이 아니라 해결과정의 당사자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사례가 있다.

1978년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는 이집트 대통령 안와르 사다트와 이스라엘 총리 메나헴 베긴을 대통령 휴양소인 캠프데이비드에 초청하였다. 당시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0년째 전쟁 중이었다. 무려 13일간의 피말리는 협상 끝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상호인정을 토대로 평화적 관계를 맺는 역사적 협정에 도달하였다.

문재인 민주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북정책 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의 예를 이어받아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보다는 미국이 포함된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남북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결국 미국과 중국이라는 주변 패권국이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변 강대국이라고 하지만, 좁혀서 보면 미국이고 그중에서도 미국의 보수세력이다.

미국의 안보보수세력은 중국을 포위하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미사일방어망 구축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때마침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그들에게 너무나 좋은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안보보수세력이 보기에 북한이 지금처럼 해주는 것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보수세력의 본산인 공화당 출신의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을 전후하여 미국 대통령 누구도 언급한 적이 없었던 놀라운 표현을 사용했다. "기회가 닿으면 김정은과 만나 햄버거를 먹으면서 협상하고 싶다" 든지 "그와 만날 수 있다면 나는 영광으로 생각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당장은 북한의 핵과 ICBM으로 한반도정세는 엄중하겠지만, 정세가 바뀌면 북한지도자 김정은을 만날 수도 있다는 미국 대통령이 들어섰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남한, 북한, 미국의 3 지도자가 모여 핵미사일문제와 평화 문제를 일괄 타결한다면 한반도는 1953년이래 드디어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협력의 새로운 윈윈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모택동과 닉슨의 만남, 카터와 사다트와 베긴의 만남. 세계를 바꾼 정상회담들이다. 문재인 민주정부가 동아시아 역사를 바꿀 정상회담을 잉태해 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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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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