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가 사퇴했다. "청문회까지 사퇴할 생각은 없다"고 기자회견을 한 지 열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다. 열 시간 동안 어떤 판단이 오갔길래 사퇴하게 된 것일까? 사퇴 소식은 반가웠지만 씁쓸하기도 했다. 안경환을 둘러싸고 제기되었던 문제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없어 직을 내려놓"는다고 했다. 청와대는 "검증에 안이해졌던 것 아닌가"라고 얼버무리며 "법무부의 탈검찰화와 검찰 개혁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것"임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인사 실패가 참사 수준이라며 조국 민정수석을 조준하여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힘겨루기만 남았다.
안경환이 넘어진 이유
인권 운동의 시선으로 보면 안경환의 국가인권위원장 시절은 아쉬움이 있다. 그래도 법무부장관 후보 지명 이후 그를 직간접적으로 아는 사람들은 기대감이 높았다. 아쉬움도 있지만 이룬 성과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경환은 많은 국민에게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60대 남성 법학자라는 정도 이상으로 그를 판단할 근거가 별로 없었다. 그가 국가인권위원장을 역임했고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과정에서 실천적 지식인의 면모를 보였다 한들, '인권' 경력을 알아봐줄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그가 작년에 발간한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알려졌다. 변호나 이해가 불가능한 문장들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당황했고 그를 모르는 사람들은 분노했다.
책의 곳곳에 깔린 문제적 문장들을 굳이 인용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안경환이 기자회견에서 당부한 대로 "책과 글의 전체 맥락을 유념하여 읽어 주"더라도 한계는 분명하다. "여성을 비하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는 것은 변명이 되기 어렵다. 사회적 행위는 의도뿐만 아니라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그의 책은 생물학적 성차를 본질적인 것으로 전제하는 인식론적 토대 위에 있다. "남성들에게 성찰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려는 의도를 가졌다지만 그런 의도가 전달되는 책은 궁극적으로 불가능하다. 생물학적 성차가 젠더 이해를 대체할 때 성평등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성차별의 해소가 남성들의 성찰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진보해도 관용에 그칠 뿐 평등에 이를 수 없다.
결과적으로 반여성적 사회를 재생산하는 경로가 될 뿐이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은 강경화 후보를 놓고 "외교장관은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경환의 책에서 반복되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2006년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사실이 알려지자 최연희는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으로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명을 시도했다. 해명 발언 자체가 분노를 일으킨 것은 당연하다. 신문사 기자가 아니라 술집 주인이었다면 넘어갈 일이냐는 항의가 잇따랐다. 안경환의 책에 등장하는 "여성은 술의 필수적 동반자"라는 문장은 이렇게 현실과 연결된다. 그의 의도가 어떠했든 자신의 문장들이 성차별과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논리이기도 하다는 점에 그가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하다.
총체적인 한계
안경환의 책에서 드러난 문제는 여성 비하 '표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표현은 한국사회의 반여성적 인식의 토대를 재현했다. 이후 확인된 판결문에 적시된 도장 위조 혼인신고 건도 공문서 위조 류의 '위법'이나 '사생활'에서의 '도덕성'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문제는 언제나 사회적이다. 여성일수록 강압당하기 쉽고 피해입기 쉬운 젠더 권력 관계가 강제되는 대표적인 영역이 결혼과 가족이다. 문제가 사적인 것으로 이해될수록 세상은 문제없는 것으로 위조된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칠십 평생을 총체적으로 평가해달라 했다. 총체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과제다.
안경환의 한계는 공직 사회의 한계보다 덜하면 덜했지 더하지 않다. <남자마음설명서>를 쓴 탁현민은 "부적절한 사고와 언행"이라는 사과만 던져놓고 아직도 청와대로 출근하고 있다. 굳이 비교한다면 이 책은 안경환의 책보다 훨씬 문제적이다. 의도와 맥락까지 반여성적이다. 인사청문회를 거칠 필요가 없으니 이대로 괜찮은가?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는 성범죄를 공모한 사실이 드러났다. 여전히 잘못을 모르고 다 지난 일이라며 일축한 그는 자유한국당 당대표 후보에 출마했다. 그가 계속 활개 치게 둘 것인가? 공직 사회의 수준이 이렇다. 서로의 잘못을 덮어주느라 바빠 서로의 수준을 끌어내린다. 정치적으로 쟁점이 되면 정략적으로만 접근해 반성을 이뤄내지 못한다. 안경환의 사퇴 전후로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시민사회는 다르다. 특히 최근 수년에 걸쳐 여성 혐오에 도전해온 흐름은 되돌아갈 수 없는 수준으로 한국 사회의 젠더 감수성과 성평등 의식을 높이고 있다. 안경환의 사퇴는, 서로를 길러낸 여성주의의 힘이 이룬 성과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기 싸움으로만 접근하면 아무런 교훈을 얻을 수 없다. 시민사회가 쌓아온 여성주의의 힘은 지금도 공직 사회의 한계를 빤히 노려보고 있다. 한국 사회의 성차별적 인식과 관행을 바꾸려 했던 안경환의 노력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욱, 안경환의 사퇴가 남긴 숙제를 직시해야 한다. 한계는 있지만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를 그만두고 그조차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어떻게 함께 넘어설 것인지를 숙제로 삼아야 한다.
공직 사회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공직 사회의 수준이 한 사회의 인권 현실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이라도 영향을 미치는 범위와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부당한 위계나 특권을 남용해 이득을 취해온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이 국가의 인권 침해에 대해 사과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말과 글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되새겨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 공직이라는 확성기를 맡길 수는 없다. 인선 기준은 더욱 높아져야 한다. 인권의 시선에서 총체적으로.
청와대의 숙제는 검찰 개혁의 또 다른 적임자를 찾는 데만 있지 않다. 안경환의 사퇴를 공직 사회 변화의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한참 부족한 공직 사회의 인권 감수성과 여성주의적 감각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번의 실패는 안이함 때문이 아니다. 검증의 방향을 총체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안경환의 사퇴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청와대가 내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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