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당체제가 정당의 본래 기능에 취약한 이유 중의 상당 부분은 보수와 진보로 양분되는 거대정당이 정치시장을 독점하는 카르텔 체제에 기인한다. 지역 패권주의에 기반한 거대정당의 '적대적 공존'은 상호 적대하고 대립하면서 정치적 기득권을 누려왔다.
이는 소선거구제와 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와 조응하면서 온건자유주의 정당체제를 가능케 했으며 이 결과 시민사회의 갈등이나 균열이 정당체제를 통하여 표출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즉 자유주의 내에서의 기득권을 대표하는 '보수 기득권 정당'과 민주세력으로 표상되는 '온건 진보정당'의 대립구도에서 사회적 약자나 소수세력의 이해는 배제될 수밖에 없다.
탄핵에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은 제1야당이라는 기득권에 안주하여 사안을 불문하고 현 정부에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 과정에서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갈등의 산물로 호남의 지지를 기반으로 의석을 얻었고, 제3당으로서 40석이라는 적지 않은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캐스팅보터다. 바른정당은 탄핵정국에서 탄핵에 반대한 친박과 결별하여 생성된 정당이다.
도식적으로 대별한다면 한국당은 기득 보수를 대표하고, 국민의당은 중도개혁을 지향하고, 바른정당은 중도보수를 표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5당 체제가 사회의 약자나 대표되지 않는 계층의 이해를 집약할 수 있는 다당체제로서의 대표체계를 갖추고 볼 수 있는가.
다당체제란 양극단에 위치하는 패권세력인 거대정당이 적대적인 공존 논리로 정치적 기득권을 독점하는 상황의 해소를 위해 긴요하다. 사회적 갈등이 정당체제에 반영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념간의 간극을 메우고, 양 극단의 분극적 이데올로기를 조정하는 역할로서의 다당체제일 때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유난히 협치가 강조됐으나 청문회 정국뿐만 아니라 임기 초 여야의 협치는 발견하기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 평가가 고공 행진을 하는 등 국민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내각 구성과 추경 등의 과제를 주도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지금의 정당체제는 촛불 시민혁명이 요구했던 불평등과 부정의의 혁파는커녕 일상적 개혁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국정의 교착(deadlock)에 직면해 있다.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를 의미하는 여소야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보편적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문제는 여소야대가 국정 교착의 주된 원인으로 작동한다는 데에 있다. 대통령이 의회와 수시로 소통하고 이해와 설득을 구하는 정치문화가 일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소야대는 정권의 이념적 지향과 무관하게 여야의 극한 대립을 야기했다.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의 분점정부에서 나타나는 구조적 문제이라고 하기에 대내외적 위기는 심각하고 엄중하다. 내각 구성뿐만 아니라 현재의 정당체제에서 원천적으로 집권세력의 청사진을 펼치는 데 한계가 있다.
협치의 방법으로서 구체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야당 중 이념지향의 접점이 가능한 정당에게 내각에 참여하게 하는 연정의 방법이 대안 중 하나다. 그러나 연정에 친화적이지 않은 대통령제의 한계와 여야 정당내의 지방선거 출마자들의 이해관계와 맞물려 실현되지 않았다.
의회의 협조 없이는 어떠한 입법도 불가능한 상황을 집권세력은 어떻게 돌파할지 국민들은 궁금해 한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동의에서 방법론을 도출해내야 한다. 과반이 넘는 야당의 반대에 직면한 행정부가 국민의 자발적 지지에 입각해서 정면돌파를 시도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나, 국회에서 여야의 강대강 대립구조가 일상화될 때 청와대와 집권당이 떠안아야 할 정치적 부담의 무게는 야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지도는 그 지점에서 변곡점을 찍을 수도 있다.
집권세력은 정국을 돌파할 구체적 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추상적 협치가 아닌 구체적 연합정치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원칙론에 입각한 협치의 강조는 공허하다. 우선 여야정 협의체와 같은 가시적 협의체의 가동이 실질적 협치로 이어지려면 야당의 주장을 일부 수용하는 과감한 정책연대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방법조차 교착에 직면한다면 정당체제의 재배열을 고민해야 한다. 이념 지향을 공유할 수 있는 정당에게 명분을 제공하면서 합당 등의 방법을 모색하는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비록 총선에 의해 구성된 정당체제라 할지라도 민의를 제대로 반영해 내지 못하거나, 다당체제의 의미를 살려나가지 못한다면 정치권의 재편에 대한 유인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의사소통 노력과 협치의 손짓은 야당의 정치공학적 계산 앞에 무력해 보인다. 당내에서조차 집권세력에 협조하는 사안을 둘러싸고 정치적 의사의 간극이 존재하는 국민의당, 바른정당도 새로운 각도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야당들은 존재감 부각이라는 정치공학적 요인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당체제가 시민사회의 요구와 지지를 반영하지 않고 여야 대립을 구조화한다면 합당이건, 연대건 새로운 연합정치의 필요성은 증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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