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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문회를 못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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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청문회를 못 보는 이유

[민교협의 정치시평] 청문회 속 타인의 삶

요즘 국회에서는 청문회가 한창이지만, 어느 하나 보지 않고 있다. 새 정부에서 일할 이들은 물론, 기관의 장이라 해서 반드시 도덕군자를 뽑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개인의 탐욕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일삼은 이들을 뽑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청문회 후보자들의 삶 역시 그 양 극단을 축으로 하는 중간 어느 지점에선가 자리 잡을 것이다.

이번 청문회 대상이 된 이들의 면면을 보면 대체로 성실하게 살아온 이들이 아닐까 하지만, 인터넷이나 SNS에서 들리는 청문회 이야기에 의하면 그리 간단히 진행되지 않는 듯하다. 청문회답게 당연히 언급되어 검토되어야 할 내용이 있는가 하면 과도한 의미 부여를 통한 흠집 내기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청문회를 바라보는 일반인이나 후보자를 검증하는 국회의원들이나 청문회 목적이 무엇인지 서로 공유하고 있을까. 왜 그들을 청문회 자리에 앉혀 놓으며, 왜 철저히 개인의 삶을 드러내어 검토하고 비판하는가. 개인 삶에서 조금이라도 흠결이 있으면 안되는 것일까? 혹은 청문회란 통과만 하면 되는 의례적 절차에 불과한 것일까? 무조건 잡아내는 것도, 무조건 피해가는 것도 아닌, 공인에 대한 검증 절차가 청문회라면 이제 조금은 평안한, 그러면서도 냉정한 마음으로 볼 필요가 있다.

청문회 자리에 선 후보자들이 앞으로 수행해야 할 직위는 단순히 기관 운영 능력이나 행정 기술로 끝나는 위치는 아니다. 어찌 보면 후보자들이 지향해 온 삶의 가치가 그대로 국정이나 기관 운영에 반영되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의 삶과 생활 자체에 영향을 끼치는 자리다. 권력 집단에 아부하며 교언영색의 말만 하는 기회주의적 부류가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그 폐해는 결코 적지 않다. 후보자들의 관리 능력과 더불어 평소 삶의 모습과 가치를 검증하는 것은 매우 정당하며 필요하다.

한편, 한 개인의 긴 삶의 여정에서 완전한 인간을 요구하듯이 진행되는 청문회는 지켜보기에도 불편하다. 또 다양한 배경 속에서 나타난 삶의 모습을 획일화된 고정관념으로 몰아가며, 이것이냐 저것이냐 식의 단순 선택을 강요하는 청문회 광경은 보기에도 힘들다. 심지어 각 개인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규정된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후보자 개인의 소신마저 마치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게 하는 방식으로 정죄하는 형태의 질의 광경은 보는 이를 초라하게 만든다.

삶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나 문화 속에서 펼쳐지기에, 시대적 맥락을 무시한 채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처럼 잔인하고 폭력적인 것이 없다. 개인의 몫을 시대나 사회때문이라며, 혹은 관례라는 이유를 들어 책임 회피를 해서도 안되지만, 또한 특정 시대나 사회 몫마저 개인에게 전담케 하여 흑백의 이분법 논리로 문제 삼는 것도 부당하다. 인간 삶이 흑백의 문제가 아니라면, 동 시대를 살아온 후보자 각 개인들의 현실 속 삶의 지향점 내지 가치를 살필 때, 무엇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를 허용 범위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후보자들에게 확인하고 싶은 것은 공공성에 대한 삶의 자세와 공익을 위한 실행 의지다.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리에 연연해 소신을 버리고 권력 풍향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우선 검토되어야 할 자질이다. 또한 개인의 이해 추구에 있어서 일반 상식을 넘어섰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상식을 넘어서는 편법과 불법을 자행한 이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란 매우 위험하다. 이처럼 청문회에서는 옳고 그르다는 식의 이분법적 관점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개인 탐욕과 주요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가치와 지향점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후보자들의 위치를 찾아 밝힐 필요가 있다.

청문회에 선 연령대의 사람들이 열심히 살던 젊은 시절은 군사 독재와 더불어 개발 논리가 횡행하던 시대이기도 하다. 그 시절에 살아남은 자들의 모습은 불행히도 그 시대적 배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치열한 열사의 모습으로부터 기회주의적 삶으로 부와 권력을 쥔 이들과 평생을 가난 속에서 살면서도 그 가난을 자식에게 세습시킬 수밖에 없던 이들까지.

청문회는 중요한 공인을 검증하는 자리로서 한 개인의 삶을 타자의 눈길 속에 드러내어 환히 비추는 과정이다. 거꾸로 말하면 한 개인의 삶을 공인으로서 적합한 지를 타자가 판단하는 과정이다. 공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 중의 하나가 선공후사이며, 이는 공과 사의 분명한 구분을 요구한다. 청문회가 그런 것을 확실히 밝히기 위한 공적 검증 과정이라면, 청문회 진행 중에도 역시 철저히 공과 사가 구분되고, 사적 부분은 개인 몫으로 존중되는 모습이어야 한다.

한 인간의 삶을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보다는 공사 구분 없이 들춰내어 비판하는 것이 마치 철저한 검증인양 진행되고 십자가를 밟아야만 통과되는 청문회란 이 시대에 공직자로 나선 이들이 감당해야 할 몫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청문회처럼 공사 구분 없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어쩌면 집단에 의한 폭력일수도 있다. 내가 청문회를 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에 나와서 질의를 듣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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