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있을 때 잘하자
촛불시민혁명과 문재인정부의 출범! 이 대변화의 역사적 의미를 새삼스럽지만 되새김질하고 싶다. 동학혁명의 참패와 구한말의 좌절, 길고긴 일제강점기, 해방과 분단, 6.25 내전, 끝없이 계속될 것같았던 군부독재….
광주항쟁과 6월항쟁, 하지만 미완의 승리.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와 노무현 정부의 탄생,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끝이 없어 보였던 민주세력의 분열과 반목….
그런데 마침내 좌절과 패배의 시대를 처음으로 완벽히 극복하는 시민혁명을 우리는 이루어내었다. 이 기쁨과 환희를 필자는 감추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 땅에도 시민이 주인되어 불의한 권력자를 추방하고 새로운 정권을 우리 힘으로 세우는 날이 오다니!
문제는 지금부터다. 어렵사리 정권교체는 이루어졌지만 촛불혁명으로 이룬 권력교체를 실질적인 변혁으로 한발 한발 밀고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개혁의 성공이란 진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또 보수 반동에 뒤집힐 수는 없다. 이 엄중한 시기에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모든 시민은 문재인 정부를 중심으로 확고한 개혁대오를 이루어야 한다.
2. 먼 교훈과 가까운 교훈
덕담으로 시작해보자. 우리 역사에서 국가의 기틀을 세우거나 바로잡은 개혁의 황금시기가 있었다. 두 번의 역사적 사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조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는 78년간(1418년~1496년)이다. 두 번째 사례는 영·정조의 76년간(1724년~1800년)이다. 이들의 개혁은 왕조시대의 뛰어난 군주로 말미암은 업적들이다.
필자는 문재인정부가 민주공화국의 기초를 다잡는 '개혁의 황금시대'를 여는 출발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선의와 리더십은 개혁의 필요조건이다. 여기에 대중의 집단지성이 합쳐져야 비로소 개혁의 충분조건이 완성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이라고 불렀다.
필자가 보기에 지금 우리는 이 두 개의 필요충분조건을 가지고 있다. 언제 우리가 이런 조건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가 '광주항쟁과 6월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라는 역사의식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역사의 거대한 전진이다. 곧 이어 그는 이전의 민주정부가 보여준 한계를 뛰어넘는 행보를 보여주었다.
역대 정권에서 대통령 측근세력이 늘상 하는 말이 있다.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야 된다는 슬로건이다. 그런데 이 슬로건은 현직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집권당을 찌그러뜨리거나 집권당내의 반대파를 숙청하는 명분으로 활용되었다.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과 여권 후보들의 갈등이나 박근혜 정부에서 유승민 죽이기에 몰두하다가 초가삼간 태운 일이 그런 예일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성공보다도 민주세력의 연속집권이라는 명제를 더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과 임기만을 중시하느냐 혹은 '연속 집권을 위한 토대의 구축'을 중심에 두는냐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존재한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독자적 세력을 만들 수 있는 최측근들은 일제히 백의종군하였다. 이들의 아름다운 백의종군의 효과는 엄청났다. 단숨에 국민적 지지가 80%를 넘어설 수 있었다. 집권당 내의 비문 세력은 물론이고 야당의 합리적 세력까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포용의 정치를 선보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아세안 특사로 파견하였다. 친문이라고 할 수 없는 김부겸, 김영춘, 김현미 의원을 내각에 발탁하였다. 뿐만 아니라 집권당과 아무런 연이 없더라도 실력있고 국민적 호소력이 있는 인물이면 과감하게 발탁하겠다는 의지를 연일 선보이고 있다. 호남사람들이 '이제 호남은 그만 챙겨달라. 눈치보인다'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호남인사를 전진배치할 낌새다.
이때까지 드러난 포석으로 미루어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경남(PK)지역과 호남과의 정치연합, 그리고 세상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민주정부의 우호세력으로 묶으려는 포석을 두고 있는 듯하다. 반상의 중앙을 치고 들어가는 '우주류' 스타일의 거대한 포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3. 내부의 장애물
정권은 촛불혁명이라는 혁명적 계기로 잡았지만, 개혁은 의회민주주의라는 틀 속에서 수행할 수 밖에 없다. 집권 민주당은 국회 300석 중 123석을 가진 정당이다. 여기서 개혁의 조건이 한계지워진다. 이것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의 정교한 리더십과 50%를 넘는 국민적 지지기반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개혁을 바라는 모든 세력의 대단결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대통령과 집권당이 초심을 잃지말고 국민적 명분과 지지기반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갈기갈기 찢겨져온 민주개혁진영을 급속하게 복원하여야 한다. 정치권의 이합집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개혁을 현실적 조건에서 수행하되 국민적 동의를 반드시 얻으라는 조언이다.
한경오(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와 문 대통령 핵심 지지층간의 갈등이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그러나 거대한 기득권네트워크 앞에서 이들은 서로 힘을 모아야 한다. 개혁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질책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진보진영 내부의 선도투쟁적인 기풍에도 심모원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정부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자마자 밀어부친 4대개혁입법(그 핵심은 국가보안법 폐지 등이었다)은 자살골이 되었다. 대중의 가장 절실한 과제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앙이 되어버렸다.
국민대중의 생활과 관심사를 중심에 두어야지, 운동권이나 진보진영만의 어젠다에 '몰빵'하지 않았으면 한다. 반독재민주화투쟁의 긴 역사로 말미암아 민주진영은 '선도투'의 깊은 전통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현실적 어젠다를 중심으로 대중과 반 발 앞선 행보를 '같이' 했으면 한다. 정의당에 바라는 말이다.
5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 일을 열심히 한다면 많은 일을 해내고 미래를 위한 기반을 축적할 수 있는 기간이다. 특히 내년에는 개헌과 선거구제 변경과 같은 혁명적 어젠다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역사상 흔치 않았던 '성공한 개혁'을 보고 싶다. 5년 뒤 민주정부가 풍비박산나는 꼴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하나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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