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용마 기자 "MBC 사장, 국민이 직접 뽑는 방법이 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용마 기자 "MBC 사장, 국민이 직접 뽑는 방법이 있다"

[인터뷰]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 기자

이용마 MBC 해직 기자를 만났다. 이 기자는 지난해 복막 중피종(복막암) 진단을 받고 전라북도 진안에서 투병 중이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10년 동안 가장 열심히 싸운, 그래서 가장 고통받은 언론인이다.

많은 이들이 정권 교체 이후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 현실이 가져온 변화에 가슴 벅차고 있다. 이 기자는 누구보다 이를 누릴 자격이 있다.

볕 좋은 봄날 만난 이 기자는 걱정했던 것보다 건강이 좋아 보였다. 인터뷰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며 3시간 가까이 함께 보냈는데, 피곤한 기색도 크게 보이지 않았다. 가장 급한 현안인 복직 문제에 대해 그는 "하루 이틀 빨리 복직하는 것보다 언론 노동자의 파업권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복직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지난 2015년 2심에서 나온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해고된 그가 복직이 급하지 않다니. 이런 강인한 의지가 그를 지탱해온 힘일 것이다.

그는 언론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근본적인 법, 제도적 개혁을 강조한다. 지난 보수정권 10년에서 일어났던 '언론 장악'과 그 결과로 공영방송이 KBS, MBC가 만신창이가 되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언론 장악 방지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기자는 공영방송 사장을 국민 대리인단을 통해 선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민 대리인단은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단처럼 추첨제를 통해 뽑으면 된다. 검찰총장도 직선제까지 갈 필요 없이 국민 대리인단을 통해 선출하면 정치적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의 첫 2주일에 대해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봄이 오나 보다"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문 대통령은 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2위 후보와 가장 많은 표차를 통해 당선됐다는 점에선 개혁을 추진하기에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이 보여주는 것처럼 행정 권력 이외 다른 사회 권력은 여전히 기존의 기득권층이 꽉 잡고 있다.

이 기자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만 바라보고 앞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권력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과정에서 언론과 검찰의 역할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 22일 있었던 인터뷰 전문이다.

▲ 이용마 MBC 해직 기자. ⓒ프레시안(최형락)

해직 언론인 복직 문제, 정치권에서 이용하지 말라

프레시안 : 건강은 어떤지? 직접 보니,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 목소리에도 힘이 넘치고.

이용마 : 좋다. 실제로도 좋지만, 이왕이면 '좋다'고 써 달라. 지난 3월 <미디어오늘> 인터뷰 기사가 나간 뒤, 전화가 많이 왔다. 건강 상태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는데, 사진을 보고 주변에서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특별히 건강해 보이게, 사람들에게 전화 안 오게, 잘 찍어 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웃음)

프레시안 : 2015년 4월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해고 무효 판결을 받지만, MBC 사측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이 2년 넘게 미뤄지고 있다. 관련해 진행된 것이 있는지?

이용마 : 없다. 대법원의 판결을 그저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대법원이 지난 4월 말, 2012년에 파업한 KBS본부 집행부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물론 "파업이 쟁의행위로서의 정당성 여부가 있는지와 상관없이"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사측이 기소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MBC 해직 언론인데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곧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프레시안 :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회 임기 등의 문제가 있어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복직 문제는 더 미룰 수 없는 일 아닌가.

이용마 : 해직 언론인 문제는 MBC와 YTN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MBC는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고, YTN은 대법원 판결까지 끝났다. MBC 해직 언론인 문제의 경우,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해고자 복직 특별법'에 의해 복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014년 1월과 2015년 4월, 각각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노조의 파업이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이 결과가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되어야 한다. 그래야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 시도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때 노조가 정당하게 저항할 수 있다. 법원이 언론 노동자의 파업권(저항권)을 인정한, 굉장히 획기적인 판결이다. MBC 해직 언론인에게는 하루 이틀 빨리 복직하는 것보다 대법원의 판결이 중요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언론 개혁이고 언론 적폐 청산이다. 해직 언론인 복직 문제는 그중 하나다. 국회에 계류된 '해직 언론인 복직 특별법'은 여야 할 것 없이 생색내기 좋은 일이다.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MBC 해직 언론인 6명(강지웅,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정영하, 최승호)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지 말라. 우리는 법원의 판결로 저항권을 인정받은 뒤 당당하게 복직할 것이다.

'언론 장악 방지법'? 오히려 기회주의자가 사장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유력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지난해 12월, 이용마 기자를 직접 찾아와 복직을 약속했다. 당시 문 후보는 "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앞잡이들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며 언론 개혁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용마 : 문재인 대통령이 언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 다만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을 '부실 경영'이라는 엉뚱한 이유로 해임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은 "임명권이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권 역시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법원은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권을 인정했다. 이에 근거해 문재인 대통령이 KBS의 왜곡 보도와 편향 보도를 문제 삼아 고대영 KBS 사장을 해임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 된다. 다만, 이명박-박근혜 정권 인사들이 7대 4로 KBS 이사회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대통령이 사장을 해임해도 또 다른 청산 대상이 사장이 될 수 있다. 언론 적폐가 반복되는 셈이다.(웃음)

프레시안 : 현재 국회에는 '언론 장악 방지법'이 계류되어 있다. 그러나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또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바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 같다.

이용마 : 당연하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쟁점법안을 처리하려면 180석 이상의 의석수가 필요하다. 민주당(120석), 국민의당(40석), 정의당(6석)뿐 아니라 바른정당(20석)까지 찬성해야 180석(186석)이 겨우 넘는다. 하지만, 주도권을 쥔 바른정당이 언론 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 방송법과 방문진법 개정안이 담긴 '언론 장악 방지법'에 대해서도 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는 등 부정적이다.

그럼에도 KBS 이사회나 MBC 방송문화진흥회 구성원의 임기가 끝나기 전, 내년 봄이면 자유한국당이 앞장서 '언론 장악 방지법'을 통과시키자고 할 것이다. 언론장악방지법은 △공영방송(KBS, MBC, EBS 등) 이사수를 13명으로 증원하고 여야 추천 7대 6 비율로 통일하고, △공영방송 사장 선임 시 이사회 특별다수제(재적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를 도입한다는 내용이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공영방송 사장을 임명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유한국당 또는 바른정당의 추천 인사가 사장 후보자에 동의하지 않으면, 임명이 불가능하다. 지금의 자유한국당, 즉 박근혜 정부 시절 여당이던 새누리당 의원들의 거부로 지금까지 국회 미방위(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상황이 바뀐 지금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언론 장악 방지법'에 부정적이다. 여야 모두가 찬성하는 공영방송 사장? 누가 있을까. 자유한국당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로 적이 없고 인품이 훌륭한 고매(高邁)한 사람이거나, 양쪽에서 줄타기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사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촛불 민심이 요구한 '언론 적폐 청산'은 절대 이뤄질 수 없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와 여당이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해 언론 개혁을 위한 다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이용마 : 우려하는 부분이다. 여야가 바뀐 상태에서 기존의 '언론 장악 방지법'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게 언론 개혁 취지에 맞을까? 심각한 회의가 든다. 하지만 여당 의원들은 이에 대해 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 국민에게 맡기자

프레시안 : 외부에서는 KBS보다 MBC 사장 교체 및 방송 정상화를 더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용마 : KBS나 MBC나 상황은 사실 비슷하다. KBS는 대통령이 당장 사장을 해임할 수 있지만, 후임 인사에 대한 보장이 없다. 반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인사가 6대 3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방문진이 있어 MBC는 대통령이 사장을 해임할 수도 없다. 그리고 현재 KBS 이사회와 MBC 방문진 구성원의 임기가 1년 넘게 남아있기 때문에 뾰족한 수단이 없다.

프레시안 : KBS 이사회와 MBC 방문진 구성원 비율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수단이 되지 않을까?

이용마 : 현재 여야 성향의 구성원 비율은 여당이 3명, 야당이 2명의 위원을 추천하게 되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했다. 그래서 KBS 이사회는 7대 4, MBC 방문진은 6대 3이 됐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고 여야가 바뀐 상황에서는 KBS 이사회와 MBC 방문진의 구성도 달라져야 하지만,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섣불리 바꿀 수가 없다. 정권도 갑갑할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은 언론의 길을 가고 정권은 정권의 길을 가자'고 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정권 입장에서도 언론 장악의 야욕을 져버리지 쉽지 않다. 언론 개혁 및 공영방송 정상화, 문재인 정부에서 해결하지 못하면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다.

이용마 : 그래서 '공영방송 사장 선임 국민 대리인단'을 뽑자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장관 인사청문회를 하면 후보자에게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국민(또는 시청자)들도 대략적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문제 있는 후보자라도 여대야소 상황이면 무리 없이 임명된다. 반면, 아무리 좋은 후보자도 야소야대면 임명이 불가능해진다. 문제가 뭘까?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상식에 입각해 문제를 처리해야 하지만, 당리당략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하지만 위임한 권력을 제재할 방법이 달리 없다.

MBC 사장 문제도 똑같다. MBC 사장은 국회에서 여야 6대 3의 비율로 뽑은 대리인(방문진)이 뽑은 사람이다. 사장 후보가 부족해도 '우리 편이다'라고 하면 동의하고, 훌륭해도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하면 동의하지 않는다. 현재 언론사의 지배구조가 그렇다. 사장 선임 문제를 바꾸지 않으면 언론 개혁은 불가능하다.

정치 권력이 인사 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또 좌우 편향성의 시비를 극복해야 한다. 이런 고민 끝에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국민 대리인단을 통한 추첨제 도입을 주장하게 됐다. 추첨제는 그리스 아테네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리스는 전쟁사령관과 같은 전문성을 요하는 자리는 선거를 통해 뽑았다. 그 외 공직은 전부 추첨제를 이용했다.

'국민 참여 배심원 제도'가 이와 유사한 형태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최근 국민 참여 재판에서 당선 무효형에 해당하는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상식에 입각한 평결이다. 그동안 판사의 판결과 국민 배심원의 평결이 어긋난 적은 거의 없다. 물론 법을 다루는 일은 전문성을 요하지만, 추첨을 통해 뽑힌 국민 배심원의 경우 오히려 사심 없이 정확하게 평결한다.

이를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도 적용하자는 것이다. MBC 사장을 왜 국회에서 추천한 대리인이 뽑나? 선출과정에서 후보자의 자격을 논한다고 하지만, 찬반 의견은 늘 여야 추천 비율대로 나온다. 쓸데없는 일 아닌가. 여야 대리인인 방문진이 서너 명의 MBC 사장 후보를 상대로 공개 청문회를 진행하고, 추첨을 통해 뽑힌 국민 대리인단이 표결을 한다면?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프레시안 : '공영방송 사장 선임 국민 대리인단' 방식은 사실상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이용마 : 그렇다. 따라서 이런 방식이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에서 석유공사와 가스공사 등 공기업은 자원외교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마'식 투자로 천문학적인 손실을 가져왔다. 대통령이 임명한 사장과 사실상 그 영향권에 있는 이사진 때문이었다. 하지만, 외부인 또는 국민 대리인이 참여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실질적인 국민 참여가 이뤄질 수 있는 제도적 개선, 그 출발점을 공영방송 사장 선임으로 하자는 것이다. 검찰총장 직선제 얘기가 있는데, 이 역시 후보자 공개 청문회 후 추첨을 통한 국민 대리인단의 표결로 진행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된다면, 공영방송 사장이나 검찰총장 등이 권력이 아닌 국민을 바라보며 일할 것이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권 때 언론, 특히 방송 개혁 문제가 법, 제도적인 측면에서는 진행되지 않았다. 정권이 교체되면, 과거 야당 입장에서 불리했던 것도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걱정되는 부분도 이런 점이다. '이대로 두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생각?

이용마 : MBC 방문진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 여야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벌써 30년이 지났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인식하기에는 언론의 자유가 확대됐고, 문제의식을 별로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겪으며 과거로 역주행하자, 법에 문제가 있다고 뒤늦게 깨닫게 됐다.

이제 제대로 된 정부가 다시 들어섰다. 여당 입장에서는 120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욕심낼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정권 10년과 진보정권 10년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에게 한 번 물어봐야 한다. 현행법 그대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바꿀 것인가.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영방송, 저들이 원하는 바보상자 되다

프레시안 :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MBC는 사실상 보도기능을 상실했다. 소위 '개혁 언론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MBC를 떠났다. 뿐만 아니라, 김재철 전 사장 이래 보도국은 '시용기자'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해직 언론인이 복직한다고 내부 적폐가 해결될 수 있을까?

이용마 : 그런 문제는 MBC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영진이 장악한 상태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일단 과거 정권에 부역한 경영진을 새로운 경영진으로 교체해야 한다. 이후 MBC의 집단 지성으로 내부 적폐를 해결해야 한다.

MBC는 이명박 정부 이후 저들이 원하는 바보상자가 됐다. 언론으로 권력의 감시 기능은 없는, 예능 매체로 전락했다. 2012년 파업 당시 예능과 드라마만 남고, 보도 매체의 기능이 상실될 것을 우려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의 '국민의회' 편이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은 지상파의 영향력이 아직도 크다는 방증이다. 사실 김태호 피디도 170일 동안 파업에 동참했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물의를 일으켰지만,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돈이 된다는 생각에 김 피디를 어쩌지 못한다. 상업성에만 기인한 방식이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좋아질 것이다.

프레시안 : 공영방송이 사실상 무너진 상태에서 종편인 JTBC가 보도매체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시청자 입장에서는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문제의식마저 사라진 것 아닌가 싶다.

이용마 : JTBC의 문제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손석희 보도 담당 사장이 이끄는 뉴스가 사실상 '리딩 프로그램' 역할을 하고 있다. 단, JTBC의 이런 순기능이 언제까지 지속될까?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특히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개인의 선의에 기댄 방식은 과연 옳은 것일까? 홍 회장이 통일외교안보 특보로 문재인 정부에 참여하고 있지만, 대선 기간에는 대권 도전설이 나오기도 했다. JTBC는 어디까지나 민영방송이다. 이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종편이 안착했다. 몇몇 종편이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도 언론 윤리 등 악영향을 주고 있다. 종편의 폐해,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용마 : 이미 기반을 잡은 상황이라, 재허가 여부로 현재 운영되고 있는 종편을 취소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단 종편 채널 스스로 제 살을 깎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도 넘은 광고를 제재하고, 막말 방송을 규제하며, 패널 위주의 시사프로그램도 편성 등 방송통신심위위원회가 관련 심의를 제대로만 해도 종편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이기에 가능하다

프레시안 :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이제 봄이 오나 보다"라며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을 남겼다.

이용마 : 일단 출발은 순조로운 것 같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체제와 같은 인선을 보면, 키는 청와대가 잡되 경제 관료와 함께 정책 수행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적인 인사와 참여정부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을 선별해 배치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바뀐 것이 확실하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며 "이제 봄이 오나 보다"라고 썼다. "그래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없는 사람들도 행복을 꿈꾸는 세상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대구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하면서 검찰 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내부의 자체적인 개혁과 국회의 제도적 뒷받침을 축으로 개혁을 이루려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이용마 : 윤석열 지검장 인사로 문재인 대통령이 개혁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정부의 검찰 개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인사 등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검찰 개혁 또는 사회 개혁을 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87년 6월 항쟁 당시처럼 '촛불 혁명' 이후 당선된 대통령으로 가장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야당인 자유한국당 등 보수정당이 자중지란 상태다.

검찰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검찰은 그동안 노동자에게는 법 적용을 엄격하게 하면서도 기업은 봐주기 식 수사를 했다. 마찬가지로, 언론이 늘 권력의 편에서 방송한다면 사회적 의제 설정과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한 고민이 제대로 이뤄질까? 검찰과 언론, 두 측면이 제대로 서야 우리 사회가 잘 나아갈 수 있다.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은 그래서 중요하고, 모든 적폐 청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도 인사를 통한 개혁 드라이브를 사실상 시작했다. 그러나 고비처 등 구조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국회의 조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걱정이 된다.

이용마 : 역시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쉽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만 바라보고 앞으로 갔으면 좋겠다.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을 의식하며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소신껏 밀어붙인 뒤, 좌절되면 좌절 되는 대로 국민에게 상황을 보여주면 된다. 그리고 2020년 총선에서 국민의 판단을 받으면 된다.

당부하고 싶은 것은 주변의 눈치 보며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보수와 진보 양쪽의 비판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다. 따라서 시행착오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임기 내 모든 것을 하겠다는 욕심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서려고 할 때, 여야 합의 사안과 같은 눈치를 보다 무리수를 두면 어정쩡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의 경우, 진보 진영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정부는 통상분야의 초석이 되는 정책이라는 생각으로 추진하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좌초했다.

이용마 :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후 한미 FTA 추진을 후회하지 않았나. 당시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추진하려 했으나 실패한 뒤, 야당이 찬성할 만한 한미 FTA를 내세운 측면이 크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지지층이 오히려 이반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보수와 진보 양쪽의 협공을 당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엉뚱한 길로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최형락)

언론, 권력과 긴장 관계가 숙명

프레시안 : 최근 문재인 지지자들이 진보언론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있었던 일에 대한 서운함, 또 언론 전체에 대한 불신도 깔려있는 것 같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용마 :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는데, 말한 것처럼 과거의 경험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여기에 유시민 작가의 '어용지식인론'이 불을 댕겼다고 본다.

<한겨레21>과 <미디어오늘> 등 해당 매체 기자들이 감정을 충분히 제어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문제가 계속 확산되면, 오히려 문재인 정부를 위해서도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진보언론의 위상 설정도 힘들어진다. 사회적 적폐 청산의 시대정신인데, 피아(彼我) 구분을 못 하고 싸우게 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어부지리를 누리는 것은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다. 진보언론이 좀 더 냉철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 하나는 문재인 정부 지지자 중 일부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때 보수와 진보 언론 양쪽에서 협공을 받았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정부가 협공을 받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언론은 정부의 행위에 대한 리액션을 담당한다. 적극적인 행위자가 아닌 사후적인 행위자라는 말이다. 정부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하는 것까지 공격의 빌미로 삼는다면, 언론에게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하라는 것이다. 독자들도 언론이 정당한 비판을 하면서 언론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과 나팔수 노릇을 하는 것을 구별해 인식했으면 좋겠다.

국회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개혁 과제를 실천할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는 기반이 없다. 유 작가의 말처럼 오로지 행정 권력 하나 장악하고 있다. 사법 권력조차도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임기 5년이 끝날 때쯤 되어야 이들이 바뀐다. 어떻게 보면, 고립무원 상태다. 그런데 아군끼리 총질을 하는, 그것도 아주 감정적인 문제로 다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프레시안 : 국민에게 언론 개혁에 대해 당부할 말이 있다면?

이용마 : 언론이라는 것은 국민들이 세상을 보는 창이다. 그 창이 왜곡되면, 우리가 보는 세상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굉장히 중요하다. 언론이라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된다. 미우나 고우나, 언론이 바로 설 수 있도록 국민들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두 번째로는 언론과 권력은 끊임없이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언론의 존재 이유 자체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아무리 올바르고 정당한 권력이 들어선다고 해도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하는 측면이 있다. 언론은 바로 그런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지적하는 게 존재 이유다.

프레시안 : 언론인 후배나 동료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용마 : 후배들에게는 미안하다. 왜냐하면, 후배들의 젊음이 5년 이상 낭비됐다. 한참 일해야 할 때인데, MBC의 경우 대부분이 현업에서 쫓겨나거나 현업에 있더라도 눈치를 보고 있다. 사람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시대적 아픔을 다함께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언론인으로서 당당한 기개를 잃지 말고, 다시 한번 보여 달라. 절대 권력에 의해서 언론의 자유를 전리품으로 하사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 달라. 권력이 우리에게 전리품으로 주려고 해도 (이사회 및 방문진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다. 그 전에 좀, 하여튼 당당하게 쟁취했으면 좋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홍기혜 기자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