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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검찰 개혁'은 해법이 아니다

[법치의 표리(表裏)] '검찰 통치의 종식'이 핵심이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1심 무죄 판결과 <MBC> PD수첩의 '검사와 스폰서' 특집이 나온 뒤, 민주개혁세력 전체가 검찰개혁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나라당 쪽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면 검찰개혁의 결정적인 시기가 무르익은 것 같기도 하다. 때마침 국회는 사법개혁특위를 가동 중이다. 그렇다면 검찰개혁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가?

지난 십여 년 동안 민주개혁세력 전체가 고민해 온 검찰개혁의 이슈들은 다양하다. 검찰총장임기제, 재정신청확대, 특별검사제도,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검경수사권 조정, 자치경찰제, 공판중심주의, 검찰인사회제도 등. 여기에 기소배심제도나 유죄답변협상제도 등이 추가되면 고려할만한 개혁대안들은 거의 모두 등장한 셈이 된다.

그러나 솔직히 인정하자. 개혁논의의 다채로움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은 그동안 조금도 진전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검찰개혁논의 순서가 잘못됐다


나는 민주개혁세력이 검찰개혁논의의 순서를 잘못 잡았었다고 생각한다. 검찰개혁의 방안을 모색하기에 앞서 민주화 이후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검찰 통치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먼저 묻고 답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 지난 달 SBS에서 실수로 내보낸 검찰 패러디 로고ⓒSBS방송 캡쳐

돌이켜 보면, 정치권력과 검찰의 연계 고리를 끊어내던 십년 전, 즉 옷로비 사건의 여파가 김대중 정부의 도덕성을 뿌리 채 흔들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중립요구가 특별검사제도로 이어지던 즈음, 민주개혁세력은 마치 검찰개혁의 성공이 그리 멀지 않은 것처럼 착각했었다.

그러나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제도적으로 확보된 뒤 등장한 현실은 무엇이었는가? 노무현 정부를 전후하여 철저하게 경험했듯이,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검찰 통치의 확립이 아니었던가?

이제라도 민주개혁세력은 검찰개혁의 방안을 말하기 전에 검찰 통치의 원인과 메커니즘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개혁의 대상을 비판하기 전에 개혁의 대상 그 자체를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긴급정부란 무엇인가

이를 위하여 나는 한 가지 명제에 대한 민주개혁세력 전체의 숙고를 제안하고 싶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검찰 통치는 긴급정부의 잔존형태다!'

긴급정부(emergency government)는 전쟁과 같은 비상시국에서 정상적인 헌정을 중단하고 생존과 질서의 확보라는 긴급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되는 정부를 말한다. 군대가 정권을 담당하는 전시(戰時)의 군사정부가 대표적인 예다.

지난 세기 한반도의 역사에서 긴급정부는 장기간 존재했으나, 특히 중일전쟁 이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강화된 뒤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극단적 형태로 확립된 바 있다. 주지하듯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과 '중앙정보부'로 상징되는 긴급정부는 민주화 이전까지 국가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이 점과 관련하여 1987년 6월 민주화대항쟁 이후 대한민국에는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민주화 이전의 긴급정부를 민주화 이후의 정상정부가 어떻게 승계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긴급정부를 청산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문제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1987년 이후 민주개혁세력은 너나할 것 없이 군사쿠데타의 지도자들을 처벌하고 남북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면서 긴급정부의 청산에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만으로는 정상정부에 의한 긴급정부의 승계가 될 수 없다. 긴급정부는 그 본질상 생존과 질서의 확보라는 일차적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활하기 때문이다.

민주와 자유의 이념이 아무리 강력해지더라도, 생존과 질서의 확보라는 일차적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 한, 긴급정부는 승계될 수 없다. 민주화 이후의 정상정부가 그 이전의 긴급정부보다 나은 더 수준으로 생존과 질서를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수 없다면, 민주화 이후의 정상정부는 결코 공고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청산이나 남북긴장완화만으로 긴급정부의 승계가 마무리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방향을 정반대로 바꾸어 민주화 이후의 정상정부가 생존과 질서의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검찰통치, 긴급정부의 잔존형태

칼 슈미트가 말했듯이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는 자이다(정치신학). 하지만 그 주권자는 예외상태로의 돌입을 선언할 수도 있고, 예외상태의 해제를 선언할 수도 있다. 전자가 정상정부의 중단과 긴급정부의 구성이라면, 후자는 긴급정부의 해체와 정상정부에 의한 승계다. 대한민국은 아직 이 후자의 단계를 거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횡행하고 있는 검찰 통치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는 이처럼 미처 승계되지 못한 긴급정부를 오늘날 대한민국 검찰이 짊어지고 있으며, 그 점에서 오늘날의 검찰 통치는 긴급정부의 잔존형태라고 생각한다.

긴급정부를 검찰이 상속하게 된 까닭은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특히 군사쿠테타와 정치개입의 오명에 시달리는 군(軍)이나 인권침해와 권력자 시해의 그늘이 깊은 정보기관들이 민주화 이후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검찰은 이 과거청산의 실무책임을 맡는 방식으로 긴급정부를 장악했다.

미군정기간에 정치적, 법적 위상을 확보한 검찰

이 과정에는 대한민국 검찰조직 자체의 독특한 정치적, 법적 위상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기간 동안 검찰은 행정부에 속하면서도 법원과 동등한 신분을 가지는 독특한 정치적, 법적 위상을 확보했으며, 경찰을 비롯한 행정 관료들에게 사법적 통제를 가하기 위하여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소독점, 기소편의의 막강한 권한을 차지했다. 군사정권 기간의 긴급사법체제에서 검찰의 권한행사는 상당히 제약되었지만, 민주화와 함께 검찰은 당연하게도 긴급정부의 상속자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형사사법기구는 원래부터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권한을 검찰이 행사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검찰에 의한 긴급정부의 상속은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이후의 정상정부가 긴급정부를 승계하는데 성공적으로 기여해 왔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사실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거듭되는 선거와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정상정부가 생존과 질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구성원들은 민주적 선거에 의해 정상정부를 구성해 놓고도 생존과 질서의 문제를 맡기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선출된 권력집단의 무능이나 권력기관 및 국민 대중의 뿌리 깊은 관성을 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적 정상정부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권한을 틀어쥔 검찰이 긴급정부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검찰에게 이것은 숙명이다.

둘째, 동전의 다른 면으로서, 대한민국 검찰에게 긴급정부의 상속자 노릇이 그리 달가운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기실 전쟁의 수행이나 대규모 경제발전과 같은 적극적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 한 긴급정부의 유지는 권력집단에게도 즐길만한 것이 아니다. 긴급정부의 총수노릇은 기껏해야 죽어라 고생하면서도 국민대중의 비난을 온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자면, 최근 들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남발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긴급정부를 상속해야만 했던 검찰조직 내부에 집단적으로 피로가 누적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사정을 통찰하여 획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이미 다소 신경질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검찰 통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 자신이 긴급정부를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검찰의 입장에서 그것은 국민대중을 생존과 질서가 확보되지 않은 무정부상태로 방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려 무인정권의 권력승계법칙과 동일한 논리를 깨자

흥미롭게도 이와 같은 분석은 지난 십여 년 간 검찰 통치가 존속되어 온 방식을 설명해 준다. 검찰 통치는 검찰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기존 수뇌부를 잘라내고 새로운 수뇌부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이어져 왔다. 생존과 질서를 확보하지 못하는 권력자가 새로운 권력자에 의하여 처단되는 방식으로 긴급정부가 승계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의방-정중부-경대승-이의민-최충헌으로 이어진 고려 무인정권의 권력승계법칙과 동일한 논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전쟁과 같은 외부적 위협이 감소한 상황에서 형사사법은 개인과 사회의 차원 모두에서 생존과 질서를 확보하는 핵심기제가 된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가 계속된다면 대한민국 형사사법절차의 모든 권한을 제도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긴급정부의 상속자 노릇을 하는 사태는 중단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이처럼 난마같이 얽힌 검찰개혁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 것인가? 민주적 정상정부가 검찰 통치보다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존과 질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확보될 수 있을 것인가?

1987년 이후 20여년의 정치적 경험은 전국 단위의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과 자치의원 선거가 아무리 거듭되더라도 검찰 통치의 문제, 즉 긴급정부의 승계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렇게 선출된 대표들은 예외 없이 검찰수사의 대상이 되어 검찰 통치를 연장하고 그 정당성을 부여하는 꼬투리로 활용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제 민주개혁세력이 함께 고민해야 할 대안이 무엇인지는 명백하다. 시민들이 선거로 검찰 권력을 구성한 뒤 차기 선거에서 그 책임을 묻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가?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의 도입과 함께 지방검사장을 주민직선으로 선출하는 방식을 검찰 개혁의 차원에서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여 년간 긴급정부의 상속자 노릇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대한민국 검찰을 위해서도 민주개혁세력의 집단적 토론은 속히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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