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도지사 간 서로 쌓인 감정이 21일 폭발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장' 발언을 두고 벌어진 공방이 계기가 됐다. 호남 경선을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각 캠프 간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포문은 문재인 전 대표가 이날 문화방송(MBC)가 주관한 여섯 번째 더불어민주당 경선 토론에서 먼저 열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우리는 후보로 경쟁하지만, 한 팀이다. 함께할 때를 생각하면서 네거티브만큼은 하지 말자. 네거티브를 하면 네거티브에 의해 상대가 더렵혀지기 이전에 자기 자신부터 더렵혀지고 전체의 힘을 약화시킨다"고 공개적으로 작심 발언을 했다.
안희정 지사는 "네거티브하지 말자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문제는 문재인 후보를 돕던 사람들이 네거티브를 하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참 점잖게 말씀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아주 아프게 때린다. 그런 사실이 반복된다. 아무래도 화력이 문재인 후보 쪽이 제일 좋다 보니, 많은 분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문재인 전 대표는 "제가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에 비판 의견을 낸 것과 네거티브는 다르다"면서 "그 점(대연정)은 마땅히 토론해야 할 쟁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안희정 지사는 "비판의 실질적인 양상이 상대의 인격을 공격하기 때문에 문제"라며 "문 후보를 지지하시는 분들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상대 후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보라. 얼굴이 화끈거린다"고 다시 받아쳤다.
문재인 전 대표는 "지지자들끼리 인터넷 통해서 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더라도, 적어도 선거대책위원회 차원에서는 하지 말자"라고 말했다.
안희정 측 "문재인 말실수로 호남판 변한다"
문재인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안희정 지사에게 "네거티브하지 말라"고 선공하고 나선 데서는 호남 지지율이 막판에 떨어질까 하는 초조함이 느껴진다. 문재인 전 대표는 19일 다섯 번째 당 경선 토론회에서 군 복무 시절 전두환 당시 여단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안희정 캠프 박수현 대변인이 "호남 민중에게 사과하라"는 논평을 냈다.
호남 민심에 올인하다시피 한 문재인 캠프는 갑자기 닥친 악재에 발칵 뒤집어졌다.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에서 공방도 가열됐다. 문재인 전 대표의 측근인 최재성 전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광주 시민 이용해서 이리 하고 싶습니까?"라며 안희정 캠프에 발끈했다. 정청래 전 의원도 자신의 트위터에 안희정 지사가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사진을 게재하며 "본인은 이명박이 좋은 대통령이라 표창장 받았는가?"라고 적었다.
민주당 첫 경선이 오는 27일 호남에서 치러지는 데다, 호남 민심이 수도권 민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모든 캠프에서 호남 경선은 중요하게 여겨진다. 안희정 캠프도 내심 기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안희정 캠프의 강훈식 대변인은 이날 오전 여의도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전 대표의 실수로 인해 호남판이 변하고 있다. 숨은 문재인 비토론이 다시 올라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호남에서 대세론이 깨지면 전체에서 대세론이 깨지리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호남의 40~50대 이상, 5.18의 아픔이 있는 분들에게 변화가 있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자신이 '적폐 청산의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틈새 시장을 노렸다. 이재명 시장은 문재인 전 대표의 '전두환 표창' 발언과 관련해 "문재인 후보가 안보관을 강조하시다가 약간 실수하시는 바람에 본의와 다르게 오해받았다. 광주 피해자에게 상처가 되니 항의받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문제를 광주 학살 세력, 새누리당 잔당들과 손잡고 '권력을 나누겠다, 동지가 되겠다'고 주장하신 분이 지적한 것에 놀랐다"면서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를 싸잡아 겨냥했다.
안희정 지사는 "너무 정치를 극단적으로 비교하지 말라. 의회에서 대연정, 협치를 강조하는 것을 '학살 세력과 손잡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건 좀…"이라며 불쾌한 뜻을 내비쳤다.
한편, 문재인 전 대표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제안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성과가 담보되지 않은 회담은 할 수 없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문재인 전 대표는 "한미, 한일, 한중의 충분한 사전 협의를 통해 북핵 완전 폐기라는 원칙에 합의할 수 있을 때, 그렇게 합의되면 언제든 김정은과 남북 정상회담에 임하겠다. 그 점에서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 제가 같은 입장이리라고 본다"면서 사실상 '조건 없는 정상회담'에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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