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 씨(가명)가 지난 1월 22일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2014년 10월 이곳 콜센터 직원이 자살한 이후 2년 3개월 만에 두 번째 자살자다. 2014년 10월 LG유플러스 상담팀장이 자살하며 남긴 메모에는 "수많은 인력의 노동착취"와 "정상적인 금액(임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었다.
이후 이곳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발생한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실습생이 살인적인 노동 환경 속에서 취업 5개월 만에 자살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에서는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오늘 저녁 친구들한테 '취업 턱'을 낼 테니 내 통장에서 10만 원 찾아놓아요."
자기가 돈을 버니 이제 식당일 그만두고 엄마는 쉬라던 아들이었다. 고3인 정연채(가명) 씨는 2016년 12월 1일부로 여수산단 대림산업 협력업체인 금양산업개발에 수습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정 씨는 자기 페이스북에 '역시 일하는 게 꿀잼'이라는 글을 남길 만큼 회사 일을 즐거워했다. 출근 닷새째 날에 남긴 글이었다. 하지만 일한 지 보름이 지나면서부터 달라졌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일하는 게 힘들다고 토로하기 시작했다. 과중한 업무지시, 그리고 상급자의 폭언 등이 그를 괴롭혔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에게 "사회생활은 원래 힘들다"며 "참고 일하라"고 다그쳤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이 아버지 가슴에 못으로 남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들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1월 25일 자기가 일하던 자재창고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스스로 목을 맸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아들 주검을 마주한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열했다. 두 달 만에 마주한 아들 손가락 지문은 다 닳아 없어져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기에 일한 지 두 달 만에 지문이 다 닳아 없어졌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기가 일하던 직장에서 항의성으로 목을 매고 자살했을까.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의문이 이어졌다.
아들이 힘들다고 했을 때, 참고 일하라고 했던 아버지의 가슴에는 후회만이 남아 있다.
죽음, 또 죽음....끊이지 않는 현장 실습생들의 자살
고3 정 씨가 죽은 날은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 현장실습생 홍은주(가명) 씨가 죽은 지 사흘 지난날이었다. 이유 없는 죽음은 없는 법. 둘 다 동갑내기, 그리고 졸업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다.
숨진 정 씨도 입사한 지 두 달도 안 됐지만 지문이 다 닳을 정도로 힘든 일을 해야 했다. 과중한 업무지시, 그리고 상급자의 폭언이 정 씨를 힘들게 했다. 고3에 불과한 이들은 인격 모욕을 감내하면서 직장 내 가장 힘든 일을 해야 했다. 그러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선택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도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못할 때 취하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홍 씨나 정 씨의 사례가 특수한 경우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NO'다.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들이다. 여기 사례들이 있다.
군포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A씨는 2015년 12월부터 경기도 성남의 외식업체 조리부에서 일했다. 양식부 막내로 수프를 끓이는 일을 담당했다. 업무 스케줄대로라면 '오전 11시 출근'이지만 '벌칙' 명목으로 2시간 먼저 나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퇴근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11시 넘어 퇴근했다.
한 번은 수프를 발에 쏟아 2도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산재는 꿈도 못 꿨다. 치료비는 본인 부담이었다. 다쳤지만 쉴 수도 없었다. 발에 수포가 생겼지만 주방용 장화를 신고 평소처럼 일해야 했다.
직장 상사의 괴롭힘도 그를 힘들게 했다. 더는 견디기 못했다. 상사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2016년 5월의 일이었다. 그래도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는 출근해야 했다. 그러던 중 상사가 오전 9시까지 출근하라는데 1시간 지각했다. 상사는 A씨를 크게 질타했다. 말이 지각이었지 근로계약서상으로는 출근 시간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한 A씨였다.
호되게 혼난 그날 오후, A씨는 혼자 매장을 나갔다. 그 뒤 다음날 새벽, A씨가 다닌 외식업체의 식료품 공장 앞 골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4년 1월에는 CJ 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특성화고 현장실습 학생 B씨가 상사의 폭언, 폭행 등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다. 2011년 12월에도 현장실습 학생 C씨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주 70시간 가까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C씨는 지금까지 뇌사상태다.
'돈벌이 취업'으로 전락한 현장 실습제도
현장실습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통계자료에도 드러난다. 2016년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중소기업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특성화고 출신 취업률은 2012년 41.5%에서 2015년 62.6%로 증가한 반면, 고용보험이 보장된 일자리 취업비율은 2012년 79.6%에서 2015년 58.8%로 급감했다.
특성화고 취업률은 매년 늘어 2015년 최고점을 찍었으나, 고용보험 보장 일자리는 매년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한마디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이야기다.
좀더 구체적인 조사 자료도 있다. 2012년 2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전교조 실업교육위원회가 전국 특성화고 학생 1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문계학교 산업체 파견 실습학생 설문조사'를 보면 현장실습생 중 19.6%가 2교대, 3교대 등 불규칙한 근무환경을 하고 있었다.
업무 시간도 일반 노동자보다 많았다. 주간 노동시간은 49.6시간으로 노동법의 '주 40시간'보다 10시간 정도 많았다. 야간 노동시간은 월 26.6시간, 휴일 노동시간은 월 11시간이었다. 잔업 시간은 월평균 25.1시간이었고 일일 노동시간은 월평균 9.2시간으로 조사됐다. 전체적으로 보면 실습생 30% 정도가 야간 노동, 휴일 노동을 하고 있으며 40%가 잔업을 하고 있었다.
또한 실습생 중 18.3%가 폭언을, 5.8%가 폭행을, 3.8%가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5%의 실습생은 일하다 다쳤지만 산재보험을 적용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전 교육으로 산재 예방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54.9%, 노동법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은 38.8%, 성희롱 방지 교육은 34.6%가 받지 못했다고 답변했다.
취업률에 목맨 교육계, 관리·감독은 뒷전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첫 번째 이유는 정부의 특성화고 지원 정책이 취업률 올리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의 특성화고 사업 대상은 '취업률 45.5% 이상인 학교'로 제한돼 있다. 한마디로 취업률이 45.5% 이상이 안 될 경우,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주목할 점은 이 취업률은 말 그대로 '취업률'만 본다는 점이다. 학생이 실습하는 업체와 학생의 전공 간 연관성, 노동조건 등은 따지지 않는다.
중기청의 특성화고 지원액은 학교 1곳당 1억7000만 원이다. 일선 학교 입장에서는 적은 돈이 아니다. 학교 간 경쟁이 치열하다. 교육부도 중기청과 결을 같이 한다. 취업률을 달성하면 재정지원을 주는 시스템이다. 그러면서 취업률이 미미하거나 일정 규모 이하인 특성화고는 종합고(인문계와 전문계가 같이 있는 학교)에 통폐합을 권고하고, 취업률에 따라 지원을 차등하는 정책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렇다 보니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의 전공 연관성, 업체의 노동조건 등을 살펴보기 보다는 취업 여부에만 관심을 두는 실정이다. 애견학과였던 홍 씨가 상담사로 취업한 이유기도 하다.
학교 및 교육청, 그리고 노동부의 관리·감독 미흡도 주요 원인이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생이 일하는 회사에 현장실습생 교육프로그램 관련, 적정한 노동조건을 요구하지 못한다. 그런 요구를 할 경우, 이후 업체에서 학교 측에 취업 학생을 요청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교육청에서 홍 씨 업무(해지방어 업무) 관련, "회사의 자율에 맡겼다"고 말한 이유다.
뿐만 아니라 현 구조상으로는 실습학생을 관리·감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각 학교당 취업지원 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결국 취업나간 학생을 관리하는 일은 담임선생이 할 수밖에 없다.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장학사 세 명이 전북 지역 전체를 담당하고 있다.
더구나 학교 관계자가 실습학생의 업무 현장을 방문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업체는 학교 관계자가 작업현장에 오는 것을 간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를 극도로 꺼린다. 그렇다 보니 정기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현장 면담도 전화 등 요식행위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전교조 실업위원회의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실습 중 교사가 사업장을 방문했다는 질문에 '예'라고 답한 학생은 56명(53.8%)인 반면, '아니오'라고 답한 학생은 47명(45.2%)이나 됐다.
그나마도 사업장 방문에서 교사에게 애로사항을 건의했다고 응답한 학생은 6명(8.3%)에 불과했다.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 학생은 50명(91.7%)이나 됐다. 홍 씨도 담임교사와의 면담에서 업무 스트레스가 있다고 했을 뿐, 이렇다 할 애로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MB정부가 지금의 문제 부활시켰다"
전교조 실업교육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오랜 시간 현장실습 문제를 다뤄온 하인호 전 인천비즈니스고 교사는 지금의 문제를 두고 현장실습이 교육이 아닌 취업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 교사는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실습을 나갈 수 있는 업체는 거의 없다"며 "업체가 실습생을 받아 가르칠 구조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 교사는 "여건이 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을 받으니 형식은 실습이지만 내용은 사실상 조기취업"이라며 "결국, 이런 구조가 학생들을 사각지대에 놓이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교사는 "그나마 이런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돼 2006년 '현장실습정상화방안'을 통해 현장실습은 사실상 폐지됐다"며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산업체의 요구라는 이유로 체계적인 논의와 준비과정도 없이 2008년 학교 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으로 다시 원래 상태로, 즉 현장실습이 다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 교사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장실습을 중단하고 정부와 산업체, 노동계, 그리고 교육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 교사는 "현장실습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워낙 오랜 시간 왜곡돼 사용된 게 현장실습이다. 취업과 실습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분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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