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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인간 말종' 만들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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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을 '인간 말종' 만들었다. 그래서?

[정욱식 칼럼] 김정남 피살 '공포 마케팅', 정작 국가 안보는 뒷전

김정남 피살 사건이 숱한 의문 속에서도 북한의 소행으로 굳어지는 분위기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북한인들의 연루 가능성이 짙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지만, 결정적 증거는 아직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강철 주(駐)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는 '음모론'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17일(현지 시각)에는 말레이시아가 북한의 적대 세력과 "야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20일(현지 시각) "이번 사건으로 유일한 혜택을 보는 것은 한국"이라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양측의 공방은 단교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기에, 더구나 범행 동기·장소·수법과 범행 이후의 행적에 의심쩍은 부분이 많기에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른감이 있다. 유력한 해석은 김정남의 망명이나 탈북자들이 김정남을 망명 정부 수반으로 내세울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암살했다는 것으로 쏠린다. 하지만 이것도 아직까지는 가설이다. 자칫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국내 보수 세력은 김정남 피살 사건을 빌미로 안보 불안감을 조장하고, 야권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격을 강화하며, 심지어 조속한 사드 배치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북한의 소행이라면, 그리고 이게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면, 이는 그만큼 김정은 정권이 체제 유지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중앙일보>는 21일 자 사설에서 "김정은은 말레이시아에서 암살정권의 본색을 드러냈다"며, "한국 국민을 향해 주저없이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리고도 남을 인간임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 지난 19일(현지 시각) 김정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는 누르 라시드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경찰부청장 ⓒAP=연합뉴스

하지만 이건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하다. 김정남 암살이 북한의 범행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김정은 체제 '강화'의 맥락에서 이뤄진 것일 게다. 반면 김정은이 한국을 향해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리면 이건 북한 체제의 '종말'을 의미한다. 한미 연합전력은 이를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고, 북한 정권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스테판 월트의 주장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는 "위협을 과장하는 사람들은 (김정은과 같은) 핵 깡패들은 억제가 불가능하고 방사능 홀로코스트를 일으켜 자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자기 보존이라는 본능에 매우 충실하다"고 일갈한다. 국내 보수 세력이 김정은 정권의 악마성 이미지에 편승해 '공포 마케팅'에 나서기에 앞서 곱씹어봐야 할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게 있다. 한국이 배제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는 미중 간의 물밑 협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지난 9일 전화통화를 했다. 국내 언론은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발언을 집중 보도했지만, 당시 양국은 전화통화 실무 협의를 하면서 북한 문제도 비중 있게 다뤘다고 한다. 주목할 점은 그 이후의 움직임들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신형 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와 김정남 피살 사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절제된 반응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마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으로 돌아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 및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도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올해까지 전면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를 두고 국내 언론은 김정남 피살 사건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로 해석하는 시각이 유행하지만, 다른 해석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를 철저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미국도 안보리 대북 결의의 또 다른 축인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대화와 협상에 나서달라는 발언권을 강화할 수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대북 제재 강화를 환영하면서 "우리는 북한이 진지한 비핵화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오도록 중국이 북한의 제1무역 파트너로서 자신들의 고유한 대북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계속 촉구한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대화가 아니라 대북 제재 및 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황교안 권한 대행 체제의 입장과는 분명 온도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과 미국은 뉴욕에서 '트렉 1.5 회의'도 저울질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 보수 세력의 염원(?)과는 다른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을 예고해준다. 황교안 체제와 보수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드도 조속히 배치하고 한미군사훈련도 '역대급'으로 치르려고 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건 국내 보수 세력의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에게 당장 급한 것은 사드 배치나 강력한 대북 무력시위가 아니라 임박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보유를 비롯한 핵 능력 강화 저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도 열어놓겠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분위기인 것이다.

이제 한국은 중대한 선택의 지점에 서게 됐다. 충분히 억제 가능한 북한의 핵공격 가능성에 과대망상에 가까운 집착을 할수록 신경쇠약도 심해진다. 김정은 체제를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인간말종으로 여길수록 합리적이고 국익 우선의 대북정책을 수립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주도성을 더더욱 약화되고 우리의 운명을 타자화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반면 변화하고 있는 물밑 흐름을 날카롭게 포착하면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 지금 한국은 '사드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김정은을 악마화하는 데에 허송세월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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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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