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 개헌특위에서 진행 중인 논의에 관한 뉴스가 떴다. 개헌특위 산하 소위원회에서 대한민국의 권력구조를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로 바꾸기로 합의가 됐다는 보도였다. 나중에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이 '합의가 된 사실은 없다'고 반박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오스트리아식 권력구조에 관한 논의가 오간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 후 한 시민단체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청중들에게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라는 것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고 물어보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청중 중에는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가 뭔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에 여행조차 간 적이 없다'는 얘기를 하는 분도 있어서 청중들이 웃기도 했다.
이처럼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는 시민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실제로 국회 개헌특위에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논의가 오고 갔다면, 그것은 세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오스트리아식 권력 구조를 어떻게 표현하든 간에, 그것은 지금 대통령이 가진 권력의 대부분을 국회로 가져오겠다는 것이다. 그런 논의를 하려면, 국회 구성부터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식 선거 제도부터 먼저 도입하는 것이 순서다.
오스트리아식 선거 제도란 바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이 제도를 도입해야만, 국회 구성이 표심대로 공정하게 이뤄진다. 그리고 다양한 정당들이 정책을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래야 의원내각제를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의원내각제를 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선거권 연령도 만16세부터이다. 만18세 선거권 도입에도 망설이면서, '오스트리아식'을 입에 담는 것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둘째, 오스트리아식 권력 구조를 이원집정부제로 부르는 것은 정보를 왜곡하는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대통령을 결선투표제로 뽑지만, 대통령이 갖는 권력은 평상시에는 명목상의 것이다. 대부분의 권력은 총리와 내각이 갖는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권력구조는 '이원집정부제'라기보다는 의회제(의원내각제)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굳이 오스트리아에 '이원집정부제'라는 용어를 붙이는 것은, 의원내각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의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 의견으로는, 선거 제도만 개혁된다면 오스트리아식 권력 구조를 도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국회 개헌특위가 하는 것처럼,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본질을 흩트리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셋째, 현재의 대통령 중심제를 오스트리아식 권력 구조로 바꾸려면, 국민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처럼 국회 개헌특위에서만 논의해서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런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헌 논의를 하는 절차부터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권력 구조처럼 첨예한 쟁점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개적인 토론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어떤 결론이 나든 간에 국민들의 동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지금처럼 국회 개헌특위가 '섬'처럼 고립된 논의를 계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게 해서는 개헌의 현실성도 없다. 또한 개헌은 선거제도 개혁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가 선행해서 또는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이 다행히 국회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두 개의 의미있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두 법안 중 하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국회의원 선거 제도를 바꾸는 법안이다. 이미 국회에는 박주현 의원(국민의당),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각각 발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이 두 개 존재한다. 그리고 지난 15일 박주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또 하나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법안을 발의했다.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2015년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제안한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국회의원 정수와 관련해서도 국민 14만 명당 1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것으로 원칙을 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OECD 국가 평균이 국민 10만 명당 1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뽑고 있고, 우리보다 인구가 많은 독일의 경우에도 인구 13만5000명당 1명 정도의 국회의원을 뽑고 있는 상황이다.
지금 국회의 문제점은 특권은 많은 반면,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국회의원은 적다는데 있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선거 제도를 개혁하고, 국회의원의 특권을 없애면서, 국회의원 숫자는 늘릴 필요가 있다. 인구가 560만 명 정도에 불과한 덴마크가 179명의 국회의원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패가 없는 국가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보면,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되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국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하나의 의미있는 변화는 '국민 참여 개헌절차법'이 발의된 것이다. 김종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이 법안은 헌법 개정에 관하여 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토론의 기회를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추첨제로 구성되는 시민위원회가 헌법 개정안에 대해 토론을 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법안이 뒤늦게나마 발의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처럼 국회 개헌특위 내에 갇힌 개헌 논의로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또한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을 개정하고자 한다면,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국민들의 참여를 법률로 보장하고, 개헌 절차 자체를 합리적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추첨제로 뽑힌 시민들로 회의체를 구성해서 개헌의 쟁점에 대해 토론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금도 아일랜드는 추첨으로 뽑힌 99명의 시민들과 대법관1명이 100명의 회의체를 구성해 헌법 개정안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촛불 민심이 바라는 것은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시스템의 교체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 핵심은 바로 선거 제도의 개혁이다. 그리고 선거 제도 개혁을 전제로, 직접민주주의 확대, 지방 분권, 기본권 강화를 할 수 있는 개헌을 해야 한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30년이 지났기 때문에, 개헌의 필요성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직접민주주의에 관해 단 하나의 조항도 두고 있지 않은 헌법으로는 촛불 민심을 수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권력분산형 권력 구조에 관한 논의도 필요하다.
선거 제도가 독일식이나 오스트리아식으로 바뀐다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권력 구조를 도입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
문제는 토론의 과정이다. 지금처럼 밀실에서 진행하는 개헌 논의로는 안 된다. 국회가 진짜 개헌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선 선거제도 개혁, 후 개헌(또는 두 가지의 동시 추진)'의 원칙을 수용하고,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절차를 설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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