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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고기 굽기만 했지 드실 줄 몰랐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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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고기 굽기만 했지 드실 줄 몰랐던 분"

[주간 프레시안 뷰] "5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만납시다"

경찰이 물대포로 68세 농민을 근거리에서 가격하여 사경을 헤매게 했습니다. 그런데 국가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사과 한마디 없이 유럽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오히려 복면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엉뚱한 말만 남겨 놓았습니다.

공권력의 직접적인 폭력에 의해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경찰청장은 사퇴는커녕 사과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5일로 예정된 집회에 대해서도 금지통고를 남발하며 방해를 해 왔습니다. 다행히 법원이 어제(3일) 집회를 허용하는 결정을 내려, 5일 집회와 행진은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백남기 선생을 생각하면, 지금의 상황이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5일 집회를 앞두고 백남기 선생이 살아온 궤적에 대해 돌아보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봅니다.

"저희 아버지는 전문 데모꾼이 아니고 시골의 평범한 농부이자 다정하고 흥많은 할아버지세요. 손주가 많이 그리워하는…."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백남기 선생의 따님인 백민주화님이 페이스북에 쓴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한겨레21>이 백남기 선생이 살아온 궤적을 취재한 것을 보더라도, 그는 따뜻한 분이었습니다.

(☞관련 기사 : "아빠, 왜 이렇게 누워있어? -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씨는 어떤 사람일까요?")


백남기 선생은 서슬퍼런 유신 치하에서, 그리고 전두환 정권 하에서 감옥과 수배를 겪었습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들어간 사람이었지만, 군사독재 아래에서 침묵하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대학에서 제적을 당했습니다.


이런 시련 속에서도 백남기 선생은 좋은 선배이고 동료였습니다. 백남기 선생을 기억하는 후배(김경일 성공회 신부)의 말에 따르면, "고기를 구울 때에도 집게를 들고 고기를 굽기만 했지 드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분이었습니다. 웃기만하고 좀처럼 말이 없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백남기 선생은 대학에서 제적당하고 돌아간 고향 농촌에서 30년 이상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과 농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한국의 농업과 농촌 현실을 보며 가톨릭 농민회 활동, 우리밀 살리기 운동을 해 오셨지만, 최근에는 직함을 맡지 않고 땅과 함께 살아 오셨습니다. 참변을 당한 당일에도 아침에 우리밀을 심어놓은 밭을 돌보고 올라오셨다고 합니다.

지금의 정치와 주류 언론은 '이렇게 살아온 농민이 왜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참된 농민이고 좋은 이웃이고, 따뜻한 할아버지였던 분이 왜 경찰차벽 앞에 설 수밖에 없었는지가 중요한데도 말입니다.


<한겨레21>에 따르면 참변을 당하기 한 달 전인 10월 14일, 백남기 선생은 한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농민운동 30년을 했는데, 이젠 정말 더는 농사짓기 힘든 세상이네. 나락(도정하지 않은 쌀) 40kg에 4만 원이야. 콩은 40kg에 8만 원이야. 개 사룟값만도 못하네. 우리가 운동을 잘못했는가."

농업의 현실이 이렇게 된 것은 농민들의 탓이 아닙니다. 1990년대 이후 계속된 농산물 시장개방, FTA, 그리고 쌀수입개방 등이 이런 현실을 만들었습니다. 백남기 선생은 이런 현실에 항의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을 것입니다.

백남기 선생이 꿈꾸어온 세상은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농업과 농민이 존중받는 사회였습니다. 생명의 가치가 이윤보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백남기 선생이 사경을 헤매는 동안 여당과 제1야당은 합의해서 한중 FTA를 처리했습니다. 참담하기 짝이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됩니다. 최소한 사과는 받아내고 책임은 물어야 하겠습니다. 맨손의 농민에게 경찰이 내부지침도 어겨가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해 놓고, 적반하장 격으로 '집회에 참가하면 전원 체포를 하겠다'는 권력 앞에 굴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연히 합법인 집회를 함부로 금지하는 공권력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5일)은 거리에서 많은 분들을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백남기 선생이 좋아한다는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도 같이 불러보면 좋겠습니다.

간디는 "진정한 자치(스와라지)는 권위가 남용되었을 때 모두가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권력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 때입니다.

▲ 백남기 씨의 딸 백민주화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백남기 씨와 손자의 모습. ⓒ백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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