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은 29일 라디오 연설에서 "대운하가 필요하다는 제 믿음에는 지금도 변화가 없다"면서도 "대운하의 핵심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인데, 우리 정부에서는 그것을 연결할 계획도 갖고 있지 않고 제 임기 내에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했다.
1년 만에 '같은 입장' 재확인, 왜?
지난 해 6월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이 "대운하 사업도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고 '조건부' 중단의사를 천명한 지 꼭 1년 만의 일이다.
정부가 속도를 내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사실상 대운하가 아니냐"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일각에서 이를 정치적 소재로 활용해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판단에서 내린 결정"이라면서 "앞으로 대운하와 4대강 사업을 연결시키는 오해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의구심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정쟁은 그만 둬야 한다고 호소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반(反) 이명박' 정서가 확산되면서 청와대가 급작스럽게 '서민'과 '중도'을 앞세운 '소통 모드'로 돌아선 분위기와도 맥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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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사업 축소·예산은 뻥튀기…해명없이 "무조건 믿어라"?
하지만 과연 이같은 해명을 놓고도 여전히 의혹은 해소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대운하는 하지 않겠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실질적인 대운하 사업'이라는 의심을 사고 있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강을 이대로 둘 수는 결코 없다"며 "연간 홍부 피해액과 복구비 등의 3년치 예산만 들이면 투입되는 예산의 몇 십배 이상의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의 내용 자체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해서도 이날 이 대통령은 일언반구 해명을 하지 않았다.
최근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과 관련해 전국에 설치된 보(洑)의 숫자를 16개로 발표했다가 4개가 더 많은 20개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의혹을 자초했다. 보는 간단한 설계변경만으로도 대운하의 갑문으로 활용될 수 있다. 애초 16조9000억 원이었던 사업예산도 22조2000억 원으로 부풀려진 바 있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4대강 사업을 두고 '사실상 대운하'라고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동관 "백지화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이 대통령이 이날 밝힌 입장이 '대운하 백지화'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청와대의 태도도 새로운 논란을 불러 일으킬 조짐이다.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대운하 백지화'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백지화라는 표현은 맞지 않고, 임기 중에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하자"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대운하는 지금도 필요하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운하 반대여론이 적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꼭 우리가 추진해야 하는 '4대강 살리기'마저 대운하와 연계해 의구심을 갖거나 정쟁의 도구로 삼는 양상이기 때문에 입장을 명확히 밝혀 두는게 좋다고 판단해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완벽한 대운하 포기 선언이 아닌 이유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4대강 사업으로' 사전 작업은 미리 다 해둔 상태에서 '미래의 권력'이 이를 완성해 주기를 원하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했다.
무엇보다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이데올로그로 통하는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의 발언이다. 대운하 공약의 입안자이기도 한 류 전 실장은 이날 보도된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4대강 살리기'는 대운하에서 진화, 업그레이드한 것"이라고 관련성을 인정했다.
이 대통령이 대운하와 관련해 보이고 있는 '애매모호한 태도'와 관련해 류 전 실장은 "지금은 그렇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 지는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대운하 사업이 다시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4대강 사업 자체가 명백한 대운하"…"결국 토목공사는 다 하겠다는 것"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등 전국의 환경단체로 구성된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은 이날 논평을 통해 "4대강 사업 자체가 명백한 운하 사업"이라며 "고장난 녹음기처럼 여전히 '운하'라는 단어에만 매달리고 있는 이 대통령은 대형 토목사업을 거부하는 민심을 모르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4대강 사업'이 실질적으로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것' 외에는 기존 '대운하 사업'과 대동소이 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말장난'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4대강 사업 자체를 운하사업으로 규정하며 즉각 중단돼야 한다"면서 "이 대통령이 건설사 사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면 하천 생태계에서의 대규모 토목사업과 이로 인한 하천생태계 훼손, 수질 및 식수원 오염을 우려하는 국민의 민심과 소통하라"고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별도의 논평에서 "이번 선언은 단지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지 않을 뿐 다른 토목공사는 모두 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며 "오히려 4대강 정비사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난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4대강 사업을 '이름만 바꾼 대운하'로 보는 사람도 많다"며 "대운하 추진포기 발표의 진정성을 살리려면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타당성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與 "이제 논란은 끝" vs 野 "진정성에 의심"
야당들의 평가도 냉혹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여전히 국민을 현혹시키고 헛갈리게 하는 발언"이라며 "대운하를 하지 않겠다면 조건없이 대운하 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해야 하며 진정성이 있다면 예산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도 "4대강 살리기 예산 중 위장된 대운하 사업으로 의심되는 예산을 삭감해 그 돈을 복지·교육 분야에 투입해 그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며 "내친김에 4대강 살리기 사업도 포기하길 바란다"고 했다.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자유선진당, "계속 대국민 사기극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라는 민주노동당의 반박도 하루 종일 이어졌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일부에서 끈질기게 문제를 제기했던 대운하를 임기내에 추진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말했으니 그 문제는 조용해질 것"이라고 평가해 대조를 이뤘다.
같은 당 윤상현 대변인도 "대통령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돼온 대선 핵심 공약에 직접 마침표를 찍은 것은 소모적 논란을 버리고 국가 미래를 위해 단합하자는 결단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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