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은 국제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인권의 옹호자'로 여겨진다. 때문에 세계의 인권 증진에 기여하는 것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책무 가운데서도 기본 중 기본이다.
앞 편에서 살펴본 평화유지군들의 SEA 문제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여성 등 성 소수자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몇 가지 성취를 남겼다는 점을 자칫 간과하게 할 수도 있다.
여성 인권 문제에 대해 반 전 총장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정도였다. 반 전 총장은 취임 초기부터, 유엔 산하의 여러 여성 관련 위원회와 조직들을 통합한 '유엔 여성기구(UN Women)' 창설을 준비해 2010년 출범시켰고,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을 초대 대표에 앉혔다.
반 전 총장은 2016년 9월 자신의 임기 마지막 유엔총회 개회 연설에서 "나는 역대 어느 사무총장보다도 유엔 고위직에 여성들을 많이 임명했다"고 자랑하면서 "하늘의 절반을 여성이 떠받치고 있으며, 우리의 모든 목표를 이루는 데도 여성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언론인 톰 플레이트는 그가 펴낸 대담집 <반기문과의 대화>에서 "60대 한국인 신사인 그는 여권 신장에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인다"고 쓰기도 했다.
다만 유엔 여성 인권 대사로 미국 만화 주인공 '원더우먼'을 임명한 것은 비판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낳았다. 선정적인 옷차림과 몸매를 강조한 원더우먼이 어떻게 '여성 인권' 대사일 수 있느냐는 논란이었다.
또 지난해 10월 <뉴욕타임스>는 "유엔 총회가 '유엔 여성'을 설립한 것은 반기문 총장 하에서였다. 반기문은 동성애자 권리를 옹호해 왔고, 동성애 커플에 대한 혜택을 늘렸다"고 긍정 평가하면서도 "여성 리더십 촉진에 대한 반기문의 기록은 혼조세를 보였다. 그는 몇몇 중요한 직위에 여성을 임명했지만, 2015년 고위급 인사의 대부분은 남성에게 돌아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동성애자 차별 철폐를 위한 반 전 총장의 노력은 종교 근본주의자들과 잠재적 혐오 범죄자들을 제외한 전 세계 시민들로부터 지지와 갈채를 받았다. 반 전 총장은 2015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이 동성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것은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하자 "미국 인권을 진전시킨 거대한 한 걸음"이라고 평가하며 "역사적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을 즉각 발표했다.
이에 앞서 2014년에는 유엔 전 직원의 동성 결혼을 인정한다고 밝히며 "동성애 혐오에서 벗어날 것을 모든 유엔 구성원에게 촉구한다"고 했다. 같은해 2월에는 이례적으로 유엔 회원국인 우간다에 대해 "동성애 처벌법을 즉각 철회하라"고 공개 촉구하기도 했다.
또 2015년 9월에는 뉴욕에서 열린 성소수자 인권 보장 행진에 참여해 강도 높은 지지 발언을 해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같은 시기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 등과 함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고위급 대화에도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당시 반 총장의 발언 내용은 인권 단체들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것이었다. 그는 "(약자인) LGBT에 대한 소외와 배제를 끝내는 것이 인권의 우선 순위"라고 강조했다.
"저는 이 문제에 완전히 전념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자라면서,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않아 왔습니다. 하지만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저는 말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괴롭힘당하는 게이 소년과 나란히 서겠습니다. 일자리를 잃은 트랜스젠더 여성과, 비열한 성적 공격을 당한 레즈비언들과 나란히 서겠습니다. (중략)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하겠지만, 저는 LGBT인 이들이 어떤 위협이나 차별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LGBT의 인권이 침해받는다면, 우리 모두는 작아집니다. 모든 사람의 삶은 소중합니다. 그리고 어떤 삶도 다른 삶보다 더 가치 있지 않습니다. 제가 이끄는 유엔은 차별과의 싸움에서 작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장 소외받고 취약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선언이 아니라,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하는 말입니다."-2016.9.29 High Level LGBT Core Group Event 연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는 드물게, 특히 '반기문 사무총장'으로서는 더더욱 드물게, 강력한 회원국에 대해 민감한 인권 문제를 직접 제기하기도 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였다.
반 전 총장은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IOC 기조연설에서 "올림픽은 인종이나 지역, 성적 성향과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는 소치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반(反) 동성애법을 제정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功過)'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시리즈 목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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