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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우려' 이상의 일을 하려다 번번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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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우려' 이상의 일을 하려다 번번이 멈췄다

[반기문 팩트체크]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⑥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나름 균형 잡힌 접근을 하려 노력했다고 평가받는다.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대해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경하게 비판하거나, 미국 <뉴욕타임스>에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반기문의 발언을 모아 보면, 웬만한 평화 활동가 못지 않다.

"2개 국가 해법을 한 개의 국가 건설로 대체하는 것은 파멸을 초래한다." -2016.9.21. 유엔총회 개막 연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반복된 폭력의 늪에 빠지면 안된다. 근 50년간 지속된 '점령'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황폐해졌다." -2016.6.27.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반기문이 '점령(occupation)'이라는 용어를 말하자, 리블린은 인상을 찌푸렸다.

"50년의 점령 기간, 오슬로 협정의 이행을 바라 온 수십 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희망을 잃고 있다. 젊은이들이 특히 그렇다. 그들은 숨막히는 점령 정책에 화가 나 있고, 그들의 일상 생활에 가해지는 비난에 좌절하고 있다. 그들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하고 있는, 점령당한 요르단 강 서안(웨스트뱅크)에서 이스라일 정착촌이 끊임없이 확장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중략)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반세기를 점령 아래 살았고,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의미 있게 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성명을 발표한다. 우리는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연대의 뜻을 밝힌다. 하지만 삶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게 단지 시간을 끄는 게 아닌지 미심쩍다. 그들은 묻는다. '우리 눈앞에서 (우리) 땅이 사라지고 있는데, 우리는 세계가 그 땅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놓고 끊임없이 토론하는 걸 지켜봐야 하나?'" -2016.1.27 유엔 '팔레스타인 불가침 권리 보장 위원회' 2016 1차 세션 연설

"평화를 향한 진보에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사업 중단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의 자극적 행동은 정착촌의 인구 증가를 불러와 긴장감을 높이고 앞으로 정치적 진로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훼손하게 될 것이다" -2016.1.26. 유엔 안보리 중동 관련 대화에서

"여성과 아이들, 유엔 직원을 포함한 다수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았다. 이스라엘 공격으로 희생된 무고한 가자지구 주민들과 인도주의적으로 평화를 이루려 했던 유엔 직원들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2014.7.24.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엔 학교 건물을 폭격한 데 대한 비난 성명

말만 한 게 아니다. 그는 2007년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유엔의 중동평화 특사로 임명했고, 가자지구 교전이 격화됐을 시점인 2015년 10월 전격적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연달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일까? 성과가 없었다는 것.

반기문은 이스라엘에 대해 강력한 말로 경고를 했고, 이는 언론에 인용되기 딱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대표하고 있는 유엔의 결의안을 이스라엘이 수없이 위반하는 데 대해서는 무기력함만 보였다. 심지어 그의 '강한 말'도 영리하게 짜맞춰져 있어(coded)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 -램지 바루드, 2016,9.28 '카운터펀치' 기고

또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 전문(電文, cable)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 세워진 유엔 학교를 폭격한 것에 대해 유엔의 독립적 조사단을 꾸리려 했지만 미국의 반대에 직면하자 그만 압력에 굴복하기도 했다. 아래는 해당 전문 내용.

제목 : 가자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대한 라이스 대사와 유엔 사무총장의 5월 4일 전화 통화

1.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반기문 사무총장과 5월 4일 3차례에 걸쳐 대화했다. 2008년 12월~2009년 1월 유엔 건물에서 일어난 사고에 관한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대한 우려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라이스는 사무총장에게 전화해 보고서의 시각에 대해 우려를 전했다. 라이스는 특별권고안의 10조와 11조를 언급하면서, 만약 조사위원회 보고서가 위임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는 권고안의 내용들이 위원회에 위임된 권한 범위 밖에 있음을 감안하면, 이 두 권고 사항(10조와 11조)은 회원국들에게 제공될 보고서 요약본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무총장은 위원회는 독립적이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다며, 보고서나 권고사항 모두 위원회가 알아서 할 일이지 자신이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했다.

2. 라이스 대사는 사무총장에게, 이 보고서 요약본을 안보리에 제출할 때 ‘권고안은 위임된 권한 범위를 일탈한 것이고 더 이상의 행동은 필요없다(no further action is needed)’는 것을 사무총장 명의의 서한으로 명확히 하라고 촉구했다. 사무총장은 그의 직원이 이스라엘 대표단과 그 서한의 문구에 대해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는, 해당 서한과 보고서 요약본이 안보리에 제출되기 전에 다시 연락을 달라고 요청했다.

3. 라이스 대사는 사무총장과 두 번의 대화를 더 나눴다. 두 번째 대화에서, 라이스는 사무총장 명의 서한에서 '더 이상의 행동이 필요치 않다'는 것, 이 이슈를 그만 덮자는 것을 명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서한이 완성된 후 라이스에게 전화를 해서, 그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만족스러운 결과물에 도달했다고 알려 왔다. 라이스는 이런 민감한 이슈에 대해 예외적인 노력을 해준 데 대해 사무총장에게 감사했다.

(☞관련 자료 : AMBASSADOR RICE'S MAY 4 TELCONS WITH UN SECRETARY-GENERAL ON GAZA BOARD OF INQUIRY REPORT)

라이스 당시 대사가 한사코 빼려고 했던 '권고안 10조·11조'의 내용은? 유엔의 가자지구 조사위원회가 작성한 특별 권고안 가운데 10조는 "위원회의 권한 위임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던 다른 사고들에 대한 즉각적 조사를 보장해야 한다. 여기에는 유엔 소속 건물과 사람들에게 일어난 사고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었고, 11조는 "9건의 유엔 관련 사고는 더 조사돼야 하며(be further investigated), 유엔이 관련되지 않은 민간인 등의 사고 역시 '이스라엘군과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 집단에 의한 가자와 남부 이스라엘에서의 국제 인권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한 공정한 조사의 일부로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반 전 총장은 이스라엘을 소리높여 비난하기는 했으나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제재하는 등의 행동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했고, 진상 조사 등 '비난' 이상의 일을 하려다가 미국의 반대에 부딪히면 적당히 타협한 것으로 보인다.

'세속의 교황'으로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이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의 정당성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비난한 것은 국제 무대에서 팔레스타인에게 도덕적 권위를 더해 주는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반 전 총장 스스로의 말처럼 "그런 성명을 발표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역사상 가장 친미적"


라이스 대사와의 전화 통화 같은 에피소드는 반 전 총장이 한국 외교관이었을 때부터 '친미적'이었다는 평가를 떠올리게 한다. 그의 임기 종료 직전, <포린폴리시>는 그에게 또 하나의 치욕스런 별명을 붙여줬다.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사무총장(the most pro-American U.N. secretary-general in history)."

부시 행정부는 부분적으로 그가 한미동맹을 굳건히 지지했기 때문에 반기문을 좋아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반기문의 자질 부족도 반겼다. 전임자인 코피 아난이 소유했던 자질, 즉 카리스마적 영향이나 국제 사회의 도덕적 권위로서 역할을 하는 능력 등 말이다. 코피 아난은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불법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존 볼튼은 그의 회고록에서, 부시 행정부가 원한 유엔 사무총장은 '최고 행정가'였지 '세속의 교황'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반기문의 행적은 그가 역사상 가장 친미적인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걸맞는 평판을 얻는 데 기여했다. -2016.12.28. <포린폴리시>

반 전 총장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강한 입장을 여러 차례 내놓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란에서 열린 2012년 비동맹진영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친미'라는 꼬리표를 뗴내려는 듯한 시도도 보이기는 했다. 반 전 총장의 측근이었던 윤여철 전 유엔 사무국 의전장은 반 전 총장에 관한 책의 추천사에서 "반기문은 겁 없는 사람"이라며 "스리랑카·이란 방문 시에도, 시리아 화학 무기 사태와 관련해 강대국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때에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친미파'라는 꼬리표는 계속 그를 따라다녔다. 2014년 1월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시리아 문제를 언급하며 그를 "미국의 푸들"이라고 하기도 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功過)'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시리즈 목록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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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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