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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현장] 깨끗한 웃음이 다가오기를

한참을 울고 체중계에 올라가도 몸무게는 그대로였다
영혼에도 무게가 있다면
대지는 오래 전에 가라앉았겠지

꿈속에서 많이 운 날은 날이 밝아도 눈이 떠지지 않습니다
눈 속에 눈동자가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부목을 대고 굳은 무릎으로 여기에 왔다
목소리 위에 목소리가 쌓인다
우리는 각자의 목에 돌을 하나씩 매달고
목소리의 탑을 쌓는다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던
시계방에 걸린 수많은 시계들이 한꺼번에 울린다
우리가 한꺼번에 울면 해수면이 조금은 올라가겠지

우리의 목소리는 쌓이면서 아래로 가라앉는다
우리의 탑은 하늘을 향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지하를 향해 깊어지는 것이었다

젖은 영혼들이 물의 계단을 밟고 걸어 올라온다
어두운 나선의 계단을 딛고 올라오는, 일렁이는 촛불의 빛무리
귓속에 검은 물이 들어차고
우리는 목소리의 동굴이 되어간다

망원경으로 적국의 시가지가 폭격 당하는 것을 지켜보던 이스라엘 시민들
그들에게 시온은 얼마나 튼튼한 요새인가 우리의 심장은
파쇄기에 갈아버린 공문서처럼 조각난다
부서진 빛들이 노래가 되고
부서진 울음들이 물비늘이 된다

우리는 목에 더 무거워진 돌을 매달고 흩어진다
다른 말과 다른 낱말을 가지고 다시 여기에 모이기 위해

ⓒ프레시안(최형락)

시작노트


몇 차례의 청문회를 보면서 세월호 사건 때와 같은 참담함과 열패감을 느끼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정황적 증거와 물증이 있음에도 권력의 사유화에 동조하거나 조력한 그들은 너무도 당당하고 태연한 얼굴로 위증을 일삼고 있다. 그들에게 참회의 얼굴빛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들이 태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자신의 행동이 죄가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자신이 절차와 합리적 판단에 따라 그와 같은 행동을 했으며, 그것은 오로지 공동체에 공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공동체의 구성원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들이 말하는 절차적 합리성과 공정성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세월호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무책임과 무능의 다른 이름 아닌가? 그들은 진실이 침몰되기를, 그리고 자신만은 그곳에서 탈출해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기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세월호가 침몰한 다음날 진도체육관에 온 박근혜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그녀는 당혹감과 불쾌감이 섞인 딱딱한 표정으로 유족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왜 자신에게 갑작스러운 상실에 따른 그들의 고통을 호소하는지 그 이유를 정녕 몰랐을 것이다. 그녀는 그들의 고통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도 없음을 자신의 표정으로 말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을 거스르는 모든 인간을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언제나 판단을 하는 위치에 있었지 판단을 당하는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다. ‘나 아닌 다른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그렇다면 그 모름을 앎으로 바꾸려 하지 않는 '고의적인 모름'은 하나의 범죄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그녀를 통해 공감과 동일시가 결핍된 인간이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측근 중의 한 사람은 그녀가 불치병 환자이기 때문에 지탄받기보다는 동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녀는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왜 아픈지 모르고 또 어떻게 하면 낫는지, 왜 나아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불치병 환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동정보다는 치료가 필요하다. 그 치료의 방법은 그녀에게 강제적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양심과 죄책감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며, 그것은 현 상황에서 법적 심판 외에는 답이 없어 보인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올바른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이 정권에 대한 민중의 분노를 수용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법적 중립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마사 누스바움은 재판관이 공정성과 적합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법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요건을 갖춘 재판관을 '문학적 재판관' 또는 '시인-재판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자신 앞에 놓인 사건들을 사회적 현실과 무관한 자리에 놓지 않고 오히려 풍부하고 구체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감정적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사건의 역사적․사회적 맥락과 타인의 고통을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현실을 철저하게 재검토한다. 시적(문학적) 심판과 민주적 심판의 공통점은 "배제된 자들과 멸시당하는 자들, 그리고 힘 있는 자들까지 그들의 삶의 상황과 방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공감을 통해 비천한 자들의 수모 속으로 스스로를 내던져 개입하기를 고집하는 것, 동등한 조건 속에서 오직 타인이 가질 수 있는 것들만 가지는 것, 배제된 자들의 고통과 핍박받는 자들의 위협에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것"(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문학적 상상력과 공적인 삶, 박용준 옮김, 궁리, 2013, 249~250쪽)이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현 정권의 헌정 유린을 인정함으로써 현 사회의 총체적인 부조리를 개선하고 민주적 평등을 회복하여 미래세대에게 아직도 이 사회가 희망이 있음을 알리는 중요한 표지가 될 것이다. '부서진 빛들'과 '부서진 울음들'을 딛고 환한 노래와 깨끗한 웃음이 우리 앞에 다가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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