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치학자 지오반니 사르토리는 결선투표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모든 선거제도에서 유권자는 한 발의 총알을 갖는다. 결선투표제에서만 두 발을 가질 수 있다. 유권자는 한 발을 어둠 속에서 쏘지만, 두 번째는 밝은 햇빛 아래서 쏠 수 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이틀 연달아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원외 소수정당인 녹색당을 언급하며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결선투표제 도입을 한목소리로 주장했다. 결선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치권 논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와 녹색당의 '결선투표제' 한목소리
안 전 대표는 23일 오전 국민의당 비대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대통령 결선투표제, 저는 이번 선거야말로 꼭 도입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전날 토론회(☞관련 기사 : 안철수 "대통령 결선투표제 제안한다")에 이어 이날도 목소리를 높였다.
안 전 대표는 특히 "현 대통령 선거 제도에서는 자칫하면 끊임없는 '연대' 시나리오만 난무하게 된다"며 "정책 선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결선투표제다. 만약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우리는 녹색당 대통령 후보가 끝까지 완주하면서 '녹색당에서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 국민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또 "이번 대통령은 50% 이상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당선돼야 한다", "60일 이내 대선이 치러지면 사상 최고의 네거티브 선거가 될 것" 등의 이유를 들어 "(결선투표제는) 이렇듯 정말 장점이 많고 이제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고 역설했다.
안 전 대표는 "개헌은 해야 하지만, 대선 공약으로 걸고, 시기는 2018년 지방선거 때 함께 투표하는 것이 실행 가능한 합리적인 방안"이라며 "여러 대통령들이 지금까지 '당선 후 개헌'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신뢰할 수 없다는 분들도 많지만, 다음 지방선거에서 참패하지 않으려면 약속을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재강조했다.
그는 "그리고 지금 헌재에서 탄핵심판이 진행되는 바로 지금이 국민들이 원하는 개혁 과제를 국회가 제도화할 수 있는 적기"라며 "탄핵에 찬성했던 국회의원 234명 중에 180명만 동의한다면 국회는 어떤 개혁안도 통과시킬 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해야 할 개혁 과제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공정거래위 강화와 함께 결선투표제 도입을 들었다.
한편 녹색당에서 지난 9월까지 당 대표 격인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내며 선거제도 개혁을 주장해온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필요하고, 그럴 경우 소수정당도 사표 심리에 대한 걱정 없이 1차 투표 때에 후보를 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결선투표제가 도입된 오스트리아, 핀란드 등의 나라에서는 그렇게 되고 있다"고 안 전 대표의 이날 언급에 대해 평가했다.
지난 4.13 총선에서 녹색당 후보로 서울 종로에 출마하기도 했던 하 대표는 그러나 "결선투표제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지 않은 것이 의아하다"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은 위헌 시비도 없고, 중앙선관위도 권고하고 있는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치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얘기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문재인과 심상정도 "결선투표제 도입하자"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결선투표제 도입을 촉구하며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작심 발언을 했다. 문 전 대표는 "결선투표제 도입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개헌 없이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심 대표는 이날 상무위원회의에서 "문 전 대표가 '결선투표제는 이번에는 어렵다'고 했는데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내세웠던 공약을 실현할 가장 좋은 기회가 왔는데 발을 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심 대표는 "위헌 시비 때문이라면 군색하다. 결선투표제를 금지하는 조문은 우리 헌법 어디에도 없다"며 "결선투표제 도입은 국민적 동의와 정치권의 합의와 결단으로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심 대표는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반쪽 대통령'의 불안정 통치도,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무원칙한 합종연횡과 임시변통 단일화도 방지할 수 있다"며 "보수당이 분열되는 지금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입장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문 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에서 인터넷 기자들과 한 오찬에서 "대선 결선투표제는 사실 제가 지난 대선 때 공약했다"면서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굳이 무리하게 단일화할 필요가 없다.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진보 정당도 끝까지 후보를 내서 완주해서 알릴 수 있기에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다만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번 대선 때는 '결선투표제'가 개헌 사항이라고 해석돼서, 지난 번에 개헌을 공약하면서 개헌 사항 가운데 결선투표제를 포함시켜 이야기한 것"이라며 "저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선투표제는 '개헌 사항'이라는 종전의 문 전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뉘앙스가 다소 달라져 있다. 개헌 없이도 정치적 합의로 결선투표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과연 결선투표제는 개헌이 필요한 사안인가?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은 많다. 이관후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은 결선투표제 도입에 개헌이 필요 없는 이유에 대해 <프레시안> 칼럼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물론 결선투표제 도입과 관련해서는 이 사안이 개헌을 필요로 하느냐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개헌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대부분 헌법학자들이라는 점입니다.
이 분들은 지금 헌법을 만들 때 결선투표제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의도가 없었다든지, 중대한 사안이라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든지, 선거제도 자체는 헌법에 명시를 해야 논란이 없다는 각각의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법적 헌정주의(legal constitutionalism)의 시각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헌정주의(political constitutionalism)의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반론입니다. 오히려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헌법학자들이 결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한 제가 보기에, 결선 투표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사항이 헌법에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도 않은데, 그 해석을 헌법학자나 법관 몇 사람에게 물어서 확인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는 물론이고 정치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가 해야 할 일을 법치가 대신하는 것이고, 좀 더 명확히 말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법률가 과두정입니다. 이참에 헌법을 헌법학자들의 전유물로 보는 잘못된 생각을 바꿀 필요도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의 정당성이나 수도의 이전 같은 문제를 법률가들에 의존해서 해결하는 제도와 관행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합니다.
여론조사를 따른다든지, 일회성의 국민투표에 부쳐 결정할 수도 없는 사항입니다. 정치권에서 이 논의를 시작하고, 언론과 국민들이 이 제도의 장단점, 한국 정치에 가져올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해 토론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수 국민이 개헌 없이도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보는 공론이 형성되고 그에 기반해서 정치권이 합의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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