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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식 법치,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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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식 법치, 누구를 위한 것인가

[법치의 표리(表裏)]<5>"법치의 몰락을 개탄한다"

'이명박식 법치'의 실례

30%대의 '묻지마' 지지층에 기반한 '소수파'인 이명박 정부의 단골정책은 법질서확립이다. 이른바 근대사회의 최대의 성취물인 법치를 제대로 하겠다고 줄기차게 다짐한다. 헛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의 첨단인 검찰과 경찰의 공안팀이 바지런히 움직인다.

재야논객 미네르바를 허위사실 유포의 혐의로 구속하였다. 촛불시위의 '배후세력'을 색출하려 혈안이 되었다. 반북성향의 대학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하려 했고 보안사범의 검거율을 높인다고 인사고과반영율을 조정하기도 한다. 집시법을 엄격적용하며 무관용정책을 주요과제로 설정하다 경찰관과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를 빚기도 했다.

검경의 공안부서만 바쁜 것이 아니다. 여당은 주요 입법과제로 사이버모욕죄의 신설을 추구하고 있으며 다양한 인터넷포탈의 규제정책을 모색하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방통위나 YTN의 장으로 삼더니 방송법 등 미디어관련법을 개정하려고 입법전쟁을 수행중이다. 결국에는 촛불시위에 대한 법적용을 둘러싸고 법원장이 재판에 개입하는 사태까지 초래되었다.


▲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뉴시스

법치, 인치의 실패에 대한 인류의 대안

사실 법질서의 확립, 즉 법치는 모든 국민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우리가 공동체를 꾸리고 사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인 야만의 시대를 합리적 질서속에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문명의 시대로 전화시키기 위한 결단이다. 그 핵심이 자의적인 지배가 아닌 법의 지배, 법치임은 췌언이 불필요하다.

법치는 전근대사회의 정점이었던 절대왕정기가 적나라하게 보여준 인치(人治)의 실패에 대한 인류의 대안이었다. 권력자의 기분에 따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게 법을 정하고 적용하는 한 법의 적용대상인 백성들의 생활이 안정적일 수 없다. 예견가능성을 가진 성문화된 법에 따라 시민의 행위준거로 삼게 하는 것이 근대법을 통해 인류가 추구한 가치질서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법질서확립정책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폼세가 영 심드렁하다. 왜일까? 두 말 할 것도 없이 법치의 기본 정신이 없는 사이비 법치이기 때문이다. 법치는 단순히 법에 의한 지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의 내용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공동선에 어긋나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나치의 전횡을 겪으면서 실질적 법치의 개념을 현실화해간 독일의 경험이나 실체적 적법절차(substantive due process of law)의 개념을 통해 반인권적 악법과 관행에 헌법심사의 철퇴를 구축한 미국의 경험이 그 결정판이다.

우리의 경우는 헌법의 체계속에서 이러한 실질적 법치의 정신을 구체화하고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제11조부터 제36조에 걸쳐 세세한 기본적 인권의 목록을 제시하는 한편 제37조 제1항에서는 열거되지 않은 자유와 권리도 경시되지 아니함을 선언하고 있다. 더구나 제37조 제2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과잉되지 않게 제한하여야 하고 그 형식은 법률에 근거하여야 하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도록 국가권력 발동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법이 억압장치로 작동하는 사이비 법치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법치는 이런 실질적 법치에는 역행하는 사이비 법치에 불과하다. 정작 법의 엄정한 칼날을 휘둘러야 할 곳은 여러 가지 정상참작사유를 들먹이며 예외들이 만들어지는 반면 관용이 필요한 중간지대를 법의 제국으로 편입하려드니 국민들이 환영하기가 쉽지 않다.

수천억, 수조가 들먹여지는 경제사범들은 경제에 공헌한 치적을 이유로 줄줄이 양형이 감해지거나 사면된다. 돈 없고 '빽'없는 시민들이 인터넷을 통해 시절한탄으로 소일하는 것은 사회질서를 문란시키는 행위로 엄중단속된다.

이명박식 법치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자유가 원칙이고 그에 대한 제한은 예외적이고 엄격한 조건하에서 가능하다는 법치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하다. 특히 공동체의 정치체제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데 관건이 되기 때문에 그 어떤 헌법적 자유와 권리보다도 엄격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 표현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가 법질서확립의 주요 타겟이 되고 있다.

이명박식 법치에는 국민의 자유는 무질서로 간주되고 법은 자유의 보호장치가 아니라 그 억압장치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예가 야간집회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의 경우이다. 이 법조항에 의해 평화집회를 열망하며 촛불을 꺼내든 대다수 시민의 자유는 단지 야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집회참가자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다. 일부 폭력사태를 침소봉대하여 멀쩡히 평화집회를 추구하는 국민들을 범죄자로 몬다.

헌법이 명문으로 금지하는 집회에 대한 허가제는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한 경우 신고한 야간집회에 대해서만 경찰관서장이 허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규정에 의해 현실상 현존하면서 시민들의 자유를 옥죈다.

헌법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보장되는 자유가 헌법의 하위규범인 법률에 의하여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예외적으로 경찰관서장의 처분하에서만 허용될 수 있다면 헌법은 법률의 장식물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어떤 현란한 조작적 헌법해석으로도 주객이 전도된 사이비법치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다.

제복 입으면 국민도 아니다?

군대불온서적 파동도 예외가 아니다. 멀쩡한 학술서적이나 대중서가 '불온'서적으로 선정되어 군내반입이 금지되고 이런 부당한 조치에 대해 헌법이 정한 절차를 통해 구제를 신청하는 법무관들이 파면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군인은 제복을 입었을지언정 국민의 본질적 지위를 박탈당할 수 없다.

제복이 주는 특수신분적 성격 때문에 제복을 입지 않은 일반시민에 비하여 좀더 강화된 인권의 제약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화될 뿐이다. 대학에서 강의의 교재로 통용되는 베스트셀러가 지참할 수 없는 금서로 지정되는 것은 제복을 입은 신분상의 특수성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더구나 그러한 처분에 대해 헌법이 자랑스러이 마련한 헌법소원절차를 통해 시시비비를 따지는 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말 그대로 법치를 가장한 인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치전도된 사이비 법치의 그늘에 대못을 박는 것이 촛불사건에 대한 재판개입파동이다. 이 땅의 보수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먹이는 자유민주질서의 핵심인 사법부독립을 훼손한 법관은 최고법원의 대법관이 되어 헌법과 법이 무엇인지에 들먹이며 재판에 관여하고 있다. 이를 고발한 양심의 절규는 빨갱이사상에 물든 불온하고도 철없는 일부 법관들의 음모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런 현실을 개탄한다고 좌파의 포로가 된 비겁한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힐 지 모르겠다. 민주화 20년의 시행착오 끝에 나타난 이 어처구니없는 반동의 물결이 이 사회의 소중한 자산과 시간을 어디까지 퇴행시킬지 걱정스럽다. 이 거센 흐름을 거슬러 내일의 희망을 기댈 '진짜 법치'의 언덕은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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