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찮다. 박근혜는 탄핵 사유를 전면 부인하며 시간끌기로 버틸 기세다. 친박과 비박은 보수재건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사활적 내분을 벌이고 있는데, 양쪽 다 자파의 주도권이 확보되면 개헌을 고리로 권토중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촛불민심은 두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헌법재판소의 최대한 빠른 탄핵안 인용, 둘째는 그동안 쌓인 적폐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저한 청산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이다.
정치권은 12월 9일 탄핵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이후 빠르게 대선주자들의 경쟁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특히 언론의 보도가 주요 주자들의 경쟁측면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박원순 등 주요 주자들은 촛불 민심에 부응하는 메시지를 연일 날리고 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정치권 특히 야권의 지도자들이 대권 경쟁에만 매몰되어 또 다시 반동의 역습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점이다. 적어도 박근혜가 자진사퇴하거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예비주자들끼리 지지율 경쟁을 할 때가 아니다.
헌재 판결 전까지 범야권은 촛불민심을 굳건히 받들어 과도기의 '개혁적 주도권'을 밀어부쳐야 한다. 다시 말해 혁명적으로 조성된 촛불민심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고, 정치개혁적 이니시어티브로 그들의 양보를 강제해 내야 한다.
주요 주자들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그들의 문제의식은 한 곳으로 수렴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최근 새누리당의 해체와 친박의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그리고 부패기득권체제를 전면적으로 갈아엎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 역시, 국가 대청소를 통해 국가 대개조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혁명의 의의를 강조하고 근본적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건국명예혁명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득권세력과 한판 승부를 벌어야 한다는 혁명적 변화를 거듭 주장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비슷한 논조의 주장을 하고 있다.
메시지가 동일한 문제의식과 정세 판단을 보이고 있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그 메시지를 실천하는 '정치적 행동'이다. 정치 지도자는 시대가 요구하는 메시지도 준비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1990년 10월 김대중 당시 평화민주당 대표는 지방자치제의 전면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리고 당시 민주자유당의 대표였던 김영삼을 움직여 지방자치제 실시를 관철하였다. 당시 여당은 노태우의 군부독재세력이 추진하던 내각제를 둘러싸고 김영삼과 내분 중이었다. 여야로 갈려 차기 대선후보 경쟁을 하던 양김은 개혁적 주도권을 확보하기위해, 필요할 때는 서로 합작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문재인 진영과 안철수 진영은 어떤 의미에서 지난날의 양김보다 반목과 경쟁의 강도가 더 치열하다. 그렇지만, 헌재 판결이 나기까지 문재인과 안철수 두 지도자는 '개혁적 주도권'을 목표로 합작에 나서기 바란다.
지난 달 안철수 전 대표의 제안으로 대선주자 및 정당 대표를 포함한 8인모임이 모여 8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하여, 탄핵 정국에 기여한 바 있었다.
이번에도 안철수 전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 문재인, 이재명, 박원순 등 인식을 같이하는 지도자들과 액션 모임을 주도해주기 바란다. 액션 모임의 주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시민사회를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들이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 2개를 들라고 하면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제와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식수를 바꾸는 제도변경이라고 말한다.
필자는 '개혁적 주도권'의 당면 목표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정당득표율을 기준으로 의석수를 배정하는 제도'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대통령 결선 투표제는 학자에 따라 헌법개정사항이라는 주장이 많다. 반면 선거구제 변경은 법률개정사항이라 국회 본회의 열어서 의결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이 소선거구제를 폐지할 절호의 기회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1988년 당시 지역을 나누어 지배하던 1노3김(노태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정치적 기반을 보장해주기 위한 용도로 도입되었다. 28년이 지난 지금 지역주의는 많이 완화되었다. 여소야대를 만든 지난 봄의 총선이 그것을 보여준다.
이때까지 영남패권주의와 결합된 소선거구제는 한국정치를 냉전수구세력에게 내주는 제도적 온상이 되었다. 지금 현존하는 정치세력 중에서 지역주의에 목을 매는 가장 퇴행적인 세력이 박근혜와 친박이다. 이들은 TK에서 신으로 추앙받는 박정희 신드롬을 알고 있기에 지금은 폐족처럼 보여도 정치적 명줄만 유지하면 다음 총선에서 TK를 기반으로 기적처럼 재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친박이 국민들의 엄청난 질타에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조폭처럼 행동하면서 당권을 사수할려고 하는 이면에는 영남패권주의만 붙들고 있으면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 개헌된다면 금상첨화다.
그들이 보기에 비박의 결정적 약점은 비영남권 위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새누리당을 벗어나는 즉시 정치적으로 소멸하거나 다른 세력으로 편입될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한국정치를 퇴행시키는 새누리당을 완전히 해체시키려면 소선거구제를 폐지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극우 세력도 프랑스의 극우정치인 르펭처럼 민주공화국의 한 액세서리 세력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만약 유력한 지도자들이 합심하여, 소선거구제 폐지를 내걸면 국회 내에서 극심한 저항이 일어날까? 필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지금 국면에서는 소선거구제 폐지가 다수 의원들에게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측면이 있다. 비박까지 포함한다면, 친박을 제외하고 약 80%의 지지를 모아낼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소선거구제 폐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면, 개헌을 정략적 목적으로 생각하는 세력과 우국충정으로 주장하는 세력이 분별이 될 것이다. 만약 소선거구제 폐지가 헌재 판결 전까지 확정되면, 이후 대선 과정에서 후보들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개헌 일정과 내용을 공약하게 될 것이며, 이후 누가 집권하더라도 새로운 선거구제에 조응하는 개헌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선거구제에 대한 대안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1.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보고, 완전 정당명부제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다. 2. 독일처럼 의석총수는 정당득표율로 결정하되 절반은 지역구, 절반은 비례대표로 결정하는 방식이 있다.
극우정당이 30년 만에 본격적으로 분열하고 있다. 이 기회를 정치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극우 세력과 보수 세력이 분리되도록 해야 한다. 보수 세력은 정치 개혁으로 견인하고 극우 세력은 퇴출시켜야 한다.
시민사회진영도 헌재 판결 전까지 촛불 에너지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지 진지하게 성찰하기 바란다. 한 손에는 박근혜 즉각 퇴진, 다른 손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개혁 아젠다 관철이라는 촛불을 들 필요가 있다.
적폐 청산의 긴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광장과 정당이 정치개혁의 굳건한 동맹을 맺어 단 하나라도 구체적 성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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