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 7시간부터 시작한 거 아닙니까! 그래 가지고 여당 몫 위원들을 내몬 거 아닙니까! 그래놓고 지금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하면서 이것은 세월호 이슈로 총선 정국을 다시 만들겠다는, 타깃을 보면 그렇게 이야기가 되는 것이고..." (2015.12.16. TV조선 <장성민의 시사탱크> 중)
"아직까지 규명되지 않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부분, 이런 부분을 우리가 밝혀내야만 국정조사 특위가 그나마 성과 있게 끝날 수 있는 부분..." (2016.12.16. 문화방송 <신동호의 시선집중> 중)
같은 사람이 한 말이다. 불과 일 년 만에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이 두 발언의 주인공은 국회 최순실 게이트 국정 조사에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장제원 새누리당 의원이다. 장 의원은 일 년 전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을지 모른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도 그렇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의 핵심 과제이자 전 국민의 관심사인 '세월호 7시간'은 불과 3개월 전만 하더라도 정쟁 이슈였다. 참사 당일 대통령 행적 조사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특조위는 "세월호 진상 조사 대신 정치 공세에만 골몰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급기야 '세금 도둑'으로까지 몰렸다.
"대통령의 행적 조사 결정은 대통령의 사생활을 캐기 위한 것이 아닌 청와대가 참사 당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려는 것"이라고 수없이 항변해도 귀담아듣는 이는 없었다.
만시지탄.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줄기차게 제기했던 특조위는 이제 없다. 지난 9월 30일 자로 특조위는 정부에 의해 사실상 강제 해산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이 사라졌다. 힘이 있을 땐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고, 여론이 받쳐주자 이번엔 진실에 다다를 힘이 사라졌다.
몇몇 조사관들이 자리를 지켰지만 곧 사무실은 철거됐다. 오갈 데 없어진 조사관들을 품어준 곳은 YMCA였다. 갈 곳 없는 특조위 조사관들에게 서울 마포구 YMCA 건물 내 회의실 한 칸을 내어준 것. 회의용 탁자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비좁은 공간이지만, 10명 남짓한 조사관들은 이곳에 매일 출근해 전과 다름없이 업무를 본다.
둥지를 옮긴 조사관들을 지난 13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속에서 세월호 7시간 이슈가 다시금 떠오른 데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형욱 특조위 언론팀장과 긴 이야기를 나눴다.
"박근혜, 차라리 약을 하고 누워있었다면..."
김 팀장은 "이제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전보다 할 일이 더 늘어났다"며 투덜거렸다. 마냥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세월호 7시간 이슈가 급부상하면서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졌다. 대 언론 업무를 맡고 있으니 덩달아 손이 바빠지는 건 당연했다. 청와대가 홈페이지를 통해 내놓은 '이것이 팩트입니다'에 대해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김 팀장은 특조위가 강제 해산된 뒤론 특조위 공식 입장을 내놓는 대신 각 언론의 요청이 있을 때만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예전에는 특조위를 외면했던 언론들이 지금은 앞다퉈 먼저 연락한다.
아쉬운 대로, 조사관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조사한 내용과 공개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를 주축으로 준비 중인 '국민조사위'와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추진하는 '2기 특조위'가 원활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밑 작업을 하는 것이다.
김 팀장은 "'조금만 일찍 이런 정국이 왔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왜 없겠느냐"며 "늦게나마 지금이라도 대통령의 행적 조사가 타당하다는 여론이 조성돼 다행"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나온 걸 보면, 대통령은 참사 당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그게 너무 끔찍해요. 분명 서면보고는 올라갔는데, 대통령이 그걸 보고도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지금 떠도는 의혹처럼 차라리 약을 맞고 쓰러져있거나 미용 시술을 해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다면 나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일도 없이 아무것도 안 한 거라면 정말 더욱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모든 국민이 이렇게 한마음으로 구조를 기다릴 때, 대통령이란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고, 머리를 하고, 일상 생활을 한 거잖아요."
그는 "시스템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위기 대응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질 않았다"며 "그날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행적 조사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첫걸음이라고 했다. 특조위가 지금까지 누누이 주장해왔던 바다.
"대통령의 7시간이 밝혀진다 해도, 세월호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침몰 원인이, 구조 실패 원인이 다 밝혀지는 건 아니니까요. 피해자 지원 문제, 추모 시설 건립 문제 등도 다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세월호 인양 후입니다. 내년 4~5월경 선박이 뭍으로 나와도, 특조위에는 조사 권한이 없습니다. 해수부를 감시할 수 없습니다. 2기 특조위가 반드시 세워지도록 국회와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박근혜, 탄핵 직후 조대환 임명...모멸감 느꼈다"
박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9일, 조사관들은 두 팀으로 나뉘었다. 한 팀은 유가족들과 함께 국회 앞으로 갔고, 한 팀은 회의실에 남았다. 김 팀장은 몇몇 조사관들과 함께 회의실에 남아 탄핵 표결을 지켜봤다.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이제야 진상 규명이 이뤄질 수 있는 첫 단추가 끼워졌다고 생각했어요."
감격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탄핵안 통과 직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조대환 변호사가 임명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특조위 부위원장이었던 조 변호사는 특조위 방해 1등 공신이었다. "세월호 특조위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전리품 잔치를 하는 곳"이라며 특조위에 대한 비난 여론을 주도했다.
"조대환이 임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 가슴에 얼마나 비수를 꽂은 사람인데...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떤지를 마치 확인 사살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온갖 방해와 모욕을 겪으면서, 특조위는 끝내 해산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정부가 특조위 해체를 기정사실화한 6월 이후 조사관들은 월급 한 번 받지 못했다. 그래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에 매진하겠다는 각오다.
"활동 기간 동안 더 많은 걸 밝혀내지 못해 그저 죄송한 마음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로 특조위를 떠난 조사관들은 죄책감이 더욱 큽니다. 그래도 국민과 한 약속이니까요. 저희가 언제까지 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끝까지 저희의 책임을 다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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