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거취에 대해서 왈가왈부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법원에 대해 한없는 존경심과 애정을 가진 한 사람의 법률가로서 감히 말하자면 신영철 대법관은 자진 사퇴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그렇다.
신영철 압력에 영향 받은 판사도 책임 물어야
판사는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을 가지고 직무에 임해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신영철 대법관과 관련하여 언론에 보도된 의혹의 내용은 판사를 상대로 제기할 수 있는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도 재판의 독립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 이를 지켜야 할 판사가 오히려 후배 판사들의 재판에 관여하려고 했다는 의혹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진 후 그 결과가 공개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형태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만일 다른 의도는 없었고 잘못을 인정할 수도 없지만 법원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기 위하여 자진 사퇴한다는 식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법 전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는 길이다.
판사가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판사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 당사자는 법에 따라 책임을 져야 한다. 또한 미안한 말이지만 만일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이나 말에 영향을 받아서 재판의 진행이나 결과를 변경한 판사가 있다면 그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정에 서서 판사에게 모든 운명을 맡기는 피고인에게 법원장의 지시 때문에 위헌제청신청을 기각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러한 점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그거 가지고 판사들이 압박 받아서야 되겠어? 그 정도 판사들이면 안 되지."라고 한 말은 전적으로 옳다.
'재판의 독립성', 결과만큼 과정도 중요하다
▲ 이명박 대통령으로 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뉴시스 |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자를 뽑을 때는 선거에 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나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선거로 결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를 임명직으로 하고 국가에 따라서는 종신까지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선거 결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선출직 공무원과는 달리 신분이 보장되는 법관은 정치 상황이나 여론에 관계없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는 것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부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소송절차나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인이 판사에게 진행 중인 재판에 관해서 어떤 부탁이나 질문을 할 때는 법관의 독립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판사들은 누구보다도 그러한 점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하더라도 담당하고 있는 재판에 대해서는 묻는 것조차 금기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가 다른 판사에게 구체적인 사건의 처리 방향이나 절차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는 경우에는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의견'이 법원장 등 상사의 입에서 나왔을 때는 압력이라고 생각될 여지도 충분하다.
물론 이용훈 대법원장의 말처럼 판사가 그러한 말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부적절한 의견 표명이 있더라도 자기의 생각에 따라 의연히 재판을 하면 되고 그러한 일이 계속될 때에는 적절한 방법으로 거절의 의사를 표시하면 된다. 그러나 설사 재판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하더라도 만일 부당한 간섭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면, 그러한 일은 공개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물어야 한다. 재판의 독립성은 실질적인 결과에 있어서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고, 판결이 이루어지기까지의 모습이 누가 보더라도 신뢰가 가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혹이 근거없는 것으로 밝혀지만 좋겠다만
직업상 재판의 당사자가 되는 의뢰인을 만나면서 간혹 재판의 독립성에 의문을 표시하는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나가는 대답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판사들을 만나보면 각자 성격은 천차만별이더라도 직업윤리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일반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의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평소에 허물없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도 재판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오해의 소지가 조금이라도 있을 말은 철저히 피한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변론하는 때를 제외하면) 담당하고 있는 재판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도 실례로 여겨진다. 판사들이 사석에서도 행동을 조심하는 것은 아무리 독립적으로 공정하게 재판을 한다고 해도 외부에서 보기에 오해를 받을 만한 일이 있으면 그 자체로 법원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소한 일까지 조심하면서 법관이라는 소명에 충실하려는 판사들에게는, 만일 이번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정말 허탈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영철 대법관은 자진 사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의혹이 제기된 언행이 과연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어떠한 의도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히고 해명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해명이 믿을 수 있는 것이어서 현재의 의혹이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고 판사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이라면 변명과 자진 사퇴로 넘어갈 일은 결코 아니다.
'일부 언론'은 의혹의 의미를 알고 있긴 하나?
이 사건을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이런 성향이 짙은 판사들에 의해 반년 전 일이 특정 성향 언론에 차례로 폭로되고 재야 법조인들이 이를 토대로 법원 상층부를 조직적으로 공격하는 일"이라거나, "일부 언론과 편을 짜 법원 내부 인사에 대해 인민재판식으로 집단 몰매를 가하는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과연 지금 제기되는 의혹이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법원 내에서 상급자의 지위에 있는 판사가 그 지위를 이용해서 재판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 제기는 사법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것이다. 만일 사실로 밝혀지면 우리 법원에 씻을 수 없는 오욕으로 남게 될 사건이다. 그 진상이 어떤지 밝히라고 촉구를 해도 모자랄 판에 문제제기의 배경을 의심하면서 근거 없는 음모론을 펼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이해를 하기 어렵다.
▲ 금태섭 변호사 |
만일 현재 제기되는 의혹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거나, 당사자의 자진 사퇴 등으로 미봉을 하려고 한다면 우리 사법부의 구성원들은 정말 판사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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