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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라고 강변해도 성희롱은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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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라고 강변해도 성희롱은 성희롱"

[법치의 표리(表裏)]<3> 신영철, 도마뱀 꼬리만 보여주며 우기다니

신영철 대법관 사태를 보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비참하기도 하고, 법조인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답답한 마음을 가눌 길 없어 <블랙먼, 판사가 되다>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블랙먼은 미국 연방대법원 대법관으로 수많은 판결을 하면서 미국 헌정역사에 길이 남을 판결과 의견을 내놓은 신망 높은 인물이다. 블랙먼은 1973년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천명하여 기본권을 크게 신장시킨 헌법해석의 한 획은 그었고, 그 드라마틱한 사건내용으로 인해 책과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로 대 웨이드(Loe vs. Wade)'사건을 비롯하여 연방소득세, 흑인 인디언의 권리 보호, 독점금지, 법정에서의 과학적 증거 사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의 진보를 눈으로 확인시켜준 법관이다.

그의 판결 하나 하나는 흑인도 대등하게 백인과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고, 여성과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한층 신장시키는 수많은 업적을 낳았다. '블랙먼'을 보고 나니 맘이 편해지긴커녕 비참한 심경이 더욱 깊어졌다. 우리는 언제쯤이나 존경받는 법관을 만날 수 있을까.

▲ 서울 서초동 대법원의 조형물에 대법원 전경이 일그러진 채 비쳐지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 믿음에 배신으로 화답한 법원

신영철 대법관이 대법원의 자체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는 시점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는 '수렁에 빠진 사법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 사법부는 그야말로 수렁에 빠져있다.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는 사법부의 신뢰를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그 끝이 어딘지를 알 수조차 없다. 그런데 문제는 사법부가 그 전에는 괜찮다가 이번에 수렁으로 빠져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수렁에 빠져 있었는데 이제야 그걸 국민들이 발견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정치권, 검찰을 불신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법원을 믿어왔다. 법원만큼은 정치권에 휘둘리지 않고, 정말 헌법, 법률,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리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 국민의 믿음에 대해 법원은 배신으로 화답한 것이다. 일부 재판이 법과 양심이 아니라 법원장, 고위법관들의 압력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국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실망하게 된다.

이번 사건이 신 대법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또 그렇게 덮어지면 사태는 최악이 될 것이다. 사법부 전반의 문제를 해명하고 이런 사태가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그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신영철 대법관의 행위가 일반적인 사법행정작용인지 아니면 법관의 재판권 침해인지에 대한 해석이다.

'성희롱'여부는 피해자가 판단한다

신 대법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의 이메일 메시지에 나오는 특정 문구만을 따서 '정상적인 사법행정작용'이라고 강변한다. "현행법대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하라"는 표현만으로 보면 일견 맞는 말인 듯도 하다. 그러나 도마뱀의 꼬리 한 조각만 가지고 우리는 도마뱀이라고 하지 않는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전체를 보아야 그것이 도마뱀인지 도롱뇽인지 구분할 수 있는 법이다.

신 대법관은 '야간집회관련'이란 제목으로, 야간집회 참가자 사건 담당 판사들만을 모아 '일반적인' 발언을 그것도 수차례 이메일, 전화, 사적 대화를 통해 전달했다. 신 대법관의 항변은 도마뱀의 얼굴과 다리 몸통을 모두 두 손으로 가리고 꼬리만 보여주면서 우기는 것이다. 당시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받고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느꼈던 판사들은 이 해명을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사람은 어느 한 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자신이 목표로 삼은 것 이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변 현상을 온전히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게 되고 자신의 시각과 다른 생각은 납득을 하지 못한다. 직장 여자 동료에게 친하게 잘 지내보자는 의도로 음행을 범했을 때 그 행동이 '성희롱'인지 아닌지는 피해자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기본이다. 행위자가 주관적으로 아무리 선의였다고 강변해도 성희롱은 성희롱일 수밖에 없다. 신 대법관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서 그 행위를 해석한다. 이것이 그의 해석방법이고 그것은 곧 재판에도 그대로 나타날 것이다. 당신이 사건의 당사자라면, 피고인이라면 신영철 대법관 이름의 판결을 받아들이겠는가.

'법'대로 따져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법조문을 찾아보아도 해석을 달라지지 않는다. 법원조직법 제19조 제2항은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는 법원행정처의 직무를 '법원의 인사, 예산, 회계, 시설, 통계, 송무, 등기, 가족관계등록, 공탁, 집행관, 법무사, 법령조사 및 사법제도연구'라고 명시하고 있다. 재판진행 관련사항을 '사법행정사무'에서 뺀 것은 입법자의 실수가 아니다.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일 건지, 보석을 허가할건지, 해당 법원이 위헌심사 중일 때 재판을 계속할지 말지는 온전히 재판진행에 관한 것이고, 이 세상에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담당 판사뿐이다.

어느 누구도, 특히 상급법원, 법원장도 이 문제를 언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정신이고 그 뜻을 법원조직법이 구체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건'의 경우는 사건배당권자가 임의로 특정 재판부에 배당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 대법원 예규는 법원조직법을 위반하고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규정이다. 이런 위헌적인 규정이 다른 곳도 아닌 대법원의 예규라고 버젓이 씌여있는 것이 우리 사법부의 현실이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배당은 문제를 푸는 첫 단추 격이다. 어느 재판부, 어떤 판사가 심리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180도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재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 법원은 사건배당방법을 배당권자가 임의로 변경할 수없고 기계적으로 사건을 배당하도록 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이번 사태에 대한 해명과 후속조치를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번 사태가 신대법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법관, 재판의 독립'에 대한 법관들의 인식전반의 문제이다. 대법원장의 발언과 이 사태에 대한 다수 법관들의 생각이 법관의 독립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난 상태이다.

▲ 송호창 민변 사무차장

사법행정의 한계, 법관의 독립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사법부 내에 제대로 자리잡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법관인사제도를 바꾸든, 대법관 제청방식을 바꾸든 어떤 식으로든 사법부 내 시스템을 전격적으로 개혁하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신 대법관의 사퇴만으로 이 문제를 종결하는 것은 또다시 도마뱀 꼬리 자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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