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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승무원 호출, 이게 자랑인가?

[기고] 개통된 수서발 고속철도, 무엇이 문제인가

SRT로 명명된 수서발 고속철도 개통이 9일로 다가왔다. 언론들은 앞으로 변하게 될 철도 환경에 대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전망의 상당수는 국토부발 해설에 기대고 있다. 117년 독점 체제 해체를 통한 효율화, 편안한 객실, 값싼 요금, 업그레이드된 서비스 등 한국 철도는 SRT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 철도의 미래가 과연 국토부의 장담처럼 밝을 것인가? 이런 물음을 던져보면 암흑의 깊은 터널로 빠져드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지난 30년 한국의 철도 정책은 일관되게 신자유주의적 효율성을 토대로 진행됐다.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 민영화, 경쟁이라는 세 머리를 단 한 몸의 결사체였다. 시장우선주의는 정부 역할의 축소를 강요했다. 정부가 수행하는 공적 역할의 축소는 정부 또는 공기업의 책임 부분을 사적 자본에로의 이양, 즉 민영화로 연결됐다. 이 이론적 근거는 공기업의 독점 체제를 경쟁을 통한 시장화로 효율화 시킨다는 논리였다. 이에 따라 정부의 철도 정책을 총괄했던 국토부는 철도청의 해체를 통한 철도공사와 시설공단의 분리, 철도공사의 독점적 운영자로서의 지위 박탈, 민간 투자 사업과 민간 개방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주도면밀하게 밀어 붙였다.

이 일관된 흐름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우회적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 때에는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국토부는 철도 정책 자료를 독점하고 이것들을 자신들의 정책 기조에 맞추어 가공한 뒤에 법제화했다. 대통령과 의회는 철도 전문 집단인 국토부의 관리 대상이었다. 이미 관료들은 국책연구원과 철도 관련 기관 및 대학을 광범위하게 포섭해 놓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과 의회가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불러 자문한들 관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 날 수 없는 현실이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면 관료들은 오랫동안 철도 농단을 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수서발 열차, 코레일이 운용하면 뭣이 달라지긴 하나

국토부가 경쟁의 효과라며 선전하는 내용들이 과연 '경쟁'에서 발생하는 것인가? 만약 새로 개통되는 수서 고속철도를 코레일이 운영하게 되면 국토부가 선전하는 효과들은 사라질 것인가? 이것만 따져 봐도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가 갖는 문제의 출발점에 설 수 있다.

수서 고속철도가 구상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고속철도 설계 당시부터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고속선의 선로 용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철도의 장점인 시내 접근성을 무시하고 광명역을 고속선의 출발지점으로 했다. 정작 가장 많은 이용객이 존재하는 서울 이용객들을 위해 기존선과 공유할 수밖에 없는 서울역을 기점으로 하다 보니 선로 용량이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수서역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책이었다. 수서에 역을 만들어 평택에서 직결하면, 서울역, 용산역과 더불어 고속철도 이용 승객이 분산된다. 더 많은 고속 열차를 투입할 수 있게 되고, 늘어난 열차 수요를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 만든 것은 평택에서 분기하는 고작 61킬로미터의 선로다. 고작 이것을 빌미로 수서발 고속철도라는 새 회사를 설립하고 사옥을 짓고 경영진을 구성하는 것은 과연 효율적인 것인가?
국토부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이야기한다. 국토부가 생각하는 차별화된 서비스가 승객들에게 미소를 지으며 배꼽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철도 서비스의 최고 가치는 안전과 충분한 좌석 제공이다. 철도 서비스가 나빴던 것은 수요를 맞출 수 없는 공급 때문이었다. 평일에도 객차 연결 구간까지 승객이 가득 찰 정도로 만석이었던 것은 철도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코레일의 높은 가격 정책 때문에 고통 받던 국민들이 SRT의 등장으로 요금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는 국토부의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철도 요금은 정부의 고시 요금 체계를 따를 수밖에 없다. 철도 요금의 국민 부담을 걱정했다면 정부가 선도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고속철도 요금 인하와 다양한 할인 제도 도입은 철도 노조와 시민들이 꾸준히 요구해왔다. 그동안 철도공사가 고속 철도 요금 인하나 할인 제도 도입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국토부의 적자 해소 압박과 비싼 요금에도 불구하고 좌석을 구할 수 없는 수요 공급의 불일치 때문이었다.

수서 발 고속철도 개통으로 주말 기준 운행 횟수가 경부 축 183회 → 256회, 호남 축 86회 → 128회로 43% 증가한다. 대폭적인 좌석 증가는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을 이루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것은 철도의 특성인 인프라가 담보하는 효율성이지 경쟁의 효과가 아니다. 공급이 늘어 빈 좌석이 많을 경우 다양한 할인 제도로 승객을 유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수서발 개통 이후 고속철도 이용객이 증가해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게 되면 코레일이든 SRT든 슬금슬금 할인 제도를 폐지하거나 요금을 인상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다.

좌석에 앉아 폰으로 승무원 호출, 이게 자랑 거리인가

최근 <조선>은 SRT가 KTX보다 좋은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는 저렴한 요금이고 둘째는 강남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고 셋째는 좋은 서비스였다. 저렴한 요금은 개통초기 SRT의 효율성을 자랑하기 위해 많이 부각되겠지만, 앞서 지적했듯 향후 수요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 통신 요금처럼 다양한 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이용 시민들은 결국 어떤 것이 저렴한 승차권인지 알기 어렵다. SRT를 선택할 것인지는 요금이 가르지 않는다. 서울역과 용산역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저렴한 요금을 이유로 수서까지 가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둘째 강남에서 접근성이 좋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수서역이라는 철도 인프라가 생긴 덕분이지 경쟁의 효과가 아니다. 셋째 넓은 좌석과 전자기기 충전, 앱으로 승무원 호출 같은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KTX는 도입한 지 10년이 훨씬 넘은 차량들이다. 2004년 개통 기준으로 이미 12년이 넘었다. 자동차도 신차가 나오면 새로운 요구에 따라 각종 편의 장치가 추가되는 것은 상식이다. 신형 차량이 기존 차량의 단점을 보완하고 시대적 요구를 담은 편의 사양을 갖추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스마트폰 앱으로 승무원을 부르는 것을 야심차게 도입하는 서비스라고 자랑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노동하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담고 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400명 정도가 탑승하는 열차에서 한꺼번에 5%의 승객만이라도 승무원 호출을 하게 되면 해당 승무원들의 전자 기기에는 20건의 호출이 뜨게 된다. 전자 신호로 사람을 불러 민원을 해소하는 것이 아름다운 서비스의 모습인가? 지금도 열차 승무원들은 취객의 난동과 성희롱 속에서 억지 감정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것들을 117년 독점의 폐해를 극복한 경쟁 체제 도입의 효과로 치장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무엇보다 앞으로 감당해야할 문제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코레일이 차량·정비 책임…SRT는 '땅 짚고 헤엄' 고수익

최근 서울시는 산하기관인 두 지하철공사의 통합을 선언했다. 서울 지하철 확장계획에 따라 2기로 분류된 5,6,7,8호선의 운영기관인 도시철도공사 출범 이후 22년 만이다. 국토부의 경쟁 효율화 논리에 따르면 서울메트로와 도시철도공사로 나뉜 두 지하철 운영 기관은 서로 경쟁을 통해서 발전해야 한다. 두 기관을 통합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두 기관의 분리 운영이 가져온 문제들로 인해 불합리한 일들만 초래했다. 효율화의 지표가 비용 문제로 귀결되다 보니 경쟁은 결국 손쉽게 비용을 줄이는 것들로 작용했다. 외주화와 비정규직의 확대, 인력 감축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결과는 컵라면 먹을 시간도 없이 스크린 도어 고장 수리에 매달렸던 외주업체 청년 노동자의 사망 사고 같은 것들이었다.
두 기관의 통합으로 얻는 시너지 효과는 상당하다. 철도 안전의 중요한 요소인 표준성을 확보하고 통합적 관리가 이루어지게 된다. 기술 인력의 상호 보완과 교류를 통한 운영 능력도 향상된다. 상당한 비용이 요구되는 차량구매에 있어서도 훨씬 더 큰 규모로 발주하게 됨으로써 공동 구매로 단가를 낮추듯이 대당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안전 관리 지침이나 비상시 대응 매뉴얼도 통일시키고 표준화할 수 있다. 두 운영기관의 통합은 오랜 시간을 돌아 비정상의 정상화를 마침내 이뤄낸 것이다. 이런 현실에 비춰 봤을 때 SRT의 출범은 이미 파산한 정책을 되풀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SRT는 과연 철도운영과 관련된 독립된 기관으로서의 자격을 갖췄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고속철도차량을 코레일로부터 임대하고 차량정비마저 코레일이 책임진다. SRT가 하는 일이라고는 승무원운용과 역사관리다. 이미 수익이 보장된 노선에서 열차 운행 부분만 책임지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면서 고수익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117년 독점을 깬 성과로 치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필자는 이미 2013년, 국토부가 수서발 고속철도를 분리 운영하는 것은 한국철도를 고사시키는 것이라 주장했다. 특히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상당수 지방선은 운행이 감축되거나 폐선 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것을 밝혔다. 이런 걱정은 벌써 현실이 되고 있다. 코레일은 동해남부선과 태백선 등 벽지 노선을 운행하는 열차의 운행을 대폭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공공서비스 의무를 국가가 책임진다는 의미의 PSO((Public service obligation) 지원 금액을 정부가 대폭 삭감한 탓이다.

전년 대비 650억이나 삭감된 결과 경전선, 동해남부선, 영동선 태백선, 대구선, 경북선의 열차 운행 횟수가 대폭 줄어든다. 부산진과 포항을 오가는 동해남부선의 경우 운행률이 올해 대비 26%나 떨어지게 됐다. 이들 노선에 있는 북천, 벌교, 득량, 능주, 화순, 효천, 서광주, 안강, 봉화, 춘양, 승부, 백산, 동백산, 신기, 옥산, 정선의 16개 역은 무인화가 추진된다. 역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열차 이용 환경 악화 - 열차 이용 기피 - 적자 가중 - 열차 이용 환경 악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철도역이나 노선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지역 문화와 공동체가 무너지는 일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 더 가속화 될 것이다. 국토부의 정책 방향이기 때문이다. 최대 수익원인 고속철도 수입의 상당부분은 SRT의 몫이 된다. 코레일은 그 만큼 수익을 잃게 된다. 코레일이 국가 기간 철도 사업자로서 KTX의 수익으로 지방 적자선과 화물 부문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KTX 수익 손실은 곧바로 적자 노선에 대한 수혈 부족이나 중단 사태를 낳게 된다. 이런 조건에서 정부의 PSO까지 삭감하게 되면 적자선은 안락사의 길로 들어선다.

ⓒ김동언

자회사 수익 보장하며 모회사 부실 유도…뛰어노는 철피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관료들의 일관된 뚝심이 닿을 마지막 정거장은 민영화다. 지난 7월, 국토부는 '민자철도활성화방안'을 발표했다. 제3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서 민간 투자 대폭 확대 기조를 천명하고 19.8조 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새로 신설되는 노선에 민영 철도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국토부가 이미 밝힌 철도산업발전방안에 따라 지방 적자선의 폐선이나 민간 경쟁 입찰을 통한 코레일 운영 노선의 민영화가 추진되면 한국 철도는 신세계를 맞게 된다. 수많은 철도회사가 경쟁해 승승장구하거나 망하는 일이 눈앞에 벌어질 것이다. 수익성이 높은 노선을 챙긴 회사는 이익을 볼 것이고 망하는 회사의 부실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채워질 것이다. 수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국가기간인프라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국토부가 설계한 이상한 구조의 정점은 모회사인 코레일과 자회사인 SRT의 상반된 이해관계를 구조적으로 고착화한 것이다. 세상에 어떤 회사가 자회사의 이익이 모회사의 부실을 유도하게 만드나. 국토부가 생각하는 철도 발전의 궁극적 지향점은 자신들이 제어하는 고속철도 운영 기관을 통해 공기업인 코레일의 역할을 무력화 시키는 것이다. 국토부 관료들의 퇴직 후 일자리와 '철피아'들이 마음껏 이권을 나눠 가질 수 있는 조건들은 풍성하게 창출되겠지만 이런 구조를 떠안아야 하는 것은 국민들이다.

세계 각국은 철도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재평가 하고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한국은 남북철도 연결을 통한 대륙철도로의 진출 등 역사적 과제도 떠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기간 사업자로서의 철도공사의 위상을 확고히 하고 그 사회적 역할에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것이 철도 정책을 책임지는 사람들의 자세여야 한다. 수서 고속철도는 화려한 미사여구 속에 출범을 하겠지만 잘못 끼워진 첫 단추는 오랫동안 한국사회의 질곡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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