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치 부패와 정치 개혁의 효과
헌법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통치 기구의 책임과 한계를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 맞게끔 통치 기구를 개혁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통치 구조나 선거 제도의 개편만으로는 정치의 질을 높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제도나 규정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만, 그것이 정치의 내용까지 규정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정치 개혁의 바람이 훨씬 먼저 불었던 일본도 정치 개혁이 오랜 기간에 걸쳐 실시되었지만,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은 자민당의 우경화와 장기 집권이다. 단편적인 제도 개혁이 더 큰 정치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나는 중의원 선거를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비례 대표 병립제로 개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상의 권한을 강화하도록 내각의 기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중선거구제에서는 각 정당이 의석의 과반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2인 이상의 당선자를 배출해야 했고, 결국 자당 후보 간의 경쟁이 불가피한 가운데 당내 파벌이 강력해지고 정책 선거는 실종되었다. 수상은 파벌의 역학 관계에 의해 결정되었고, 각료 임명이나 정책 결정에서도 파벌의 균형을 취하였다.
이런 파벌 정치가 정치 비리의 핵심으로 제기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선거 제도의 개혁이 실시되었다. 여러 논란 끝에 일부 진보 진영에서도 소선거구제에서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는 판단으로 이것을 수용했다. 소수 정당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비례 대표도 포함되었다. 이후 내각부를 설치하는 등 수상의 권한을 강화하는 제도 개혁까지 이루어졌다.
이런 정치 개혁의 효과는 있었다.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무너뜨리겠다는 그의 말이 상징하듯이 당내 기반이 약한 상황을 극복하고 자민당 총재가 되어 일본의 수상이 되었다. 그는 당내 파벌을 일절 고려하지 않는 인사를 단행하며 내각부의 경제자문회의를 이용해서 전통적인 자민당 정책에 반하는 정책들을 펼쳐 나갔다. 이런 강력한 개혁은 선거 제도의 개편과 내각부의 기능 강화로 인한 당 총재와 수상의 권한 강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제도 개혁의 한계와 역효과
그러나 이런 권한 강화도 참의원의 과반수를 얻지 못했을 때는 수상의 리더십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고이즈미 이후 등장한 자민당 소속 세 명의 수상은 1년 남짓의 임기만을 채운 후 사퇴해야만 했다. 이 세 수상은 중의원의 압도적 다수에도 불구하고 참의원의 과반수를 얻지 못했고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야당의 반대에 직면했다. 정책이 지지부진한 사이에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수상은 파벌의 균형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임했다.
이처럼 정치 제도는 다양한 제도가 얽혀있기 때문에 일부의 제도를 개혁하더라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야당이 자민당을 제대로 견제하고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나타난 파벌의 약화는 결과적으로 자민당의 우경화를 초래했다. 자민당은 1946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이 미국의 압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비판하며 헌법 개정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헌법 개정 시도는 전시 체제로의 복귀로 간주되었으며 1960년 안보 투쟁 등의 강력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 이 때문에 자민당에서는 전통주의와 국가주의보다 경제 개발을 중시하는 '요시다 노선'이 유지되었다. 일부 자민당 정치인이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전쟁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을 해왔지만, 그것이 자민당의 전체 입장이 되지는 못했다. 자민당 내 파벌이 그것을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보 투쟁이나 헌법 개정에 대한 대규모 시위가 있더라도 자민당 내에서 반대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제도 개혁만을 중시하고 정당 내의 조직과 구조, 정당과 사회의 관계 등 비제도적 요인 등을 소홀히 할 때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대안적 이념과 건전한 정책 대립의 실종
일본의 제도 개혁이 중시되는 동안 정당의 이념과 정책 대결은 실종되었다. 자민당은 전통적 이익 배분 정책과 신자유주의 정책 사이에서 갈지자 행보를 했다. 이에 대항한 야당은 소선거구제에서 다수파를 형성하기 위한 '정당 간 합병'에 더욱 힘썼다. 어느 정도 세를 불려 야당은 민주당으로 재편되었지만, 다양한 세력이 혼재한 민주당은 국가 주도의 이익 배분 정치에 대항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하는 복지 국가 구상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자민당 정권의 반복되는 실기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2009년 민주당 정권이 탄생했지만, 당내에서 이념이나 정책을 공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당은 오래가지 못했다. 민주당은 1년마다 수상이 바뀌는 정권 운영 속에서 중의원 임기 4년을 다 채우지도 못한 채 자민당에게 정권을 넘겨야 했다.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정치에서 멀어졌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때 기록했던 투표율 69.3%는 2014년 중의원 선거 투표율 52.7%까지 떨어졌다. 야당이 지리멸렬하고 투표율이 낮은 가운데 아베 정권은 안정적으로 정권을 운영할 수 있는 의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아베 정권은 이 의석을 바탕으로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되던 안보 관련 법안을 개정하고 70년간 자민당의 숙원 사업이던 헌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의 집회가 일어났지만, 민주당은 더 이상 이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정당이 되지 못했다. 헌법 개정과 원전(핵발전소) 정책 등 주요한 정책들에서 좌고우면하며 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아 보인다. 이것은 민생과 복지에 근거한 이념과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고 이를 통해 정치적 지지를 넓혀가려는 노력을 게을리 했던 민주당의 예견된 참사라고 할 수 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권과 복지의 수준이 낮으며, 이를 실현하려는 세력이 취약한 조건 속에서 안보 문제가 중시되고 국가 주도의 개발주의 정책이 실시되어 왔다는 공통점은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복지국가 등 대안적 국가 발전의 비전을 실시하려는 시도는 안보 문제를 이용한 국가주의 세력에 의해 좌절되어 왔다.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야당이 단순한 제도 개혁을 넘어 안보를 이용한 국가주의 세력과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수립해야 하는 이유이다.
(안주영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도코하 대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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