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공개했다. 교육부는 다음 달 23일까지 의견 수렴 기간을 거친 뒤, 내년 1월 최종본을 확정, 이후 3월부터 학교 현장에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정국 속에서 이러한 계획이 그대로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28일 서울 정부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 사회는 지난 10여 년간 역사교과서의 편향성 논란과 이념 논쟁으로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을 거듭했다"며 "이제는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적 통합을 이뤄 나가야 한다"고 이번 국정교과서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장관은 "무엇보다 통일 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할 미래 세대들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바로 알지 못한 채 왜곡된 허상만을 갖는 것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준비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지금 여러 종류의 역사교과서가 있지만 대부분 편향된 이념에 따라 서술되어 있고 특정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들이 각종 외부 압력으로 결정을 철회하도록 강요받는 등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정교과서 살펴보니...
이번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에는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도발 상황, 인권 문제의 심각성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서술됐다. 북한의 군사도발과 인권문제를 각각 별도의 소주제로 구성하고 천안함 사건의 경우에도 북한이 저지른 행위임을 명확히 강조했다.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이나 자주노선을 3대 세습체제를 이념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써 활용한 사실과, 그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자유가 억압당했다고 서술했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으로 격상된 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한 정권으로 격하됐다.
천안함 사건도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으로 도발 주체를 명확히 했다.
일본과의 영토 분쟁 등과 관련해서는 현행 교과서에 '동해' 표기가 대부분 들어 있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역사적 사료와 함께 동해 표기의 정당성을 기술했고,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실도 구체적 사료와 함께 제시했다.
또한, 한국의 경제성장 성과를 두고 성장 중심주의로 인한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경제발전의 긍정적인 의미에 방점을 찍고 서술했다.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나 한국 경제성장의 측면을 부각한 기술 등은 모두 뉴라이트 등 보수진영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앞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여러분이 직접 확인하고 판단해 달라"
하지만 이준식 장관은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를 일축했다. 이 장관은 "우리 아이들이 배우게 될 역사교과서를 두고 그동안 일각에서는 새로 만들어질 역사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을 축소 서술하는 등 역사를 왜곡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오해들이 있었다"며 "지난 수십년간 우리 역사교과서에서 사용되었던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용어를 일각에서는 '건국절'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의 '독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훼손됐다는 사실,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6월 민주항쟁 등 민주화 운동의 의미와 성과에 대해서도 자세히 다뤘다는 것.
이 장관은 "오늘부터 시작되는 현장검토본 웹 공개를 통해 국민 여러분께서 직접 확인하고 판단해 주길 바란다"며 "학생들이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는 역사관과 올바른 국가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심혈을 기해 개발했다"고 밝혔다.
국정교과서, 내년 3월 도입은 미지수
하지만 내년 3월께 도입은 미지수다. 그동안 이념적으로 첨예한 갈등의 대척점으로 작용한 국정교과서다. 거기에다 '최순실 교과서'로 규정되며 국민적 거부감도 커졌다. 국정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김상률 청와대 전 교육문화수석이 최 씨 측근이었던 차은택 씨의 외삼촌이었다는 게 근거다. 김 전 수석을 통해 최 씨가 국정교과서 문제를 주무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정국도 불안정하다. 국정교과서가 도입되는 내년 3월까지는 탄핵 정국으로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사실상 제 기능을 하기 어렵다. 가뜩이나 비판 여론이 많은 상황에서 추진 동력마저도 상실한 국정교과서가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앞서 전국 15개 시·도 교육감들은 24일 공동선언문을 내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즉각 중단하라"며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떤 협조도 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동선언문에는 이례적으로 보수 성향 김만복 울산 교육감도 참여했고 대구·경북 교육감만 불참했다.
또한, 지난해 국정교과서를 찬성했던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도 최근 국정화 반대로 돌아섰다. 이런 여론 속에서 국정교과서를 안착시키기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이날 이준식 장관은 3월 시행을 두고 "국정교과서 폐기는 고려한 적이 없다.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현장에서 우리가 노력해서 만든 질 좋은 교과서가 교육 현장에서 혼란 없이 적용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명확한 시행 시점은 언급을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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