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을 수사해 온 검찰이, 최순실 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법원에 기소하면서 쓴 공소장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범죄에 가담한 혐의가 뚜렷이 나타났다. 특히 미르 재단 설립은 그 자체가 박 대통령의 아이디어였고, 최순실 씨와 그의 지인들을 위해 대통령이 직접 사기업에 인사 청탁을 하거나 돈을 내라는 요구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20일 법원에 접수된 검찰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피고인 최순실·안종범, 대통령의 공모 범행'이라는 부분에서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로 하여금 (중략)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는 강요죄 관련 공소사실 요지가 8회나 반복돼 나온다.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이 대통령과 공모'한 범죄는 미르 재단 관련, K스포츠 재단 관련, 현대차-KD코퍼레이션 관련, 현대차-플레이그라운드 관련, 롯데그룹 관련, 포스코그룹 관련, KT 관련, 공기업 그랜드레저코리아 관련 등 모두 8가지다. 8가지 모두, 적용 혐의는 직권남용과 강요다.
또 박 대통령은 이 8건의 직권남용·강요 외에도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직무상 비밀누설을 공모했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다. 특히 직무상 비밀누설이나, 강요 중 일부는 사실상 '공모' 수준이 아니라 박 대통령이 부하 직원인 안종범·정호성 등에게 지시를 내렸다는 점에서 '교사범' 수준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공소장, 디테일 보면 더 충격적
검찰은 미르, K스포츠 재단의 설립 경위에 대해 "2015년 7월경 대통령은 (중략) 문화 스포츠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되 재단법인 재산은 전경련 소속 회원 기업체들의 출연금으로 충당하기로 계획하였다"고 적시했다. 재벌 돈으로 재단을 만든다는 기본 아이디어가 박 대통령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피고인 안종범은 2015년 7월 20일경 대통령으로부터 '10대 기업 중심으로 대기업 회장들과 단독 면담을 할 예정이니 그룹 회장들에게 연락해 일정을 잡으라'는 지시를 받고, 10대 그룹 중심으로 대상 기업을 선정한 다음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삼성 등 7개 그룹을 최종적으로 선정했다"면서 "대통령은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에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정몽구, CJ그룹 회장 손경식, SK이노베이션 회장 김창근을, 25일 같은 장소에서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 LG그룹 회장 구본무,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등 대기업 회장들과 순차적으로 각 단독 면담을 하고, 그 자리에서 대기업 회장들에게 '문화 체육 관련 재단법인을 설립하려고 하는데 적극 지원을 해 달라'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적었다.
대통령이 직접 재벌 회장들에게 '돈 내라'고 했다는 말이 된다. 이 면담 후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전경련 산하 기업체들로부터 금원을 갹출해 각 300억 원 규모의 문화와 체육 관련 재단을 설립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에게 전화를 해 재단 설립을 지시했다.
그간 미르·K스포츠 재단 관련 의혹에서 수수께끼였던 '왜 10월 27일까지 그토록 재단 설립을 서둘렀는지'도 검찰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재단 설립이 지체되던 중인 2015년 10월 하순경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방한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정호성 당시 부속비서관에게 '리 총리가 곧 방한 예정이고 대통령이 지난 방중 당시 문화 교류를 활발히 하자고 했는데 구체적 방안으로 양국 문화재단 간 MOU를 체결하는 게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재단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정 비서관은 최 씨로부터 전달받은 이같은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그 직후인 10월 19일, 안종범 수석에게 "10월 하순경으로 예정된 리 총리 방한 때 MOU를 체결해야 하니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고 지시한다. 최 씨가 전한 말이 그대로 대통령의 지시가 됐다.
재단 이름을 '미르'로 정하기로 한 것이나, 재단 임원진을 누구로 할 것인가 역시 최 씨의 머리에서 나왔지만 '대통령 지시'로 실행됐다. 검찰은 "피고인 최순실은 2015년 9월말부터 10월경까지 문화재단에서 일할 임직원을 직접 면접을 본 후 선정했고, 같은달 하순경 문화재단 명칭을 '미르'라고 정했고, 이사장·사무총장·이사 등 임원진 명단과 조직표 및 정관을 마련했다"며 이어 "피고인 안종범은 2015년 10월 21일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명칭은 용의 순수어로 신비롭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진 미르라고 하라. 이사장·이사·사무총장은 아무개로 하고 사무실은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는 취지의 지시를 받았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검찰은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대통령의 직권과 경제수석비서관의 직권을 남용함과 동시에 이에 두려움을 느낀 피해자 이승철 등 전경련 임직원, 피해자 삼성전자 대표 등 기업체 대표 및 담당 임원 등으로 하여금 486억 원의 금원을 출연하도록 함으로써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였다"고 기소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이 롯데에 '75억 내라', 현대차에 '이 기업 밀어주라', KT에 '누구 채용하라'
특히 박 대통령이 직접 기업 고위관계자들을 만나 요구를 했다는 내용도 있다. 박 대통령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직접 만났는데, 이 자리에서 안종범 수석은 '최 씨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와 납품 계약을 맺으라'는 요구를 현대차에 했다.
검찰은 "피고인 최순실은 2013년 가을경부터 2014년 10월경까지 딸 정유라가 졸업한 ○○초등학교 학부형으로서 친분이 있던 이○○이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이 해외 기업 및 대기업에 납품을 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여러 차례에 걸쳐 정호성 비서관을 통해 KD코퍼레이션 회사소개 자료를 대통령에게 전달해 왔다"며 "2014년 10월 (최순실은) KD코퍼레이션에서 제조하는 원동기용 흡착제를 현대자동차에 납품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피고인 정호성을 통해 사업소개서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피고인 안종범은 2014년 11월 27일경 대통령으로부터 'KD코퍼레이션은 흡착제 관련 기술을 갖고 있는 훌륭한 회사인데 외국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으니 현대자동차에서 그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고, 서울 종로구 ○○○에서 대통령이 함께 있는 가운데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 및 그와 동행한 부회장에게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좋은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하니 현대차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면 채택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적시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순실 씨는 이같은 계약 체결 부탁이나 계약 성사 등의 대가 명목으로 시가 1162만 원 상당의 샤넬백과 현금 4000만 원 등 5000만 원여의 금품을 수수하기도 했다.
또 박 대통령은 플레이그라운드 사(社)가 현대차 광고를 수주하도록 도우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검찰은 "안종범은 2016년 2월 15일 대통령으로부터 플레이그라운드의 회사소개 자료를 건네받으며 '위 자료를 현대자동차 측에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고, 현대차 김모 부회장에게 자료가 담긴 봉투를 전달하며 '이 회사가 현대차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잘 살펴봐 달라'고 말했다"면서 "안종범은 2016년 2월 15~22일 사이에 진행된 대통령과 현대차그룹 등 8개 회장들과의 단독 면담이 마무리될 무렵, 대통령으로부터 '플레이그라운드는 아주 유능한 회사로 미르재단 일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 기업 총수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으니 잘 살펴보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롯데그룹에는 최 씨가 추진한 경기 하남시의 체육시설 건립 사업에 70여억 원을 내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검찰은 "피고인 안종범은 2016년 3월 10일경 대통령으로부터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2016년 3월 14일 단독 면담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대통령과 신동빈의 단독 면담 직후 대통령으로부터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 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그 진행 상황을 지켜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적시했다.
심지어 대통령이 직접 KT 상무에 누구를 임명하라고 지시하고, 임명된 후의 보직 변경까지 관여하면서 '깨알 지시'를 했다는 정황도 있다. 검찰에 따르면, 안종범 전 수석은 2015년 1월 및 8월경 대통령으로부터 "이동수라는 홍보 전문가가 있으니 KT에 채용될 수 있도록 KT 회장에게 연락하고, 신혜성도 이동수와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았다. 이동수·신혜성 씨는 최순실 씨의 측근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등과 가까운 인물들이다. 특히 그 후인 2015년 10월경 및 2016년 2월경 안종범 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이동수, 신혜성의 보직을 KT의 광고 업무를 총괄하거나 담당하는 직책으로 변경해 주라"는 지시를 받고 황창규 KT 사장에게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또 검찰은 "피고인 안종범은 2016년 2월경 대통령으로부터 '플레이그라운드가 KT의 광고대행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받고, 그무렵 황창규와 이동수에게 전화를 걸어 'VIP 관심사항이다. 플레이그라운드라는 회사가 정부 일을 많이 하니 KT의 신규 광고대행사로 선정해 달라'는 취지로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호성 '비밀 누설'도 대통령이 '공모'…'교사' 아닌가?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박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하는 직무상 비밀누설 혐의에 대해 검찰은 "피고인 정호성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국토교통부가 작성한) '복합체육시설 추가대상지(안) 검토' 문건을 자신과 최순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외부 이메일에 첨부해 전송하는 방법으로 최순실에게 전달했다"며 "정호성은 2013년 1월경부터 2016년 4월경까지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총 47회에 걸쳐 공무상 비밀 내용을 담고 있는 문건 47건을 최순실에게 이메일 또는 인편 등으로 전달했다. 이로써 피고인은 대통령과 공모하여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였다"고 적시했다.
박 대통령은 30쪽이 넘는 공소사실 요지 가운데, 피고인 최순실·안종범 2인의 공모 범죄인 강요미수, 최순실의 단독 범행인 사기미수와 증거인멸 교사, 안종범 단독 범행인 증거인멸 교사를 제외하면 모든 범죄에 '공모'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관계자는 "공소장에 아주 상세히 적시가 돼 있다"며 "공모관계가 인정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대통령이 피의자 신분이라고 했는데, 법률에 위배된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로 입건할 수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번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빠진, 정유라 씨에 대한 삼성의 35억 원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 추가 수사하겠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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