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주 연속 지지율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분출할 곳을 못찾은 거대한 민심은 넓은 광장을 떠도는데, 정치적 추동력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은 치솟지만, 이를 반영해야 할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원인을 냉철히 분석해야 한다. 민의는 정치(매개체)를 통해 결과를 도출해낸다. 지금 민의는 명확하다. 그리고 합당한 결과(박 대통령 퇴진) 역시 명확히 제시된다. 그렇다면 매개체가 고장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민심을 반영할 매개체는 정당이다. 노도와 같은 촛불 민심이 필터(정당)를 거치며 개울물이 된다는 의미다. 민심이 누군가에 의해 희석되고 있다는 의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할까.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추론해보자.
50% 야당 지지율, 90% 박근혜 반대…40%의 국민이 광장을 떠돈다
한국갤럽이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주요 야3당 지지율 합계는 51%였다.(더불어민주당 31%, 국민의당 14%, 정의당 6%) 무당층이 무려 32%를 기록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못한다는 응답다는 90%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긍정율과 부정률의 성분을 달리 본다. '잘 하는 것 같다'는 긍정률과 달리 부정률은 '적극적 반대'로 해석되기 때문에 부정률 상승세가 시작되면 이 수치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긍정률이 오르락 내리락 할 수 있지만, 한번 올라간 부정률은 '내리락'이 쉽지 않다.
단순 수치로만 보면, 그런 '적극적 반대파' 중 40% 가까운 사람들이 야당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있다.
다른 기관의 여론조사를 보자. 리얼미터다. 전날 발표된 리얼미터 주중 조사에서 야3당의 지지율 합계는 55.2%다.(더불어민주당 30.5%, 국민의당 17.0%, 정의당 7.7%) 그런데 같은 날 발표된 리얼미터의 다른 조사를 살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하야를 주장하는 응답률은 73.9%였다. 역시 20% 가까운 숫자가 야당에 흡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탄핵이 어려운 이유일 수 있다. 탄핵은 민심을 바탕으로 위임받은 대리인에 의한 적극적인 정치 절차 행위다. 그런데 탄핵 의견이 높더라도 그걸 실천할 행위자(야당)의 신망이 두텁지 못하면, 자칫 잘못했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점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정확히 간파하고 "탄핵, 할 테면 해보라"는 엄포를 놓고 있다. 만약 야당 지지율 합계가 70%를 상회했다면, 탄핵은 간단하게 실행됐을 것이다.
지지율 수치를 사실로 가정하고 수학적 공식을 대입해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물론 지지율을 토대로 전략을 세우는 게 가장 과학적인 방법일 수 있지만, 여론조사 자체가 내포한 한계가 있고, 무엇보다 정치가 생물이라는 점, 정형화되지 않은 무수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 등 때문에 리스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략적인 하나의 합의점에 이르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박 대통령 퇴진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교착상태'의 원인이다. 바로 '허약한 야당'이다. 민심을 흡수하지 못한 야당이다.
왜 '허약한 야당'은 '파렴치한 친박'에 질질 끌려다니는가?
'허약한 야당'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으로 야권이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 유린 사건에 대한 수습책을 명시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대통령 퇴진'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일 일사불란한 절차를 수립하지도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의 영수회담 제안이 큰 틀의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여야 대권주자들과 전략가들이 내놓은 '질서 있는 퇴진' 주장의 각론에서는 백가쟁명이 어지럽게 펼쳐진다.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의견은 합치됐으나, 황교안 총리를 대신할 국무총리를 먼저 세워야 한다는 의견부터, 대통령 보궐 선거 시기와 방법, 탄핵의 시기와 방법 등에 대해서는 합치된 의견이 없다.
벌써 차기 권력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고, 그에 따른 각 대선 주자, 또 각 정당의 셈법과 눈치 게임이 지속되는 지난한 일들이 매일 벌어진다. 대통령 퇴진에 앞서, '나'의 대권 전략, '우리당 후보'의 대권 전략이 우선이 된다. 무게감을 가져야 할 제 1야당 대표는 한줌 극우 시민단체와의 싸움에 말려들고 있다.
그 틈에 청와대와 친박계는 기지개를 펴고 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개헌을 전제로 한 조기 대선론을 꺼내들었다. 사실 새누리당의 각종 제안들은 현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오히려 정치권을 더욱 교란시키고, 더욱 혼탁하게 만드는 게 이익에 부합한다. 개헌론을 꺼내 야권을 분열시키고, 말실수를 꼬투리잡아 간헐적 국지전을 조성한다. 어느 순간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키를 쥐어버렸다.
야권이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서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최순실 게이트를 촉발시키고, 헌정 문란을 국민들에게 알린 야권의 공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벌어진 상황, 넘치는 민심을 반영할 구체적 방법론, 즉 대안에 대해 납득할만한 합의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헌정 중단, 헌정 파괴라는 중죄를 저질러 온 박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는 상황에서 추진할 수 있는 합법적 절차는 탄핵 뿐인데 이마저도 자칭 타칭 야권 유력 주자들의 '내전'으로 뒷전이 되고 있다.
대선주자 6인 회동 주목…결론 낼 때까지 2박3일 감금하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유의미한 제안을 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 문재인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오는 20일 야권 대선주자 회동을 한다. 애초 참석이 점쳐졌던 손학규 상임고문은 무슨 이유인지 "일정"을 이유로 불참키로 했다. 그러나 손 고문의 불참은 작은 사건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 회동이 그렇고 그런 회동이 되면 야권은 끝이다. 그간 야3당 지도부간 회동은 숱하게 있어왔다. 그럴 때마다 의미 없는 결과를 도출하고, 하나마나한 합의문 한장 던지는 게 전부였다. 서로 이견만 확인하고, 정작 중요한 결정들은 끊임없이 유보했다. '6인 회동'에서 파격적인 안을 내지 못한다면, 야당은 결국 정보력(사정기관)과 집행력(행정기관)을 장악한 청와대와 친박의 반격에 당하고 말 것이다. 무능한 야당 딱지가 붙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싫다고 무능한 야당 대선 후보에게 표를 줄 사람들은 많지 않다.
'6인 회동'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유의미한, 단일한 하나의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회동 장소의 문을 걸어 잠궈야 한다. 단기간에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2박3일이라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질서 있는 퇴진'이든, '질서 없는 퇴진'이든 결과물을 내야 한다. 87년 100만 시위대가 '뒷배'를 섰는데도 5공 잔당들에게 정권을 빼앗긴 이유를 곰곰히 새겨야 한다. 현 시점에서는 가장 희생하는 대권 주자가, 자기 이익을 스스로 팽개치는 대권주자가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