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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전한 이론을 완성한 과학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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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전한 이론을 완성한 과학자는?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최종 이론의 꿈>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 이론의 꿈>(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영역에 걸쳐 있다. 내용이 세 가지가 아니라 기능으로서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독자가 책을 읽을 때 그런 것에 신경 쓸 필요는 없지만, 이 책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듯해서 이 세 가지 영역을 따라 이야기하도록 한다.

첫 번째 영역은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현대 물리학이 도달한 지점을 소개하고, 물리학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최종 이론에 대해 논하는 일이다. 우리가 과학책을 읽을 때 기대하는 바로 그 목적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두 말할 것 없이 탁월하다. 와인버그는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이론 물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고, 노벨상 수상자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장 완전한 이론을 완성한 사람이다.

또한 와인버그는 양자 장 이론, 양자 역학, 중력 및 우주론 등에 대한 학술 서적 뿐 아니라 빅뱅 우주론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고전적인 과학 대중서인 <처음 3분간>을 쓴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처음 3분간>은 이 리스트와 같은 과학책 리스트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전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책이다. 그러나 이번 리스트에서는 이 책 이후에 나온 우주론 분야의 커다란 발전을 고려해서, <처음 3분간>을 제외하고, 빅뱅 우주론에 대한 책은 새로 나온 책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가장 뛰어난 전문가이면서 글도 잘 쓰는 대가가 비전문가인 대중을 위해서 쓴 과학책인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물리학 이론에 대한 설명은 비할 데 없이 정확하고, 등장하는 지식은 방대하며, 서술은 대단히 뛰어나다. 거기에 더해서 보통의 물리학자로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심오한 통찰도 듬뿍 담겨 있다. 예를 들면,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이론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와인버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물리학자가 어떤 이론이 아름답다고 말할 때에는 독특한 그림이나 한 편의 음악이나 시가 아름답다고 말할 때와 똑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미학적 즐거움에 대한 개인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조마사(調馬師)가 경주마를 보고서 아름다운 말이라고 말할 때의 의미에 훨씬 더 가깝다. 그 조마사는 물론 개인적인 의견을 표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에 관한 의견이다. 조마사가 쉽게 말로 옮길 수 없는 판단에 기초해 세운, 이 녀석은 경주에서 이길 그런 종류의 말이라는 의견 말이다.

내가 이 설명에 얼마만큼 동의하는지는 차치하고,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을 이렇게 명쾌하게 설명한 것은 처음 본다.

이 책의 내용은 흔히 하는 대로 역사적인 순서로 서술하는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 역사적인 사례를 가져오거나 설명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최종 이론이라는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서 와인버그는 환원주의, 양자 역학, 이론과 실험의 관계 등 흔히 접하기 쉽지 않은 주제를 하나씩 제시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이들 주제를 논할 때 와인버그는 교과서에서처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개념을 아주 근본적인 수준에서 논하기도 하고 풍부한 역사와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차분히 설명하고, 간단히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굳이 구구절절 서술하려들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양자 역학을 중력에 적용하려는 최근의 연구 결과를 통해, 빈 공간이 일반적으로는 높은 고도에서 바라본 대양의 표면과 같이 고요하고 평평해 보이지만,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되면 양자 요동이 소용돌이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 양자 요동은 무척 격렬해서 우주의 일부분은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다른 부분들과 연결하는 '웜홀(wormhole)'을 열 수 있을 정도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일반 독자에게는) 뜬구름 잡는 식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그렇다.

약전기 이론의 기저에 깔린 대칭성은 좀 더 신비주의적이다. 그것은 공간과 시간에서 우리가 현상을 보는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상관이 없으며, 그것보다는 소립자들의 정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와 관계가 있다. (…) 양자 역학의 경이로움으로 인해 어떤 입자가 명확하게 전자도 아니고 명확하게 중성미자도 아닌 상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아주 명확하지만, 언어로 이런 부분을 묘사하는 데는 아무리 와인버그라도 한계가 있다.

▲ <최종 이론의 꿈>(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이종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종합해 보면, 이 책은 과학 지식을 소개하기보다 과학 지식의 의미를 통찰하는 책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지식의 책이 아니라 지혜의 책이다.

이 책의 두 번째 기능은 논쟁의 책이다. 와인버그는 이 책에서 물리학뿐 아니라, 매우 논쟁적인 주제인 철학과 종교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과학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종교란 참으로 미묘한 주제다. 그러나 기독교 사회에서 자란 유태인이면서도, 와인버그는 이 책에서 종교에 대한, 보다 정확히는 신에 대한 그의 스피노자 풍의 관점을 드러내는데 거침이 없다. 물론 가급적 부드럽게 표현하려고는 한다.

만약 우리가 '질서'나 '조화' 대신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게 대체 무슨 차이를 만들겠는가?

(…)

인간들을 위한, 특별한 계획을 가진 신이 존재하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엄청나게 애써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그런 분을 우리 기도로 방해하는 것은 불경스럽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예의 없는 일일 것 같다.

사실 오늘날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신이란 와인버그가 생각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서술은 딱히 논쟁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와인버그는 리처드 도킨스처럼 공격적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며, 애초에 책을 쓴 목적도 다르다.

이 책이 정말 논쟁적인 부분은 철학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이다. 역자는 이렇게 소개한다.

사람들은 그 과학 전쟁의 서전을 흔히 1992년에 영국 런던 대학교의 루이스 월퍼트(Lewis Wolpert)가 펴낸 <과학의 비자연적 본성(The Unnatural Nature of Science)>과 와인버그의 이 책으로 잡고 있다.

현대 과학 철학이 과학을 보는 중심적인 관점은 과학적 내용이 객관적인 실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구성주의'라고 한다. 이 짧은 서평에서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피하도록 하겠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런 생각을 터무니없다고 여기면서도 딱히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일단 그런 주장이 지금 다루고 있는 데이터를 교란시키지 않기 때문이고 (그러니까 지금 하고 있는 과학 연구와 별 상관이 없고), 좀 더 중요하게는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어리둥절하기 때문이다. (거칠게 예를 들자면, 과학자 입장에서 구성주의의 주장이란 내가 지금 사과를 먹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그 사과는 진짜로 존재하는 게 아냐'라고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어리둥절할 밖에.)

그러나 와인버그는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구성주의적 관점을 정면으로 논박하고 있으며, 아예 '철학에 반하여'라는 노골적인 제목으로 한 장을 이에 할애하고 있다. 이것이 위에서 역자가 소개한대로, 과학의 본성에 대해 벌어진 소위 '과학 전쟁'의 불씨가 된 것이다.

과학 전쟁에 대해서는 내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문제의 전후 상황을 더 소개하긴 어렵다. 다만 내 생각을 말하라면, 나 역시 전형적인 입자 물리학자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이 책에서 와인버그가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와인버그와 과학 전쟁에 대해서 더 읽고 싶은 분에게는 그의 글을 모아 놓은 <과학 전쟁에서 평화를 찾아>(스티븐 와인버그 지음, 오세정·김형도 옮김, 몸과마음 펴냄)을 소개한다. 단, 지금은 구하기 어려운 듯하다.

세 번째 기능은 매우 실용적인 것이다. 와인버그가 이 책을 쓴 중요한 목적은 미국의 초거대 가속기 SSC(Superconducting Super Collider) 계획을 추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SSC는 현존하는 최대 가속기인 LHC보다 무려 세 배 이상이나 큰 87킬로미터 길이에, 출력도 약 세 배인 40조 전자볼트로 계획되었던 가속기로, 1970년대 말부터 논의되기 시작해서 1980년대 중반 계획이 확정되었다.

SSC는 1988년에 텍사스 주 엘리스 카운티의 왝사하치가 부지로 선정되고 설계가 거의 마무리 되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워낙 거대한 사업인 탓에 SSC는 끊임없이 자금 문제를 둘러싸고 의회에서 논의를 빚었으며, 1990년에 건설이 시작된 후에도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다.

와인버그는 SSC 건설을 지지하기 위해, 일반 시민부터 의원들까지 이 문제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가속기가 물리학의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며, 왜 중요한지를 바닥부터 찬찬히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예 이 책의 마지막 장은 전적으로 SSC에게 할애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의회에서 논란이 벌어질 때 참고 도서로 인용되곤 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회는 1993년 10월에 SSC 계획을 종료하기로 표결했다. 역사상 가장 큰 과학 사업은 이렇게 중도에 좌절되었다. 많은 과학자들 역시 실망하고 좌절해서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떠나갔고 적지 않은 수는 물리학을 그만 두고 다른 분야로 옮겨갔다. 와인버그도 그 뒤에 이 책의 페이퍼백이 나올 때 한 장을 추가해서 SSC 계획이 취소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이후 유럽입자물리학연구소 CERN의 LHC가 유일한 초대형 가속기로 남게 되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LHC는 2008년에 완공되어 2010년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책의 실용적인 목적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책의 세 번째 목적은 이제는 별 의미가 없다. 한편 두 번째 역할에 대해서는, 만일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할 것이다. 보통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첫 번째 기능에 대해서는,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그야말로 탁월하다. 이 책은 현대 물리학의 최정점에 있는 물리학자가 과학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의 통찰을 전해주는 소중한 기록이며, 앞으로도 고전으로 남을 책이다. 이종필 박사의 번역도 매우 충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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