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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론, '박근혜 세력'의 트로이 목마다"

[이충렬의 정권+교체] 2017년 과제는 파시즘 유산 청산이다

또 다시 천추의 한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작금의 긴박한 상황을 보며, 우리 현대사의 가슴아픈 대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945년 해방, 분단과 친일세력의 득세로 귀결. 1960년 4·19학생혁명, 5·16쿠데타로 귀결. 1979년 유신체제의 종언, 광주시민학살로 귀결. 1987년 6월항쟁, 민주세력 분열과 군부세력 집권연장으로 귀결.

최순실 스캔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관리 능력의 파탄으로 집권세력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정치적 몰락 직전으로 몰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불사조처럼 반전과 역전극을 펼치면서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기득권 카르텔의 정치적 대표자가 됐다. 이번에도 반전에 성공할까?

지금의 주·객관적인 여건은 정권교체에 유리하게 보인다.

2014년 말까지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4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카톡, 밴드, 페이스북, 유투브 등으로 표현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모든 정보는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공유되고 회자되고 있다. 조·중·동·종편으로 총칭되는 기득권 언론을 무력화할 신무기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명박·박근혜 극우·수구정권 10년을 거치면서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이 나라를 퇴보시킨 '망국세력'임을 거의 모든 국민이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일 지 모른다. 최순실 일당의 해괴망칙한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관리능력의 상실로 인해 집권세력은 모든 국민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포토라인에 서게 되었다. 국정농단의 진상이 철저한 조사를 통해 온 국민들에게 백일하에 드러나야 할 이유다.

주체적인 조건도 나쁘지 않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야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황금분할 투표로 인해 국회는 야권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야대여소의 세력관계로 편제되었다.

거꾸로 집권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럴 때 그들이 일말의 희망을 건다면 어떤 카드를 던질까? 바로 개헌카드다. 이 카드야말로 그들이 계속해서 권력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반전카드일 것이다.

친박과 비박을 막론하고 이원집정제나 내각책임제를 선호한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심지어 야당 의원조차 절대 다수가 국회가 국정운영의 전권을 쥐는 제도(내각제)나 내치에 대한 전권을 행사하는 제도(이원집정부)를 선호한다는 점이다.

만약 집권세력이 개헌을 내세운다면 야당에서도 호응할 세력이 상당하다. 그렇게 되면 내년 대선 전에 어떤 형태로든 권력 구조를 바꾸어 아예 대선을 안치르거나 비정상적으로 뒤틀어보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될 것이다. 개헌 카드야말로 집권세력이 야권에 던질 수 있는 트로이의 목마인 것이다.

사실은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여권이 아닌 야권 국회의원들이 현행 대통령중심제를 손보자는 의견을 선제적으로 제기해왔다. 야권 의원들이 현행 대통령 중심제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안을 찾자고 하는 것이 우국충정의 발로임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목조목 따져볼 필요는 있다.

우선 현재의 사태가 이른바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심각한 오판이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이른바 연정을 하고 있다. 법과 제도에 규정되어 있지않지만, 본인의 의지에 의해 추진하고 있고 야당의 호응을 받고 있다. 지도자의 철학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현행 대통령제에서 하나회 군벌 해체나 금융실명제같은 획기적인 개혁도 있었고, 또 대통령 측근 세력에 의해 국정이 농단되는 불상사도 있었다.

국회가 국가운영의 전권을 쥔다면 부패가 청산되고 효율적인 정치가 이루어질까? 택도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예를 들어보자. 이번 총선 전 인구증감에 따른 선거구 획정 문제가 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국회에서 위원회를 만들었지만 연거푸 법정 시한을 어겼다. 결국 법정시한을 한참이나 어기고 나서, 더 이상 획정하지 않으면 총선 자체를 치를 수 없는 날짜가 다가와서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개입으로 획정된 일이 있었다. 이것이 국회의원들의 의사결정능력이다. 이런 국회에 어떻게 국가권력의 전권을 맡길 수 있을까? 우스개 소리로, 도둑 300명 지키는 것보다 큰 도둑 1명을 지키는 것이 국민의 입장에서는 더 쉽다는 말이 나도는 것이다.

이원집정부나 내각제는 사실 군부독재세력의 오랜 염원이었다. 내각책임제를 뒤엎고 등장한 5.16쿠데타이후 강력한 군벌독재체제를 구축했던 집권세력은 80년중반 이후 자신들의 권력기반을 연장하기 위해 내각제나 이원집정부를 끊임없이 시도해왔다.

87년 6월항쟁 직전 내각제 개헌을 제기한 야권의 이민우 총재, 1990년 3당합당의 근거였던 내각제합의각서. 그때 이후 한국 정계에서는 끊임없이 대통령중심제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6월항쟁의 성과 위에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을 보완하자는 말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보다도 지방분권을 축으로 한 분권국가의 가치, 인권, 평등 등 미래지향적 가치를 담는 것이 중요하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도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개헌논의가 권력구조에만 치중되어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차기 대선 후보가 공약하여 내실있게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2017년 선거를 통해 무엇을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다.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손보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까지 몇 번에 걸쳐 강조해왔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군사독재정권(즉 파시즘)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 그로부터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다. 군국주의와 냉전적 사고를 지닌 세력, 재벌 중심의 이권 카르텔을 가지고는 우리 사회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이원집정부나 내각제야말로 이들 냉전·수구·극우세력이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다. 그렇게되면 이후 재벌 개혁을 포함한 체제개혁은 영원히 불가능해질 것이다. 여권이 던질 트로이 목마를 야권에서 받아서는 안 된다. 공동 투쟁을 한 걸음 한 걸음 밀고나가면서 연합의 정치를 통해 정권교체라는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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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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