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대한민국 최초! '부채 세대'의 탄생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대한민국 최초! '부채 세대'의 탄생

[강양구의 親book]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지난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월 10만 원도 되지 않는 학자금 대출 잔액을 갚지 못해 신용 불량자가 된 학생이 456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 상상해 봅시다. 공부하랴, 취업 준비하랴 바쁜 때에 추심처에서 사람 피를 말리는 독촉 전화가 이어집니다. 주변에는 몇 만 원의 돈이라도 빌려 달라고 손 내밀 이조차 없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가 100만 명이고, 이들이 진 빚이 12조 원에 달하는 시대입니다.

그나마 대학에서 진 빚을 취업 후 잘 갚을 수 있으면 다행입니다. 취업 준비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 필요한 생활비는 제2, 제3금융권에서 새로운 빚으로 융통해야 할 수 있습니다. 취업했다 치더라도,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며, 급여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으로 가기에 대출금은 계속 쌓여만 갑니다. 대학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부모님이 한 해 수백 수천만 원에 달하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절망의 사선을 위태롭게 걸어가는 대학생이 적잖습니다.

대학생을 옥죄는 현실을 25명의 지원자와의 인터뷰로 통해서 분석하고, 대학 무상 교육을 주장하는 책이 나왔습니다. 저자 역시 대학교(원) 졸업 후에도 여전히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채무자입니다. 천주희 씨가 쓴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천주희 지음, 사이행성 펴냄)가 바로 그 책입니다.

이 책은 성장이 멈춘 세상에서 대학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 젊은이가 한국을 지옥에 비유하는 이유, 학생들이 졸업을 유예하면서도 취업 준비에 목매는 이유를 연구 참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드러냅니다.

'강양구의 친북'은 지난 14일 현재 석사 학위 취득 후 청년 부채 문제 해결 활동을 이어가는 이 책의 저자 천주희 씨와 오늘날 대학의 현실을 이야기했습니다.

▲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펴낸 천주희 씨. ⓒ프레시안(최형락)


외환 위기 이후, 부채 세대의 등장

강양구 : 논쟁적 책 한 권을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부채 세대, 빚 지지 않을 권리를 말하다'라는 부제도 눈길을 끕니다.

자신을 대한민국 최초의 부채 세대로 규정한 저자 천주희 씨를 모시고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석사 학위 취득 후 또래의 부채 문제를 연구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 중이신 걸로 압니다. 특히 청년 세대 부채 문제에 관심을 가지신 계기가 있나요?

천주희 : 이 책 내용이 제 석사 학위 논문입니다. 논문 제목은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였습니다. 당시는 청년 세대가 아니라 부채 문제가 초점이었죠.

제가 2005년에 대학 입학해 작년 8월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0년간 학교에 머무르는 동안 학자금 대출로 학비를 감당했습니다. 기사 보면 많이 나오는 대학생 채무 문제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학자금 대출 상환 문제가 걸리니 논문을 쓸 때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습니다. 논문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에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추심 연락을 받는 일상이 제겐 큰 문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석사 논문 주제를 선택할 때 '나만 이렇게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분명히 열심히 공부하는데,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느냐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런 의문이 책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연구하다 보니, 부채가 대학(원)생의 일상에 생각 이상으로 큰 영향을 미침을 알게 됐습니다.

강양구 : 고개를 갸우뚱할 분도 있을 듯합니다. 예전 세대도 대학에 다닐 때 본인 또는 가족이 여러 부채에 의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저자께서는 책에서 지금 청년층을 '최초의 부채 세대'로 규정하셨단 말이죠? 예전 세대의 경험과 이 책이 다루는 오늘날 대학생 생활의 결정적 차이가 있을까요?

천주희 : 제가 연구하면서 가진 고민도 그 점이었습니다. 예전에 소 팔아서 대학 보냈다, 누나가 공장에서 일하며 동생 학비를 댔다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예전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한국의 대학은 예전부터 서민이 감당하기에는 매우 비싼 기관이었습니다. 그 시기부터 (학자금) 부채는 늘 있었죠.

그럼에도 제가 지금 세대의 학자금 대출에 주목한 이유가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이 196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특정 분기점을 전후해 부채의 유형이 바뀝니다. 소 팔거나 땅 파는 식으로 가족의 기존 재산을 저당 잡아 빚지는 게 아니라, 은행에 빚지는 식으로 변했죠. 과거의 부채와 달리, 지금의 학자금 대출은 금융 상품 성격이 도드라집니다.

강양구 : 그 분기점이 언제입니까?

천주희 : 2000년 전후로 봅니다. 물론 예전에도 학자금 대출을 받은 분은 금융 상품으로 등록금을 감당한 거지만, 그 수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시기가 이 때입니다.

왜 그런가 알아봤습니다. 외환 위기라는 중요한 일이 1997년 말에 있었어요. 외환 위기 여파가 1년, 2년 지나며 대학생, 대학원생의 대학 등록금 마련에 영향을 미친 거죠.

강양구 : 당시 제가 대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하시거나 자영업하시는 친구 가운데 등록금을 대지 못해 급하게 군대에 가거나, 휴학하거나, 아예 대학을 포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주희 : 맞습니다. 한국 대학의 주 수입원은 등록금입니다. 그런데 학생이 대학에 등록하지 않으니, 대학 차원에서도 이는 심각한 위기였습니다.

당시 한국이 외환 위기 극복을 위해 본격화한 정책의 하나가 금융 시장 확대입니다. 이 정책이 학자금 대출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당시 정부가 실업자 자녀를 대상으로 하는 학자금 대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학자금 대출 시장에 카드 회사, 보험 회사도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000년을 전후해 공식적으로 집계된 학자금 대출 규모가 커진 것뿐만 아니라, 시장 영역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 이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학자금 대출은 빚 수렁의 시작

강양구 : 예외적이었던 학자금 대출이 보편화한 시기가 그때로군요. 이 점이 중요한 대목인 듯합니다. 국가가 나서서 갓 성인이 된 이들에게 부채를 지게끔 하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니까요. 이 책의 중요한 문제의식이 '국가가 부채 세대를 만든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정작 많은 이는 학자금 대출을 부채라기보다 복지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책에서도 학자금 대출로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이 이를 부채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보이죠. 이런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천주희 : 제가 만난 이들은 2000년 이후 대학, 대학원에 다니며 학자금 대출을 받았습니다. 대화하다가 자신을 채무자로 인식하느냐고 질문하면 적잖은 이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많은 이가 학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주택 담보 대출을 받고, 자동차를 할부로 구입하고, 신용카드를 씁니다. 일상이 대출 위주의 금융 상품에 익숙해진 상태다 보니 부채를 빚으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이런 상황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채무자'라고 하면 우울하고, 암울하고, 비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른바 빨간 차압 딱지가 대표적 이미지죠. 제가 여러 학생을 인터뷰했는데, "저는 학자금 대출을 받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분명히 채무자인데도, (학자금 대출 정도를 받은) 자신은 빚을 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강양구 : 책을 읽으면서 마음 아팠던 대목이 있습니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면 이자와 원금을 갚아나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악순환이 발생하더군요. 이자나 원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신용 유의자, 혹은 신용 불량자가 된다는 공포를 학생이 안고 있고, 대출 기관은 이들의 공포를 이용합니다. 이 때문에 학생은 다른 곳에 우선적으로 써야 할 돈을 학자금 대출 이자나 원금을 갚는데 사용합니다. 결국, 생활 자금이 부족한 학생은 다른 곳에 또 다른 빚을 지는 악순환에 빠지죠.

천주희 : 물론 학자금 대출은 빈곤 문제와 연관 있습니다. 저는 주로 서울에 사는 학생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들의 모습이 도시 빈민의 일상과 많이 겹쳤습니다.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50만 원을 버는 학생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갑자기 아플 수 있습니다. 아프면 일을 못합니다. 졸업을 위해 논문에 집중하느라 아르바이트를 하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학자금 대출 원금은 물론, 이자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대출 상환 과정에서 악순환이 생기는 이유는 뜻하지 않게 수입 활동을 할 수 없는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기치 않은 공백기에 처하면, 당사자가 무기력해질뿐만 아니라 빚이 커집니다. 연체하면 연체료도 붙거든요. 그렇다면, 내가 갚아야 할 돈보다 더 큰 돈을 내야 합니다. 이런 악순환이 3~4개월 넘어가면 학생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됩니다.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혼자서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합니다. 자칫하면 무기력해집니다. 물론 저도 이런 일을 경험했고요.

부채의 덫은 A라는 빚을 갚기 위해 B라는 빚을 끌어다 쓴다는 점에서도 무섭지만, A를 상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면 꼼짝하지 못한다는 점이 진정 큰 문제라고 봅니다. 이때 빚의 악순환을 직면할 수 없는 용기를 갖지 못해, 아예 자신을 놓아버리는 경우가 적잖게 발생합니다.

▲ 대학생은 학자금 대출에 발목 잡혔다. ⓒ프레시안(김윤나영)

커피 마시느라 빚 못 갚는다?

강양구 : 계속 연체되니 빚은 더 쌓이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사태가 악화되고요. 이건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의 문제라기보다, 부채를 진 도시 빈민의 상황이라고 봐야겠네요.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잠시 이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청년 세대의 빈곤 문제가 공론화할 때마다 '쓸 것 다 쓰고 살면서 왜 저렇게 칭얼대냐' '미래를 제대로 계획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얘기를 하는 기성세대가 적잖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그리는 대학생의 현실은 기성세대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빚을 갚아야 하니 먹는 게 부실합니다. 꼭 써야 할 곳에만 돈을 써도 항상 쪼들립니다. 전형적인 도시 빈민의 모습이 바로 이 책에 그려진 대학(원)생입니다.

현실과 기성세대의 생각에 엄청난 시각 차이가 존재함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 걸까요?

천주희 : 저희 부모 세대가 제 나이 때 경험한 경제 상황과 문화는 지금과 정반대입니다. 저희 부모님은 성실히 일하셨고, 일한 만큼 저축해서 집을 마련하셨습니다. 본인들이 늙었을 때 농사 지을 작은 땅도 갖고 계십니다. 몸이 크게 불편해지지 않는 한, 소득 활동을 이어가실 수 있습니다.

반면, 저는 아무리 노동을 열심히 하더라도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들여야 할 비용이 너무 큽니다. 책에도 나옵니다만, 제가 대학을 10년간 다니면서 사용한 집세, 교통비, 식비 등의 합계가 2억 원 정도더군요. 어마어마합니다.

강양구 : 참고로 덧붙이자면, 천주희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께서 1000만 원이 든 통장을 내밀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며 독립시키셨습니다. 대부분의 대학(원)생은 이런 삶을 살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삶을 살죠. 천주희 씨는 조금 예외적인 상황이었죠. (웃음)

천주희 : 제가 20살 때 1000만 원을 들고 서울의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1년도 안 되어 그 돈을 다 썼어요. 제가 돈을 헤프게 써서가 아닙니다. 등록금만 700만 원에 입학금 100만 원 정도를 추가하면, 학비로만 800만 원 정도의 돈을 썼습니다.

서울이라는 낯선 곳에서 자립해야 하는데, 애초에 한국에서 대학생이 자립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던 셈이죠. 내가 돈을 벌어 자립하려해도 불가능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강양구 : 일반화해보자면, 기성세대는 고도 성장기에 청년기를 보냈습니다. 열심히 일해 저축하면 그 돈은 고스란히 축적되었고, 경제 성장의 과실을 어떤 식으로든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만 들어간다면, 들인 만큼의 비용을 졸업 후 곧바로 회수할 일자리가 보장되었습니다.

반면, 지금은 저성장 시대입니다. 보장된 미래란 없죠. 이런 구조적 차이가 명확함에도 기성세대는 현실을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이 빚을 진 대학생을 '부채 세대'로 명명하는 대목입니다. 단순히 젊은 세대가 먹고살기 힘들다고 이런 이름을 짓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채로 인해 젊은이의 인간형이 특정 방향으로 쏠린다는 뜻을 여러 대목에 걸쳐 책에 언급하신 것 같습니다.

자기 관리형 인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부채는 시장이 가하는 억압입니다. 억압받는 채무자들이 자본이 원하는 주체로 자신을 바꾼다는 겁니다.

천주희 : 네. 젊은이가 단순히 가난하기만 하다면 빈곤 세대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죠. 부채 세대라고 또래를 명명한 이유는, 우리가 태어나 삶을 재생산하는 과정 전체가 빚에 얽혔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생의 부모님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자 빚을 져 사교육에 투자합니다. 사교육을 하지 않더라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부모님이 빚을 집니다. 대학에 가면 학자금 대출을 받습니다. 취직하면 결혼할 때 빚을 지죠. 아이가 태어나면 차를 구입해야 하니, 역시 빚을 집니다. 평소 생활은 신용카드로 해결하죠. 삶의 모든 문제가 빚과 얽혔습니다. 저는 이 점을 드러내기 위해 부채 세대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저는 부채 세대가 청년 세대와 동일시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청년 개념은 언제나 변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책에서 '포스트 IMF 세대'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저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IMF 사태 이후에 출현한 세대는 부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10년 후에도 20, 30대가 부채 문제로 고민한다면, 실로 암울할 것 같습니다.

부채 공포가 만드는 관계의 단절

강양구 : 책에서 부채 세대의 특징으로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를 언급하셨어요. 조금 더 설명해주시죠.

천주희 : 제 논문에서는 이 부분을 조금 더 길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그런 일을 연구자의 용어로 "상환 불가능성을 계산하다"라고 썼어요.

'상환 불가능성'이란, 단순히 빚 상환을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변의 동료, 친구가 내게 호의를 베풀 경우, 내가 언젠가 그에게 이에 상응하는 뭔가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압박을 받습니다.

다섯 명의 친구가 있는데, 이 가운데 한 명이 피자 먹고 싶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죠. 피자를 먹고 돈을 각자 나눠야 하는데, 난 이 돈을 낼 상황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난 오늘은 괜찮아"라고 하고 자연스럽게 빠지게 되죠. 요즘 혼자 밥 먹는 문화를 '혼밥'이라고 하잖아요? 혼자 지내는 게 편하고 익숙해지죠.

강양구 : 누군가 '오늘은 내가 쏜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다른 이는 상환 불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거군요.

천주희 : 네. 한 연구 참여자와 이야기하면서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걸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위축되었을 때, 특히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죠. 내가 한 달에 50만 원이 필요한데, 통장에는 40만 원밖에 없다면 누군가의 호의를 받기 어려워집니다. 내가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데, 나는 당장 내가 진 빚도 갚기 힘든 상황이니까요. 남의 호의가 불편하니 아예 관계를 차단해버립니다.

강양구 : 이 대목이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포스트 IMF 세대가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험이 쌓이면, 연대의 가능성을 상실하게 되리라는 염려가 들었습니다.

예전에 유시민 씨가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내 세대는 연대해서 세상을 바꿔 본 경험이 있고 그런 경험이 지속적으로 사회에 유의미한 역할을 할 텐데, 다음 세대는 그러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어쩌면, 포스트 IMF 세대가 연대의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도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주희 : 신문 기사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습니다만, 우리 교육이 학생을 어릴 적부터 입시 교육에 몰두하도록 하고, 다른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급우는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로 바라봐야 함을 가르칩니다. 시험이 끝날 때마다 등수가 매겨집니다.

그나마 부모 세대는 마을 단위의 공동체 경험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아파트에 살면서 낯선 곳에서 각자 따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로 뭔가를 나누는 경험을 평생 해보지 못했죠.

▲ 대학은 더는 미래를 보장하지 않은 채, 빚과의 도박장으로 변했다. ⓒ프레시안(최형락)

졸업하지 못하는 대학생

강양구 : 책에 졸업을 유예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역시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 보죠. 왜 빨리 졸업해서 취업한 후, 빚을 갚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이렇게 지청구를 놓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주희 : 그러면 좋겠죠. 아마 다들 빨리 졸업하고 싶을 거예요.

한동안 '이불 바깥은 위험해'라는 말이 온라인에서 유행했습니다. 졸업을 유예한 채, 학교 바깥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죠.

강양구 : 나갈 수 없어서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교를 벗어나는 게 두렵기도 하군요.

천주희 : 네. 취업 준비생이 생각하기에 학적을 두고 지원서를 내는 것과 졸업 후 내는 상황이 크게 다릅니다. 면접관은 대학에 학적을 둔 지원자를 더 선호하리라고 대학생은 생각합니다. 더구나, 졸업 후 취업 준비만 1, 2년을 하면 그간 뭐 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되죠. 이런 상황은 내가 무능력함을 광고하는 꼴이라고 많은 취업준비생이 믿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여행 다닐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간 놀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삶의 공백기를 허용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학교 졸업생 중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극소수입니다. 그 중에서도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이도 극소수입니다. 많은 학생은 현실이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직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합니다.

한 번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이후 대기업 입사자와의 격차를 넘을 수 없다는 게 대학생의 생각입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비율은 매우 낮습니다. 대기업에 취업했더라도 비정규직으로 취업한다면, 1년, 2년 후 다시 이직해야 합니다. 계약 갱신을 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젊은이가 큰돈을 벌고자 이러는 게 아닙니다. 안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대기업 정규직 외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취업 준비생이 빚을 졌음에도 졸업을 유예하면서까지 대학에 머물려고 하는 이유는 이런 구조를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강양구 : 이 책에 관한 한 인터넷 서점의 댓글을 살펴봤습니다. 제목이 잘못 되었다는 댓글이 있더군요. 왜 공부를 대학에서만 해야 하느냐는 겁니다. 그런데, 이 책 자체가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담고 있거든요. 사람들이 모두 대학에 가려고 하는 현실을 비판하셨어요.

천주희 : 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매우 높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대학에 가는 게 보편적 삶이라고 모두가 생각합니다. 제가 25명의 연구 참여자와 인터뷰했는데, 그 중 네 명은 고등학교를 자퇴했습니다. 다른 삶을 꿈꿨고, 도중에 여행도 다녀본 이들이죠. 그런데, 스무 살이 되자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돌이켜 보면, '왜 대학에 가야 하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도 던져본 적이 없습니다. 부모나 학교가 이런 질문을 제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걸 대학에 간 다음으로 유예하죠. 대학에 가기 전 고민해야 할 문제인데도요.

이 책에서 말한 '공부'가 대학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물론 대학과 부채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보려 했지만, 이 문제는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기술을 배운다손 치더라도, 길어야 5년이 지나면 쓸모없어집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가진 기술의 유효 기간이 짧아집니다. 전문가가 되어 축적한 지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아니죠. 결국 개인은 언제까지나 학생의 위치에 머무릅니다.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 드는 학습 비용은 결국 부채로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으로까지 확장해서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대학생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느냐와도 맞물린다고 생각합니다.

대학 무상화가 공공성을 강화한다

강양구 : 이 책에서 내놓은 구체적 대안이 있습니다. 대학 무상 교육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대목에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과연 현재 한국 사회의 대학 교육이 공적 자금을 투입할 만큼 공공성을 갖고 있느냐는 데 의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 대부분의 대학에서 교수나 박사, 석사 학위를 가진 연구자가 행하는 연구가 과연 사회에 정말 필요한 연구인지, 있는 사람을 더 배부르게 돕는 연구인지에 관해 의문이 많이 듭니다. 대학 무상 교육 논의에 앞서 대학의 공공성 회복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천주희 : 물론입니다. 다만 논의를 대학 무상 교육으로 좁혀 보겠습니다.

제가 대학원에 다닐 때 남은 학자금 대출이 2200만 원이었습니다. 아마 저 홀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 논문을 썼다면 훨씬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빚도 더 많이 졌을 겁니다. 2200만 원에서 멈출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공부한 대학원의 분위기가 상호 호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학비를 지원해주신 선생님과 동료가 있었고, 제가 부담해야 하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자연스럽게 서로 교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무상 교육 논의로 발전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 대부분 대학원생이 개인이 돈을 감당해야 합니다. 심지어 학회에 논문을 게재할 때도 심사료를 내야 합니다. 이런 학계가 과연 공공성을 재생산할 수 있는 장인지 저는 의문입니다.

강양구 : 많은 학계 연구자가 사회에 필요한 연구보다 특정 이해관계와 관련한 연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저자께서 경험하신 연구를 위한 뒷받침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군요.

천주희 : 국가에서 예술인을 지원합니다. 예술 활동을 사회적 활동으로 인정한다는 거죠. 그렇다면, 연구자의 활동도 사회적 지식 활동으로 인정해주고, 지원 체제를 마련해주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강양구 : 그런 지원이 이뤄진다면, 사회적으로 필요한 연구가 더 활발히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군요.

이 연구를 위해 25명의 지원자와 인터뷰하셨는데, 첫 인터뷰가 2013년 진행되었더군요. 3년이 지났는데, 지금도 이때 참여자들과 연락하시나요? 이분들은 그 후 어떻게 되셨어요?

천주희 : 책 후기에 자세히 설명했기에 이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천주희 지음, 사이행성 펴냄). ⓒ사이행성
보통 논문이 나오면 논문 참여자들에게 감사 인사로 논문을 인쇄해 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이 논문을 낼 때 인쇄비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분들에게 논문 발표 당시는 감사 인사를 못 드렸고, 책이 나온 후 연락 드렸습니다. 현재 네 분 정도와 연락이 닿지 않고, 나머지 분들에게는 책을 보내드렸습니다. 책을 받아보신 분들의 연락이 오는 중입니다. 다들 격려를 해주셔서 뿌듯했어요.

강양구 : 대출금은 다 갚으셨나요? (웃음)

천주희 : 아니요. 제가 졸업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4월까지는 정기적 수입원이 없었기 때문에 원금이 전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후 정기적 수입이 생겨 이제 연체는 하지 않습니다.

강양구 : 지금은 주로 어떤 일을 하십니까?

천주희 : 부채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합니다. 서울시 청년의 부채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컴퍼니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내 인생은 부채꼴'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이 캠페인으로 모은 돈을 대학(원)생 부채 상담과 경제 교육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10월 29일 오후 1시부터 '무중력지대 대방동'이라는 곳에서 '개미와 빚쟁이'라는 축제를 합니다. 많은 분께서 놀러오시기 바랍니다.

강양구 :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의 저자 천주희 씨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꼭 대출금을 상환했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천주희 :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오늘 즐거웠습니다.

강양구 : 이 책의 후기에 "겨우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0점에서 시작하려 하니 이미 40세가 되어 버렸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실은 아니죠. 40세에는 전세 자금 대출이든 주택 담보 대출이든 또 다른 부채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시민이 부채로 삶을 지탱하는 나라인 것이죠.

언제까지 이런 사회를 용인해야 할까요?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바로 이렇게 부채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에 돌파구를 마련해보려는 용감한 시도입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우리가 당당하게 시민으로서 '빚을 지지 않을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낼 차례다. 나의 이 작은 시도가 우리의 문제를 풀어가는 데 밑거름이 되길 바라며 이제 우리도 빛나 보자. 빚 청춘아."

갚아야 할 빚 대신에 서로가 밝은 빛을 공유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분이라면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를 꼭 한 번 읽어보십시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기자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