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간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정부 광고가 태극기를 배경으로 나온다. 거짓이다. '나라를 사랑하자'는 말은 세상 물정 모르는 꼰대나 하는 X소리다. 지난달 한 리서치 회사가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4명 중 3명 이상(76.9%)이 이민을 고려했다고 답했다. 다시 태어나도 한국에 살고 싶다고 응답한 이의 비율은 26.5%에 불과했다. 탈조선(이민)이 해답이다. 국민은 이미 한국을 버렸다.
주위를 돌아본다. 파렴치범이 국회의원이 된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난 놈만 좋은 대학에 간다. 돈이 많아야 어학연수를 다녀올 수 있고,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다. 꿈을 꿀 수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다. 금수저(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다는 말에서 비롯됐다. '은수저'보다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할 여력이 있는 선택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로 태어나지 않는 한, 한국은 지옥이다. 헬조선이다.
물론 나보고도 노력하라고 한다. 너는 왜 공부하지 않고 남들만 비난하니? 남 부러워할 시간에 자기 계발에 더 매진해서 좋은 직장으로 옮기면 되지 않니? 이건 마치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땀 흘리며 올라가려는 바보짓과 같다. 죽을 듯 노력해야 겨우 제자리를 지킨다. 그 사이, 금수저는 편안하게 상승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말한다.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를 얻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를 얻었어요."
그러니 '노오력'('노력하라'는 꼰대의 말을 비웃는 조어)하는 건 바보다. 어차피 안 된다. 직장에 들어가 봐야 기다리는 건 직원을 부품 취급하는 군대 문화고, 죽을 듯 일하다 잘릴 미래다. 자영업 해봐야 망한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한다. 대학에 가봐야 남는 건 빚이고, 백수가 된 미래다. 그러니 헬조선이다. 탈조선(이민)만이 답이다.
그러니 비웃음으로 위안한다. '네가 잘 되면 안 된다'는 불안함과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이 뒤섞였다. '~충'이라는 명사는 살려달라는 절규다. 이들은 어차피 안 된다는 걸 안다. 투표해도 안 되고, 시위해도 안 된다. 공부해도 안 되고, 일해봐야 안 된다. 결혼은 능력 있는 자의 사치고, 내 집 마련은 동화 속 이야기다. 그러니 모두가 나처럼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그나마 사람이 평등한 순간은 함께 망할 때뿐이다.
이들에게 뭔가를 이룩한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는 모두 적이다. 저들은 절대 나를 이해 못하니까. 산업화 세대는 굶지 않는 미래라는 희망을 품었다. 똑똑한 민주화 세대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신념을 지녔다. 지금은 절망밖엔 없다. 그러니 민주화 꼰대, '씹선비'는 '일베충'의 적이 된다. 혐오를 방어 기제로 삼은 버림받은 청춘이 비난할 수 있는 유일한 절대 악이 된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펴냄)는 흔들리지 않는 전선을 요약한다.
"거 봐. 아까는 도전하라고 훈계하더니 내가 막상 도전하니까 안 받아주잖아."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민음사 펴냄)는 흔들리지 않는 전선을 요약한다.
"탈조선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더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디씨위키의 '탈조선' 항목에 등장하는 문구다. 지금의 청년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압축했다. 이들이 기댈 희망은 한국에서 벗어나는 것밖에 없다. 탈조선이라는 단어에는 어떠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탈조선에는 율도국을 찾자는 신념도, 체제 저항도 없다. 단지 내가 발을 디딘 한국이 죽도록 싫다는 절규밖에 없다. 그저 '여기서 살기 싫다'는 말이다. 일자리를 마련해준다고, 학자금 대출을 늘려준다고, 신혼부부 주택기금 제도를 개선한다고 이 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말이 보통명사화된 건, 오늘의 한국이 처절히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우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내놓는 처방은 모두 무용지물이다. 민주화 업적을 자랑하는 586 세대의 대안을 이른바 '보수화한' 청춘이 거부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넥타이 부대의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희화화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들은 한국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업적을 자랑한다. 그래선 헬조선에 떨어져버린 이들과 소통할 수 없다. 우리는 철저히 실패했다.
<노오력의 배신 : 청년을 거부하는 국가 사회를 거부하는 청년>(조한혜정·나일등·엄기호·이충한·이영롱·최은주·천주희·양기만·강정석·이규호 지음, 창비 펴냄)은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노오력, 노답, ~충, 헬조선 등 지금 인터넷 공간을 뒤덮은 절망적 신조어를 키워드로 뽑아 청년 세대의 절규를 직접 듣고, 왜 그들이 이와 같은 태도를 보이게 되었는가를 파헤친다. 저자들의 이름에서 보듯, 사회학을 공부한 이들이 직접 인터뷰, 연구 등의 조사를 거쳐 공동 참여한 이 책은 우리는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데 집중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 시간은 가장 길고 수면 시간은 가장 짧은 나라, 아동과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은 수직 낙하하는 나라에서 살아날 방법은 떠나거나, 벌레가 되는 삶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강조한다.
"생활을 유지할 직업이 급격히 사라지는 '무업사회', 모두를 고립시켜버린 '무연사회', 사람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무용사회'에서 탈존(脫存)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감지한 청년들이 이제 대대적인 전환을 해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곧 '저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과거 학생들의 선언문과 같다는 얘기다.
따라서 책은 청년이 만든 이들 조어로부터 '청년 문제' 해결을 넘어, 한국 사회 기본 설계를 바꿔야 함을 강조한다. 이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이제 청년 담론을 대하는 태도도 바꿔야 한다. 나아가 우리 삶의 태도도 바꿔야 한다. 헬조선이라는 말은 한국의 A부터 Z까지 모든 게 지옥이라는 뜻이므로, 전체를 다 뒤집어야만 한다.
책은 섣부른 해결책을 내놓지 않는다. 실은 그래야 맞다. 모든 게 잘못된 사회에서 '이것을 해결하면 된다'고 말하는 이는 거짓 선지자다. 그는 헬조선에 새로운 지옥을 더할 적그리스도다. 책은 새롭게 일어나는 청년의 작은 공동체적 대안을 부분 조명하며 '보호를 조직'하는 데서 진정한 탈조선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진정한 학습을 시작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조한혜정 교수는 구체적으로 청년 국민/시민 배당제도, 청년 자치 공간 지원, 갭 이어 제도 등의 구체적 대안을 출발점으로 제시한다.
이에 꼭 찬성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현실 인식이다. 왜 당신이 그토록 혐오하는 '~충'이라는 말을 저들이 쓰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왜 당신의 자식이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며 거짓된 꿈을 갖기를 거부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출발점이 보인다. 올해 초 소설가 손아람이 써 화제가 된 '망국 선언문'을 복기한다. 이 책에서도 인용했다.
"잠시 청년들에게 물어주십시오. 줄줄이 늘어선 초록색 빈 병으로 어지럽혀진 대학가의 술집 취객에게, 외로움을 둘 공간조차 없이 비좁은 고시원의 세입자에게, 자정의 어둠을 몇 달째 지켜온 무표정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이 나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주십시오. 그들은 서슴없이 멸망을 입에 담을 것입니다. 감히 멸망을 말하지만 악의조차 감지되지 않는 평온한 목소리에 당신들은 경악해야 합니다. (…) 청년들은 더 이상 꿈을 꾸지 않으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국호를 망각한 백성들처럼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릅니다. (…) 이 나라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대기업 매출액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을 뿐 기업소득과 개인소득의 격차는 점점 벌어져 OECD 최하위권에 머뭅니다. 오로지 기업만이 암세포처럼 무한히 자라나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봅니다. 국민소득이 30만 달러를 돌파하고, 세계 100대 기업 명단이 모두 대한민국으로 채워진들, 우리 각각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도 살 수 없는 높다란 탑을 쌓아올린 뒤 먼발치에서 그 웅장한 풍채를 감상하는 게 이 나라 경제의 목표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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