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후속 조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으로부터 받은 현금 10억 엔의 일부를 개별적으로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여론이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발언으로 악화된 가운데 박근혜 정부가 일본 정부와의 약속 이행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14일 화해치유재단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에 등록・인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대상으로 생존 피해자에게 총 1억 원 규모 및 사망피해자에게 총 2000만 원 규모 현금을 지급할 예정으로, 이를 11일 공고한 바 있다"며 "재단 사업의 수용 의사를 밝힌 생존 피해자들의 지급신청서 등 제반 서류가 갖춰지고, 이 서류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는 대로 다음주부터 최대한 조속히 지급해 나가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단은 한일 양국 간 합의 날짜인 지난해 12월 28일을 기준으로 생존 위안부 피해자가 46명이며, 이 중 피해자 및 보호자를 포함 32명과 면담을 추진했고, 그 결과 29명이 재단 사업을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재단은 면담 결과 11명의 위안부 피해자 본인이 직접 수용 의사를 표명했고, 노환이나 질환으로 인해 보호자의 도움을 받아서 수용 의사를 밝힌 피해자는 13명이라고 설명했다. 이외에 재단은 지난해 합의 이후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 5명이 수용 의사를 밝혔으며, 개인적인 사정 등으로 추후에 면담을 희망한 피해자는 2명, 면담 및 재단 사업의 수용을 거절한 피해자가 1명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와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 등 시설에 단체로 거주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면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재단은 신청이 들어오는 대로 검토를 거쳐 피해자들에게 현금을 분할 지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재단의 한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많은 금액을 한꺼번에 수령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론과 피해자 무시한 일방적 현금 지급
재단은 조속히 현금 지급을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반대 여론은 여전히 높은 상태다. 특히 지난 3일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따로 사과 편지를 보낼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 만큼도 없다"고 답한 뒤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일부 피해자들은 이 금액을 수령하기는커녕 정부를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 8월 30일 정대협 쉼터와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피해자들과 일부 개별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피해자 12명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손해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정부를 상대로 각 1억 원의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이와 함께 재단은 이 금액이 배상금인지, 치유금인지도 여전히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재단은 이날 배포한 자료에서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 엔에 대해 '현금'이라는 것 외에 어떠한 표현도 명시하지 않았다.
앞서 지난 9월 26일 김태현 이사장은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일본이 거출한 10억 엔이 "배상금적 성격을 띤 치유금"이라고 답한바 있다. 하지만 김 이사장은 지난 5월 31일 화해치유재단 발족 기자회견에서 10억 엔이 '치유금'이라고 밝혔다가, 일본으로부터 법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무시했다는 비판이 커지자 바로 다음날 '배상금'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정대협 "정의의 후퇴 역사의 퇴행"
재단의 현금 지급 강행에 대해 정대협은 "화해치유재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존엄회복 및 상처 치유를 위한 첫걸음을 개시한다고 하지만, 이는 정의를 후퇴시키고 역사의 퇴행으로 가는 걸음이다. 국정감사에서 김복동 할머니가 일갈한 대로 박근혜 정부는 역사를 팔았다'"고 맹비난했다.
정대협은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로서 피해자들이 가진 권리는 결코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소멸할 수 없다.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는 배상받지 못했다"면서 "'치유금'의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가족에게는 여전히 올바른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피해를 배상받을 권리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대협은 재단이 위안부 합의에 대해 찬성하는 피해자와 반대하는 피해자를 가르는 행태에 문제를 제기했다. 정대협은 "일본군 위안부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국내외에 증언하며 정의 회복을 요구해 온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이제 와서 소수의 목소리처럼 치부하며, 지급 받는 피해자 숫자를 전면에 내세워 부당한 합의 이행을 끝내 강행하는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피해자들을 양분시키고 있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정대협은 "아베 총리의 '털끝' 발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표현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겠다'고 하는 외교부 장관이니, 그 자제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털끝만큼의 양심도, 책임감도 남아 있지 않은 박근혜 정부를 향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우리 국민의 자제력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며 "국제 인권 원칙과 국제법에 근거한 피해자들의 권리 실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통한 올바른 문제 해결이 이뤄질 때까지 피해자들과 함께 정의를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