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자주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나 다른 동기로 포장된 명분을 위해서나 의사 결정자의 판단으로 위험을 감내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의사 결정자와 일선 행위자의 구분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흐름을 차단하려면 무분별하게 위험을 감내한 기업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기업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은 안전 사회를 이루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것과 관련하여 외국에서 촉발된 '기업 살인법' 제정 운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발아하여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업 살인법'은 산업 재해 문제를 배경으로 해서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2001년 노동 안전 연대 단체인 '노동건강연대'가 '산재 사고 처리에 관한 특별법' 입법 청원 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논의가 시작되었다. 위 단체는 2003년부터 "산재 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는데, 이때부터 '기업 살인법'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그 이후 이런 운동이 다소 정체돼 있다가 2012년 경 민주노총이 당시 잇따라 발생하는 산업 재해에 대해 기업의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나서면서부터 우리 사회에서 '기업 살인법'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기업 살인법'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관심이 급증하여 구체적인 입법안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얼마 전에는 검찰이 부실 공사나 안전 조치 미비 등으로 인명 사고가 났을 때 해당 기업 업주나 직원들을 형사 처벌하는 것과 별도로 법인도 형사 처벌하고, 기업에 대한 형사 처벌 방법은 연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벌금으로 내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이른바 정부도 '기업 책임법'의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15년 7월 '중대 재해 기업 처벌법' 제정 연대가 발족하여 '기업 처벌법'의 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기업 처벌법'에서 다루려는 것
'기업 처벌법' 제정 운동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맞는 구체적인 법률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 방안으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지만, 형법상 업무상 과실 치사상죄의 특별 규정으로 자리 매김되는 '기업 처벌법'을 별도로 제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나, 기업에 대한 처벌 강화 방안-법인에 대한 처벌
현재 대법원은 기업(법인)의 범죄 능력을 일반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입장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에 따라 기업은 양벌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그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다. 그 결과 개인 행위자는 업무상 과실 치사상죄로 처벌되지만 해당 기업은 업무상 과실 치사상죄로 처벌되지 않고 양벌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벌금의 액수 또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세월호를 운행한 청해진해운이 벌금 10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고, 6명의 노동자의 생명을 앗아간 폭발 사고를 일으킨 한화케미컬이 벌금 150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은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하여 판매한 기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거나 받는 경우에도 미미한 처벌을 받을 것임이 명백하다.
이처럼 대형 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일반 형법에 따라서는 처벌하지 않는 것이 법리상 불가피한 것인가? 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수 있다. 영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는 일정한 범죄에 대해서는 법인이나 단체에 대해서도 형사 책임을 부과해왔고, 얼마 전부터는 '기업 살인법'을 제정하여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을 형사 처벌할 수 있게 하였다. 프랑스에서도 신형법에 기업을 처벌하는 조항을 마련해 놓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의 노드라인웨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에서도 기업 및 기타 단체의 형사 책임의 도입을 위한 법률안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오면, 우리 법률상으로도 법인을 일반적으로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재해를 발생시킨 기업을 일반적으로 처벌하는 것은 가능하고 나아가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기업 처벌법 제정 연대가 국회에 입법 청원한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5조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
둘, 경영자에 대한 처벌을 보장하는 방안
재해 사고가 발생하였을 경우 기업의 최고 경영자에 대하여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드물게나마 볼 수가 있다. 세월호 참사와 삼풍백화점 사고 등에서 대표이사가 형사 처벌을 받았고 최근에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 및 판매와 관련하여 당시의 대표이사가 구속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재해 사고에서는 기업의 하위직 직원이나 현장 관리 책임자만이 형사 처벌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건의 경우 기소된 21명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리조트 사업본부장이었고, 대림산업의 여수 산업단지 폭발 사고(6명 사망, 부상 11명)의 경우에도 기소된 사람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대림산업 석유사업부 여수공장의 공장장이었으며, 현대제철 당진공장 가스 누출 사고(1년 동안 10명 사망)의 경우에도 기소된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사람은 위 공장 생산본부장(부사장직급)이었다.
이처럼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기업의 경영 책임자가 재해 발생에 관한 형사 책임을 거의 지지 않은 것은 '기업의 책임 분산 조직 구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전 관리 시스템의 결함 내지 미비에 대한 경영 책임자의 과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그에 대한 검찰의 편의적·자의적 기소 재량이 결합된 탓이다.
이런 실태를 방치하지 않으려면 경영 책임자에게 '일반적 주의 의무'를 부과하고 그 의무를 위반하였을 경우 형사 처벌이 가능하도록 명문 규정해야 한다. 직접적인 형사 처벌과는 구분되지만, 독일의 질서 위반법 제130조에 이런 취지의 조항이 마련되어 있다. 위에서 살펴 본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3조에도 그런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셋, 정부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보장하는 방안
기업이 일으키는 대형 사고의 경우,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공무원의 책임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현행법상 공무원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월호 침몰 사건과 관련해서도 구조 지체를 한 해경 외에, 선박의 안전 부실에 대한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은 단 한 명도 기소되지 않았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에 대해서는, 대법원은 교량 공사 감독 공무원 3명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인정했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검찰은 "대형 사고 때 1차 책임자뿐만 아니라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하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 중"이라고 밝혔는데, 그에 대한 후속 조치는 실제 하나도 없다. 따라서 정부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6조에는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검찰은 "대형 사고 때 1차 책임자뿐만 아니라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공무원에게도 업무상 과실치사죄를 적용하도록 제도를 손질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 중"이라고 밝혔는데, 그에 대한 후속 조치는 실제 하나도 없다. 따라서 정부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6조에는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다.
넷,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재해와 관련하여 기업에 막중한 배상 책임을 물리는 징벌적 손해 배상을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여러 언론이 동시에 이런 요구를 제기하고 있고, 시민들의 목소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징벌적 손해 배상은 가해자가 악의적으로 불법 행위를 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혔을 경우, 피해자가 입은 실손해 이외에 추가적으로 징벌적 의미를 추가하여 배상케 하는 제도다. 이 제도의 목적은 피해자의 손해를 보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가해자의 악의적 또는 의도적 고의에 대하여 징벌을 함으로써 가해자 및 제3자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다.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는 민·형사 책임이 엄격하게 분화되기 전인 18세기 영국에서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에 주안점을 두고 인정되기 시작한 제도로 대륙법계 전통이 강한 대한민국에서 도입되기 위해서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미 우리나라의 법제도에도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제한적으로나마 도입되어 있다. 개인 정보 보호법, 신용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대륙법계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위 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일에 많은 저항이 예상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이 줄기차게 손해 배상의 목적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며 실손해 배상주의, 제한배상주의의 원칙을 취하고 있어 더욱더 큰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사업으로 인한 피해가 자주 그리고 극심하게 발생하고 있는 점, 정부의 규제 완화 방침에 따라 행정 조치로 그러한 위험이 적절히 예방되기 어려운 점, 기업에 대한 형사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 다수 기업의 지배 구조가 민주적으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점, 이미 몇 개의 법률에 제한적이나마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가 도입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사후적·민사적 조치로서 효과가 제한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징벌적 손해 배상 제도를 광범위하게 도입할 필요성이 크다. '시민·노동자 재해에 대한 기업·정부 책임자 처벌법' 제9조에는 이런 취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기업 처벌법은 안전을 향한 첫 걸음
처벌이 능사가 아닌 것은 맞다. 그러나 안전을 담보할 제도가 미비한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처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특히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업의 탐욕을 무엇으로 제지할 수 있겠는가? 강한 처벌을 그 한 대답으로 제시하는 것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위와 같은 내용이 담긴 '기업 처벌법'이 제정되어 실행된다면, 억울한 죽음과 한 맺힌 통곡은 훨씬 많이 줄어들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안전을 위해 우리 사회에는 기업 처벌법이 필요하다.
(강문대 변호사는 기업 처벌법제정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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