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안전보건법의 태동과 한계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말하기 위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이야말로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입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 예방을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종합적 산업안전보건입법이 필요함에 따라 근로기준법에서 독립하여 1981년 제정되었다. 중화학 공업의 추진 등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위험한 기계기구의 사용 증가, 새로운 공법의 채용 등에 의한 산업재해의 대형화, 유해물질의 대량 사용 및 작업환경의 다양화에 따른 직업병 발생 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종래 산업안전보건체계의 근본적인 변화 및 근로기준법에서 분리된 독립법을 제정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정당시 2차 산업(제조업, 건설업) 중심의 산업구조 속에서 산재예방을 위한 사업주의 기본적인 의무를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1988년 문송면군 급성수은중독사건과 원진레이온 직업병사건등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의 민낯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이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여 1990년 전면개정 되었다.*
전면개정 후에도 여러 차례의 부분개정을 거쳐 산업안전보건교육의 사업주 의무화 등 노동자 알권리 확대, 사업장내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사동수 구성, 작업중지권 등이 법에 담기고,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 지원과 기금(산업재해예방기금)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1990년 전면개정 이후 IMF와 신자유주의의 급격한 사회변화 및 산업구조의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1997년 IMF체계는 기업의 고용구조와 생산방식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연간 6~7%씩 성장하던 고도 성장기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신자유주의에 편승한 기업들은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평생고용에 대한 ‘사탕발림’을 하지 않았다. 불확실성이 커져버려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고, 법적 책임과 비용부담이 적은 비정규직, 간접고용과 외주화를 무분별하게 늘려나갔다.
여전히 산업재해 및 산재사망이 건설업 및 제조업에서 집중되어 있는 현실에서 기존의 2차 산업 중심의 틀을 바꾸는 것에도 만만찮은 반론이 있었다. 조금씩 개정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산업안전보건법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 산업안전보건법의 문제점
하나, 적용 대상의 협소함
산업안전보건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근로자와 사업주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사업의 종류 및 규모에 따라 법의 일부 적용 예외를 두고 있어 모든 사업에 적용된다고 할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 의하여 법의 일부만 적용되는 사업의 종류가 구분되어 있는데,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의 의무가 모든 사업에 적용되지 않다보니 인명피해를 막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실례로 2013년 8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사업의 일부를 분리하여 도급을 주는 도급사업 시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에 대하여 건설업과 1차금속제조업, 선박 및 보트건조업, 제조업 등 8개 업종에만 적용되었다가, 4명의 노동자가 질식사한 2011년 7월 이마트 탄현점 사망사고** 등을 계기로 ‘사무직 노동자만 사용하는 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으로 확대되었다.
둘, 책임·권리 관계의 혼란
원칙적으로 사업장 내 위험에 대한 안전보건 상 의무는 사업주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업장 안전보건 확보의 책임을 사업주, 노동자, 정부 등 세 주체의 의무로 규정하여 세 주체가 병렬적으로 안전보건에 대한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오인할 소지가 있다. 산업재해에 있어 위험의 직접적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는 오히려 다양한 개별적 의무만을 지고 있을 뿐, 안전하고 쾌적한 작업장에서 일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한편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과 권리의 관계가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관계에 제약되어 있어, 용역 및 간접근로 등의 확산으로 인하여 근로계약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상 사업주 책임이 사업장의 실질적인 통제력이 없는 하청 사업주에게 지워지고 있다. 이로 인하여 사업장의 실질적인 지배 및 통제권은 원청·도급인에게 있으나, 법적인 책임은 실제적 통제권을 갖고 있지 못한 하청·수급인에게 전가되고 있으며, 실질적인 피해는 사업주(원청이든, 하청이든)에게 적절한 안전보건 상 보호조치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받고 있으며, 그 결과는 사망 등 인명손실로 나타나고 있다.
셋, 변화하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대응력 부족
산재사고의 피해자는 산업현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가 되겠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사업장 주변 주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은 사고로 인한 위험관리의무를 근로계약관계로 국한시키며, 다양한 관계에 대한 책임과 권리 관계를 규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상 근로계약관계가 불인정됨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도 못하고 있으며,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다양한 건설기계 종사자는 개인사업자로 구분되어, 직업성 손상의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안전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 산재사망사고는 산업안전보건법과 형법상의 처벌만으론 막을 수 없어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재해 예방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사업주가 사업장 내에서 산재예방을 위해 취하여야할 의무가 나열되어 있고, 이를 위반 시 처벌 등 제재조치가 규정되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①산재예방과 행정기관의 감독을 위한 근거규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법 속에 산재사고 발생 시 그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조항을 마련하기 쉽지 않고, ②산업안전보건법상 의무를 위반한 사망재해에 대한 처벌규정의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으로 중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과 같이 40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고에서도 원청사 대표에게 벌금 2천만 원이 부과되고 책임자들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를 보더라도, 결국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산재사고에 대한 강력한 책임을 묻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만으로 산재사고를 막기에도 한계가 명확하다. 산재사망사고에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와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형법 제268조)가 동시에 적용되는데, 업무상과실치사상죄 적용에 있어 검찰은 ‘행위자 책임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대표자나 고위임원이 현장 관리감독권을 현장소장이나 현장책임자에게 위임했을 경우, 사고 발생에 있어 직접적인 책임 또한 현장소장 등 하급 관리자에게 전가되어 사업자의 대표자에게 그 형사적 책임을 묻기 어렵다. 또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관한 형법 조항은 산업재해 사고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어서 이 조항만을 가지고 산재 사고를 대처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 기업살인법 제정경과
그간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대부분 현장의 동료근로자나 현장관리자가 처벌대상이 되며, 처벌수위는 대개 벌금형 또는 징역형의 경우 대부분 집행유예였으며, 원청의 현장관리자가 처벌받을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양벌규정에 의해 원청업체에 벌금형이 부과되는 수준에서 형사처벌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솜방망이 처벌은 기업들에 안전문제에 관심을 갖고, 최소한의 법률상의 안전보건의무를 꼼꼼히 취해야할 유인이 되지 못하였던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다단계 하청을 준 상태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원청 기업은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2003년 영국의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이 국내에 소개된 이후 산재사망사고는 단순한 사망‘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탐욕에 의한 ‘타살’이라는 문제의식 하에 기업범죄의 일종으로 보아왔다. 노동안전단체들은 기업살인법팀을 조직하여 지속적으로 세미나와 외국의 입법사례를 연구하여 왔다. 외국의 입법사례 연구과정에서 영국과 캐나다, 호주에 입법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동자 건강권운동진영은 산재사망에 대한 처벌강화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와 법안을 준비하였고, 민주노총은 2013년 산재사망 처벌강화 특별법률안을 제정하였고, 국회토론회를 거쳐 ‘산업안전보건범죄의 단속 및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서 발의되기도 하였다. 해당 법안의 특징은 1) 산재사망사고에 있어서 기업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으며, 2) 피해자의 범위를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외에 임대·용역·도급 노동자 등 노무종사자까지 포괄하였으며, 3) 산재사망사고에 대하여 가중처벌이 가능하도록 하였으며, 4) 하청노동자의 사망에 대하여 원청의 처벌이 가능하며, 5) 발생한 손해의 3배 이상의 배상책임을 규정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도록 터놓았으며, 6) 처벌 이외에 동일한 유형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기업에 영업정지나 허가취소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사업장내 도급에 있어 장소적 지배관리권을 소유한 원청 사업주에게 사업장 내 하청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 상 의무를 일부 부담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도 발의하였다. 국회에 입법 발의만 한 것이 아니었다. 2014년에는 당시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어 있는 캐나다, 호주, 영국의 대표를 초청하여 국제포럼을 개최하면서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게 된 문제의식과 입법추진경과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였으며, 법안을 가다듬고,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시민들과 입법 청원운동을 벌였으나 19대 국회에서 발의나 심의도 되지 못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이후 더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연대’에서는 산업재해뿐 아니라 기업의 탐욕으로 인하여 산업 현장이나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발생하는 재해에 대하여 ‘기업’ 및 ‘기업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담보하기 위하여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을 마련하였고, 해당 법에 대한 입법청원과 제정운동을 19대에 이어 20대 국회에서도 활발히 벌이고 있다.
2000년대 초 당시 이름도 생소한 ‘기업살인법’을 소개하면서 든 의문은 단순했다. “산재사망사고에 있어서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탐욕에 대한 낮은 책임이 과연 정당한가? 이것이 범죄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근로자의 과실이라거나 사업주가 법을 잘 몰라서의 문제가 아니다. 하루에 대략 6~7명씩 1년에 2천명의 아까운 생명이 매년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산재사망사고에 있어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자가 짓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을 지우지 않으면 우리는 10년 전에도 그렇듯이 다시 10년 뒤에도 1년에 2천명의 생명이 아직도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켜야할지도 모른다.
# '죽음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늦었다. 2014년 4월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대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400명이 넘는 피해자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오늘도 건설현장에서 조선소에서 공장에서 누군가의 자식, 누군가의 부모, 누군가의 남편을 잃고 있으니 말이다. 대기업과 경영진들은 외주화와 행위자 책임원칙에 숨어, 끊임없는 외주화와 다단계하청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분산하고, 손해를 분산하고 있다. 그렇게 처벌을 외주화하는 동안 하루에도 서너 명씩 죽어나가고 있다.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면 누군가는 계속 죽어나간다. 한국사회에서 이 계속된 '죽음의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면 또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은 죽어나갈 것이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은 한국사회의 죽음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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