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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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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망명

[문학의 현장]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망명

지금 이곳은 누구의 나라인가
일제의 발톱이 움킨 매국의 계절에
손가락을 자르고 떠나 버린 조선의 사나이
없는 나라마저 팔아먹은 부정한 정부政府를 버리고
입을 다물고 행동으로 떨쳐 일어나
누를 수 없는 북받치는 정열을 한 자루 붓에 맡겨
민족의 심장을 쳐 움직인 사나이
그가 돌아올 수 없는 이곳은 누구의 나라인가
중국 땅, 연해주, 만주를 떠돌며 온몸으로 혁명을
민중의 혁명을 꿈꾸며
미리를 무찌르던 그의 손가락은 아홉 개
그러나 그가 고개를 꺾어야 할 나라는
오지 않았는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매국의 계절에
이제는 전쟁으로 두 동강나고
결국은 한 동강마저 글로벌 자본에 목이 졸린 나라
그는 올 수 없는가, 민중의 굴레인
북곽 같은 정치와 법률과 윤리와 도덕과 종교
노예의 근성, 그 모든 것 다 버리고
오로지 민중이 주인인 무정부의 조선을 찾아 떠난 외길
매국의 주구走狗는 아직도 천지에 깔렸고
1936년 이후 한사코 혼으로 떠돌고 싶었던 사나이
태백산 같은 백골탑도 못 쌓고 쟁기도 녹이 슨 지금
그 혼은 아직도 멀리 계신가
어서 오시라, 그 한 마디 구천에 뿌릴 수 없는
지금 이곳은 누구의 나라인가

ⓒ프레시안(최형락)

시작 노트

언어마저 도탄塗炭에 빠졌다. 없는 나라를 팔아먹은 이승만의 시대, 언어를 틀어막은 박정희 시대, 총칼로 정신마저 도륙당한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을 거쳐 겨우 염치를 찾는가 했더니, 다시 도탄이다. 이 시대에 떠도는 언어는 정말 우리가 알던 언어였던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선비들은 글귀나 주워 모아서 세속에 아첨한다. 승냥이나 범도 남의 무덤을 파는 선비는 먹지도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자들이야말로 그런 더러운 자가 아니겠는가?"
글귀나 주워 모아 세속에 아첨하고, 그 권력으로 재산을 쌓고, 손가락질하는 시민들의 손가락을 자르려는 자들, 입을 틀어막으려는 자들, 굶겨 죽이려는 자들, 일제와 미제는 이런 못난 것들에게 완장을 채웠고, 이제 그놈들이 이 사회를 거침없이 먹어치우고 있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노동도, 그 무엇도 도탄에서 허우적거린다. 지금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 범도 안 물어갈 북곽北郭과 동리자東里子가 역겨운 구린내를 풍긴다. 썩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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