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혁명적으로 발전한다. 즉, 새로운 체계가 기존의 세계관을 뒤엎으면서 다시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따라서 수백 년이 아니라 수십 년만 지나도 그 내용이 유효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를 뒤바꾼 과학책이 몇 권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대하여>,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 아이작 뉴턴의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현대인은 없다. 과학사적으로는 중요할지언정 과학적으로 한계가 있고 또 더 진전된 내용을 담은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다르다. 올해 11월이면 출판된 지 157년이 지나지만 여전히 세계인들은 이 책을 읽고 탐구하고 토론하고 있으며 새로운 번역본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 지루한 책, <종의 기원>
나는 1984년 '다윈'이 아니라 '다아윈'이 쓴 <종의 기원>(김창한 옮김, 집문당 펴냄)을 처음 읽었다. 아니,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머리말은 흥미진진했다. 다윈은 자그마치 서른세 명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진화론이 자기 혼자 연구한 결과가 아니라 오랜 과학 전통의 산물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겸손을 과시했다. 또한 자신의 책이 내세우는 '자연 선택'만이 유일한 진화의 방법은 아닐 것이니 독자들은 부디 자신의 이론에만 갇히지 말라는 겸양을 보이기도 했다.
책은 머리말을 보면 대충 안다. 이 책이 얼마나 실한지, 얼마나 재밌는지 말이다. 하지만 <종의 기원>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제1장 '사육 및 재배 환경에서 일어나는 변이'만 읽으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다윈은 오리, 비둘기, 고양이, 닭, 말, 개 같은 가축의 사례를 들면서 가축의 야생종은 어떠했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야생종과 가축 사이에 이렇게 큰 차이가 생기게 된 까닭은 바로 사람의 '선택'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과 몇 세대 동안에 이루어진 선택에 의해서도 이렇게 큰 차이가 발생했는데 오랜 세월동안 진행된 자연 선택의 힘이 얼마나 클지 능히 짐작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야기를 읽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도전해보았지만 내 젊은 시기에는 2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강조하건대, <종의 기원>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과학책이다.
재미없는 가장 큰 이유는 눈으로 읽는 글이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 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넌 어떻게 생화학을 한다는 놈이 <종의 기원>도 안 읽었니? 당장 읽어 와!"라고 불호령을 치셨다. 독일어로 읽어도 서문만 재밌었다. 역시 제1장이 문제였다.
"박 씨가 새로 만들어낸 멋진 비둘기 있잖아. 아, 글쎄, 옆 동네 김 씨가 그러는데 비둘기 이놈과 저놈을 교배시켰더니 그놈이 나왔다는 것 아녀."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오고 또 나온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서 독한 사전을 찾아보면 그 뜻은 그냥 '비둘기'다. 또 다른 단어를 찾아도 '비둘기'고, 또 다른 단어를 찾아도 '비둘기'다. 유럽인들은 그 품종을 구분하는데, 우리말로는 다 비둘기니 재밌을 리가 있겠는가! (우리가 미역, 다시마, 모자반, 톳, 김을 구분하지만 서양 사람들에겐 이것들이 모두 '해초'인 것과 같다.) 지도 교수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그때도 제1장을 넘기지 못했다.
당시 나는 다윈이 정말로 글을 못 쓰는 과학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찰스 다윈의 자서전 격인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와 <비글호 항해기>를 읽고서 그가 얼마나 빼어난 문필가인지 깨달았다.
그렇다면, 다윈은 <종의 기원>을 왜 그따위로 썼을까? 여기에는 탁월한 전략이 숨어 있다. 19세기 영국의 상류 사회에서는 특이하게 생긴 비둘기와 개를 만들어내는 '육종(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거나 이미 있던 품종을 개량하는 일)'이 대유행이었다. 영국의 독자들이라면 육종사의 인위 선택 이야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다윈은 수없이 많은 육종사의 인위 선택 이야기를 반복한다. 육종에 관심이 없는 내게는 지겨운 이야기지만 육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풍부한 사례인 것이다. 독자들은 어느 순간 '육종사'를 '자연'으로 '인위 선택'을 '자연 선택'으로 바꿔 읽고 있는 자신을 눈치 채게 된다.
다윈의 글쓰기 절략이 어찌나 탁월했는지, <종의 기원> 초고를 살펴본 존 머리 출판사의 편집자는 제1장만 출판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고 찰스 다윈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물론 다윈은 웃으면서 흘려듣고 말았다. 그것은 다윈의 전략에 불과했던 것이니까.
나는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와 <비글호 항해기>를 모두 읽은 다음에야 <종의 기원> 제1장을 마침내 끝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돈이 걸려 있었다. 어느 신생 출판사가 '나의 오독(誤讀)'이란 주제로 작가들을 모아서 책을 내기로 했는데, 내가 맡은 책이 <종의 기원>이었다. 높이 나는 새가 떨어지는 이유는 일단 날았기 때문이다.
오독을 하려면 일단 끝까지 읽어야 한다. 계약금을 받았으니 어쩔 수 없이 끝까지 읽어내야 했다. 그런데 제1장을 넘기고 나니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읽을 수 있었다. 마침내 <종의 기원>을 다 읽은 게 2007년의 일이다. 1984년에 읽기 시작했으니 꼬박 23년이 걸린 셈이다. 맙소사!
<종의 기원> 핵심 체크
지루한 책일수록 정리는 간단한 법이다. 종의 기원은 크게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막은 '진화론의 윤곽'을 보여준다. 농부의 품종 개량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는다. 길들여진 개와 비둘기를 예로 들면서 별개의 종이 생겨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종의 변화를 이끄는 메커니즘으로 '자연 선택'을 제시한다.
제2막은 '진화론의 난점'을 설명한다. 눈처럼 극도로 완벽한 기관이 어떻게 우연적으로 생겨났는지, 뻐꾸기의 탁란과 생식력이 없는 일개미 집단의 협동에 같은 미스터리를 제시하고,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에는 중간 화석이 너무나도 부족하다고 고민한다.
제3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의 우월함'을 말한다. 화석 자료는 불완전하지만 종의 시간적 변화를 증언하고 있으며, 식물과 동물의 지리적 분포, 흔적 기관 등을 볼 때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론은 생명 종이 고정되어 있다는 이론에 비해 우월하다는 것이다. 끝!
다윈에게 호의적인 사람들도 <종의 기원>을 안 읽었으니 그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제대로 읽었을 리 만무하다. 소위 '창조 과학' 또는 '지적 설계론' 진영 사람들은 진화론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그런 허점 때문에 다윈의 자연 선택론은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허점'이란 다윈이 <종의 기원> 제6장 '이 이론의 난점'에서 이미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들이다. 거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창조론자들이 안쓰러울 뿐이다.
이론의 주창자가 "이 이론에는 이런 문제점이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하니 자연 선택론이 진화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지" 하고 말하고 있는데도, 그들은 "다윈은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어"라고 비웃는 꼴이다. 책 좀 읽자. 하지만 <종의 기원>을 읽으라는 것은 아니다. 다윈에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종의 기원>은 읽히는 책이 아니다.
<종의 기원> 어떻게 읽을까?
단언하건대, <종의 기원>을 잡아봐야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은 0.7%에 불과하다. 일단 건방지게 말하자면 2016년 8월말 현재 나와 있는 번역본 가운데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다윈의 책임도 있지만 번역자의 책임도 크다. (장대익 선생님! 종의 기원 출간 100주년인 2009년에 나오기로 했다는 새로운 번역본은 도대체 언제 나오는 겁니까!)
읽히지 않는 책 가지고 아등바등 하지 말고 다른 책을 읽자. 그리고 자연 선택설은 그다지 어려운 개념도 아니지만 오해의 소지도 많은 개념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직접 공략하는 것보다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게 더 낫다.
내가 생각하는 순서는 이렇다. ① 먼저 찰스 다윈에 관한 평전을 읽고 ② <비글호 항해기>를 읽은 다음에 ③ <종의 기원> 해설서를 읽는다. ④그러면 <종의 기원>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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