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Age of Extremes)'라고 불렀다. 러시아 혁명과 대공황, 제 1, 2차 세계 대전, 냉전과 달 착륙, 전자공학의 발달과 베를린 장벽 붕괴 등 20세기를 수놓은 사건들은 분명 이전의 어떤 세기보다도 극적이었고, 격렬하게 전 지구적으로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건, 20세기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를 꼽으라면 무엇을 택할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나는 원자 폭탄이야말로 20세기를 아우르는 가장 중요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원자 폭탄은 현대 물리학의 최신의 성과와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것은 인간이 아직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에 도달했음을,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능력을 가지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사건이며, 동시에 과학이 더 이상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손을 벗어날 수도 있는 가공할 힘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묵시록이다.
다른 한 편 원자 폭탄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상징하는 사건이며, 동시에 팽창을 거듭하던 제국주의의 종식과, 새로운 세계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나아가서 냉전 시대에 원자 폭탄은 균형을 강제하는 숨은 추였다. 핵무기가 없었다면 냉전이 그런 모습으로 전개되었을까? 냉전으로만 남아 있었을까?
결과론이지만 핵무기가 없었다면 세상은 훨씬 불안정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지나간 20세기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따라서 원자 폭탄은 전쟁의 무기로서가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과학 분야에만 한정해서 보아도, 원자 폭탄의 개발은 당시까지의 현대 물리학 지식의 집대성이자, 거대 과학이라는 새로운 과학 활동의 전범이 되었고, 이후 국가와 과학 연구의 관계를 설정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원자 폭탄에 대해서는 수많은 자료와 책이 넘쳐난다. 전쟁사의 입장에서, 과학사의 관점에서, 혹은 참여한 과학자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는 엄청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권의 책을 골라야 한다면 아마도 가장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책, 리처드 로즈의 <원자 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사이언스북스 펴냄)를 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정도로 이 책은 원자 폭탄이라는 사건에 대한 가장 방대하고도 중요한 기록이다.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원자 폭탄이 가능하게 되기까지의 20세기 전반기의 물리학 발전을 서술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도 많이 있지만, 로즈는 물리학자가 아니면서도 이 책에서 매우 정확하고도 유려하게 원자와 원자핵의 물리학이 발전해온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기원전 5세기에 처음으로 도입된 원자 개념은 근대 과학에서 되살아나 물리학과 화학의 여러 국면에 커다란 도움을 주면서 발전해 갔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원자란 아직 물리학의 세계에서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가상의 개념이었다. 그러다가 20세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고, 톰슨이 전자를, 베크렐이 방사선을 발견했다. 이렇게 새로 발견된 현상들을 기반으로 뉴질랜드 출신의 어니스트 러더퍼드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원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밝혀내어, 단숨에 원자의 연구를 물리학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그 뿐 아니라 러더퍼드는 아마도 원자의 구조에 대해서 가장 중요한 점을 밝혀냈다. 바로 원자에는 원자핵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로서 원자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새로 태어났다. 러더퍼드가 원자핵의 존재를 제안한 1911년부터 약 20년 동안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 원자를 설명하는 일이었다.
이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문제였는데, 당시 등장한 물리학의 새로운 세대들은 이 어려운 문제를 더욱 믿기 어려운 방식으로 해결해냈다. 원자의 구조를 설명하는 이 새로운 물리학을 양자 역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과학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찬란한 승리였고, 거대한 발전이었다. 양자 역학을 통해서 과학자들은 주기율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화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물리학자들의 관심은 원자핵을 이해하는 일로 넘어갔다. 1932년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함으로써, 과학자들은 원자핵의 구조에 대해서도 제대로 연구할 수 있는 기초를 갖게 되었다. 러더퍼드가 이끄는 케임브리지의 그룹을 비롯해서 프랑스의 졸리오-퀴리 부부가 이끄는 퀴리 연구소, 베를린, 괴팅겐, 뮌헨 등의 여러 독일 대학들, 페르미의 로마 그룹, 그리고 코펜하겐의 보어 연구소 등 당대 물리학의 중심지에서는 핵의 여러 가지 성질에 대해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도자격의 물리학자들은 이미 핵에서 에너지를 꺼내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었다.
한편으로 독일에서 나치스가 정권을 잡으면서 유럽의 정치는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우선 유태인 차별이 법제화 되면서 수많은 유태인들이 직장을 잃었고, 과학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대 탈출 러시가 일어났다. 아인슈타인은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제의를 받고 이미 독일을 떠나 있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해서 유태인이지만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제임스 프랑크는 항의의 표시로 사표를 던졌다. 막스 보른과 같은 명망 있는 학자도 예외는 아니어서 허겁지겁 영국과 미국에서 일자리를 구해야 했다. 러더퍼드나 보어 같은 사람들은 이들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별다른 업적도, 명성도 없는 젊은이들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이 가기는 어려웠다.
1938년 겨울, 마침내 독일의 오토 한과 슈트라스만은 우라늄 원자핵이 느린 중성자에 의해 붕괴된다는 것을 확인했고, 한의 오랜 동료로서 스웨덴에 망명해 있던 리제 마이트너와 마이트너의 조카 오토 프리슈가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이 소식은 보어를 통해 미국에 전해졌고, 곧 여러 실험실에서 확인되었다. 드디어 새로운 힘, 새로운 에너지가 인간의 눈앞에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힘이 나타났다고 해서 곧바로 인간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라늄의 붕괴 현상을 이해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보어와 페르미 등의 당대의 지성들이 수년을 더 노력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에 1939년 9월 마침내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다. 또한 2년 뒤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기습하면서 미국 역시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고, 전선은 태평양으로 확대되어 말 그대로 전 세계를 뒤덮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과학은 정치와 밀접하게 얽혀 돌아가게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독특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 헝가리 출신의 리오 질라드다.
이 책에는 무수히 많은 20세기 물리학의 영웅들이 등장하지만, 특히 다른 책에 비해서 이 책에서 유독 돋보이는 사람이 질라드다. 질라드는 사실 중성자에 의한 원자핵의 붕괴와 연쇄 핵반응을 가장 먼저 생각해내고, 그로부터 얻은 새로운 에너지에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또한 미국에서 원자핵 붕괴 과정을 처음으로 연구해서 확립시킨 사람 중 하나기도 하다.
그리고 원자 폭탄의 역사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기도 한데, 그 역할이란 바로 원자 폭탄의 가능성을 미국 대통령에게 알려서 폭탄 프로젝트를 시작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듯 원자 폭탄 프로젝트의 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면서, 그는 또 누구보다도 먼저 원자 폭탄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하고, 실제로 폭탄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질라드는 특유의 몽상적인 기질과, 거대 담론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정작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 뒤에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했다.
마침내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본격적으로 폭탄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책의 후반부는 로스앨러모스에서 수행된 폭탄의 설계 및 지난한 개발 과정, 그리고 바깥 세계에서 동시에 일어난 전쟁의 진행 과정을 꼼꼼히 그리고 있다. 버클리 대학교의 이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가 연구소의 소장으로 선임되었고, 그해 12월 사람의 손으로 원자핵 반응을 제어하는 최초의 원자로 실험이 성공함으로써, 이제 핵에너지는 인간의 손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해 4월 로스앨러모스에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모든 것은 1945년 8월 6일의 히로시마를 향해서 수렴해 간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이것은 분명 인류가 겪은 가장 끔찍한 순간일 것이다. 결코 잊히지도 않을 것이고 잊어서도 안 될 사건이었다. 로즈는 히로시마에 대해서도 여러 피해자들의 진술을 삽입하여 최대한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마지막 부분은 전쟁 이후의 세계와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원자 폭탄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과학자들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이미 핵무기는 정치와 떼어놓을 수 없게 되었고, 냉전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뒤의 자세한 이야기는 저자의 또 다른 대형 논픽션인 <수소 폭탄 이야기>(정병선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보는 것이 좋겠다.
지난 8월 6일은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 지 71년 되는 날이었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인구의 10% 이상이 징용 노동자, 군인이나 군속, 혹은 일반 시민으로 살고 있던 조선인이었고, 따라서 피해자의 열 중 하나는 조선인이었다. 그토록 많은 조선인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지만 전후의 혼란 속에서 그들을 수습해 줄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조선이 해방을 맞은 뒤, 남쪽과 북쪽에 각각 정부가 수립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조선인 원폭 희생자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물론 해방된 나라의 남쪽도 북쪽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1970년에 이르러서야, 민단 히로시마 본부에서 조선인 원폭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를 세웠다. 그러나 아직도 조선인 피폭자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배상이나 보살핌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피폭 후 귀국한 사람들에 대해서 아직 완전한 실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중 여러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정에서 싸우고 있다.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은 <원자 폭탄, 1945년 히로시마…2013년 합천>(김기진·전갑생 지음, 선인 펴냄, 2012년) 또는 합천 평화의 집(☞바로 가기)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번에 히로시마에서 오바마는 처음으로 한국인 피해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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