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미국이 MD 구축에 박차를 가하자 중국과 러시아는 한목소리로 'MD 반대'를 외치면서 가까워졌다. 그리고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공동 발표'는 중-러 간의 '전략적 결속'을 야기하고 있다. 이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미국의 차기 정부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중-러 결속을 감수할 정도로 사드 배치는 시급하고 중대한 것인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에게 이 질문을 던질 게 확실하다. 앞선 글에서 주장한 것처럼 미국의 다음 정부가 사드 배치를 '재고'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재고의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지 말라고 했거늘
미국의 전략가도 MD가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에 어떤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일례로 빌 클린턴 행정부 때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와 1970년대 초반 국방장관을 지낸 제임스 슐레진저를 비롯한 전략가들은 2008년에 펴낸 <미국의 전략 태세>라는 보고서에서 이렇게 주문했다.
"미국이 MD를 구축하는 과정은 러시아나 중국이 미국 및 동맹, 우방국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MD가 중국 및 러시아를 겨냥한 게 아니라고 주장해왔다. 유럽 MD는 이란의 위협에, 동아시아 MD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유럽 MD를 계속 밀어붙이자 러시아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선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려고 하면서 중국이 반발하고 있다. 그리고 유라시아 '양쪽' MD는 중-러 간의 '결속'을 야기하고 있다.
앞선 글에서 주장한 것처럼 중-러 간의 전략적 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 핵심은 전략적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사드를 비롯한 MD를 무력화시키고 "미국 및 동맹, 우방국에 대한 위협을 증대시키는 조치"가 될 것이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한국 내 사드 배치가 강행되면 유사시 사드 기지를 1차적 타격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2014년 12월에 일본 교토에 X-밴드 레이더 배치가 결정되었을 때에도 비슷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 무기 개발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 미군 기지 및 미국 본토에 대한 전략적 타격 능력도 배가할 것이다.
사드 배치 발표로 페리와 슐레진저 등 미국의 전략가들이 우려했던 상황이 빠르게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이다. 차기 미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될 것이고, 이는 사드를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는 본질적인 이유다.
유럽에선, 그리고 반세기 전 미국에선
미국의 차기 정부가 한국 내 사드 배치를 재고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데에는 유럽에서 비슷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동유럽 MD를 강하게 추진했다. 폴란드에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까지 요격이 가능하다는 지상 배치 요격 미사일(GBI)을, 체코에는 X-밴드 레이더를 배치키로 하고 협정까지 체결한 게 핵심이었다. 그러자 러시아는 이들 기지를 향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등 강력한 대응을 경고했다.
그런데 뒤이어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는 이런 계획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했다. 폴란드와 체코 정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GBI와 레이더 배치를 철회키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부시 행정부 때 악화된 러시아와의 관계를 재설정(reset)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유럽 MD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GBI 대신에 요격 범위가 좁고 고도도 낮은 'SM-3 기반 MD'로 전환키로 했고, 러시아는 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세기 전에도 흡사한 사례가 있었다. 중국이 1964년 원자 폭탄 실험에 이어 66년 탄도 미사일 발사 및 이듬해 수소 폭탄 실험 등을 연이어 실시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중국 위협론'이 맹위를 떨쳤다. 그러자 존슨 행정부는 중국을 "깡패 국가"라고 부르면서 MD를 추진키로 했다. 소련과는 무관하다는 주장과 함께. 중국을 북한으로, 소련을 중국으로 바꿔보면 오늘날 사드에 대한 미국 정부의 화법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뒤이어 집권한 닉슨 행정부는 MD를 사실상 접기로 했다. 소련도 MD 구축에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소련이 미국의 MD에 대응해 공격 능력을 강화하면 미국의 안보는 오히려 더 불안해질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냉전 시대 가장 중요한 합의인 탄도 미사일 방어(ABM) 조약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냉전(cold war)' 시대를 핵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그래서 '긴 평화(long peace)'를 가능케 했던 핵심적인 사유로 거론되어왔다.
절대 불안의 시대, 한국도 미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정리하자면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전략적 분기점'에 서게 하고 있다. 이 계획을 강행해 '중-러 연대와의 전략적 경쟁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이 계획을 철회 내지 유보하면서 다른 수단을 모색할 것인지'를 두고 말이다.
차기 미국 정부가 이 분기점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40여 년 전 소련과 협상에 나선 헨리 키신저는 "(MD를 통해 추구하려는) 한 나라의 절대 안보는 다른 모든 나라의 절대 불안을 의미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ABM 조약은 잠재적으로 위험한 방어(MD) 경쟁을 제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쟁국이) 공격용 무기를 배치하려는 동기도 위축시킬 수 있다."
이 발언을 오늘날의 맥락에서 해석하면, 사드를 비롯한 MD는 국가 안보의 '약'이 아니라 '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사드 배치는 한국에게는 백해무익하고 미국에게도 득보다 실이 크다.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면, 사드 반대는 결코 '반미'가 아니다. 사드를 비롯한 MD 강화가 가져오는 미래는 절대 안보가 아니라 절대 불안의 시대가 될 것이며, 그 불안의 그림자로부터 미국 및 동맹국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불안은 결코 안보 불안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드가 중-러 간의 전략적 결속을 야기하고 이에 맞서 미국이 동아시아 군사력 강화와 핵전력 증강으로 맞불을 놓게 되면, 미국의 군사비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초래할 한미 동맹의 미래는 한국에 대한 군비 증강 압박과 미국 내 신고립주의의 확산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인과 미국인의 '먹고사는 문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동맹의 균열도 커지게 된다. 과연 이게 한미 동맹을 위한 바람직한 미래인가?
한미 동맹이 과유불급,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인들이 근거 없는 '공미증'이나 자기만족적인 '친미증'에서 빠져나와 한국과 미국의 미래를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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