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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이 봄.날.

[문학의 현장]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수요시위 낭독시

오늘이라는 이 봄.날.

목울음이 피어났어, 시냇가 버드나무에, 길게 없어지며 왜 내 목은 못 울어 하고 목메어 물었던 소녀들의 목울음
담 밑 쓰레기통을 뒤져 해진 일본군화를 찾아 신고 저벅저벅 피어났어, 저녁이 안개를 피울 때 나무에는 몸보다 큰 그림자가 서있었어, 벗어날 수 없는 발목의 표정을 신고서
어디서 왔는지 뒤를 밟아온 발자국도 모른다 했어, 떠돌이 극단에서 외줄을 타고 돌았다거나, 흰 종이에 얼굴을 틀어박고 머리에 하얀 글자를 썼단 말이 돌았어, 산에서 붉은 진달래를 먹다 내려와 노랑별꽃들을 따먹으며 운다는 말도 돌았어. 일본군에게 뺑뺑이를 돌다가 머리가 돌았다는 말은 젤 나중에 뱅뱅 돌았어

아이들이 돌고 있는 말로 팔매질을 하면 구부러진 등의 침묵 속으로 걸어 들어갔어, 나는 소녀다 하는 것처럼 걸어 들어갔어
그러던 어느 날은 어느 때고 닥쳐와, 저녁이 피우는 연기를 퍼먹고 마을이 한꺼번에 목구멍이 터지는 그런 날, 뒤축을 버린 발목 한 켤레에 어른어른 어지럼증 이는 그런 날

길게 없어지던 소녀들이 돌아와 버들벚꽃 위에서 울멍울멍
식은 목울음을 푸는
오늘이라는 날

찬 쇠붙이로 얼어붙어 있던 치욕이
팔랑거리는 소녀로 다시 피어나는
오늘이라는 이 봄.날.

ⓒ프레시안(최형락)

낭독일기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수요집회. 방송카메라가 외계인의 귀와 눈알처럼 늘어서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거기서 선포되어 쏟아지는 수많은 분노와 규탄과 당위의 말들은 방송카메라들이 잘 붙잡아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다시 풀어놓을 테니 나까지 붙잡을 필요는 없을 일이다. 나는 단지 기자회견을 하는 중에 구순 할머니들이 토해내는 깨진 거울조각 같은 기억의 파편들에 직접 살갗이 베이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고만 말하겠다.
"나라 뺏고 우리 아들딸 얼마나 끌어갔나? 남자는 군인으로 끌려가고 여자는 위안부로 끌려갔다 하는데, 강제로 끌어갔는데 위안부가 무슨 말이냐? 위안부가 아니라 그곳은 사람잡는 사형장이었다."
"수십만이 끌려갔는데 부끄러워 신고를 안 하는 게 아니다. 다 죽었기 때문에 다 못하는 거다. 우리는 나라도 없고 증거도 없다. 피해자는 어둠 속에 있다. 그러나 후손에게 이 비극의 역사를 끝까지 알리겠다. 내 나이 89살, 운동하기 딱 좋은 나이다."
"내 고향은 상주다. 중국으로 끌려갔다. 감, 대추 많은 부자집 막내딸이었다. 2000년도에 집에 오니 오빠, 언니 아무도 없었다. 이 때까지 못 찾았다."
"제발 말한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주기 바란다. 끌려가지 않았으면 우리도 열심히 공부해서 그런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소녀상과 10억엔에 팔아먹은 역사는 더 끔찍하게 되풀이 될 것이다."
유럽투어 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89세 길원옥 할머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받기 원하십니까?"
라는 기자의 야만적인 질문에 "우리는 배고파서 밥을 요구하는 것도, 헐벗어서 옷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땅덩어리를 다 준다한들 내가 열네살로 돌아갈 수 있나."라고 하셨다. 폭력이 개인의 삶과 생명을 송두리째 착취하고 돈으로 보상하면 된다는 가벼운 발상은 야만의 극치가 분명하다. 우리의 세계는 야만의 극치조차 넘어서고 있다. 이번 생에 우리가 몇 번의 수모를 더 견뎌야 우리의 세계가 우리를 흡족해 할까?
"...여기저기 꽃이 피어나는 사월입니다. 사월마다 피어나는 꽃은 슬픈 꽃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부터는 사월의 꽃은 더 이상 슬픈 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부터 사월에 피어나는 꽃은 전쟁과 폭력으로 유린당하고 죽임을 당한 모든 소녀들이 다시 살아오는 생명의 함성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들어가는 말을 하고 그저께 탈고한 시 '오늘이라는 봄.날.'을 낭독했다. 소녀를 모조리 잃은 채 살아낸 할머니들의 생애 앞에서 감히... 그러고 나서 "죄송합니다. 그동안 할머니들의 삶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그 말만 속으로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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