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 당신은 완전히 틀렸어(Wilson, you're all wet)."
요즘 같으면 소셜 미디어에서 몇 날 며칠 동안 화제가 될 이 봉변의 주인공은 하버드 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에드워드 윌슨이다. 그는 1975년에 <사회생물학>(이병훈 옮김, 민음사 펴냄)을 펴내고 나서 "빈부 격차나 성차별과 같은 기존의 사회적 불평등"을 옹호하는 과학자로 비판을 받았다.
윌슨이 예고한 "하등동물인 아메바의 군체에서부터 현대 인간 사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 행동의 사회학적 기초를 자세히 탐구하는" 사회생물학은 채 빛을 보기도 전에 우생학과 같은 사이비 과학으로 낙인 찍혔다. 하지만 윌슨은 저런 봉변을 당하고도 예고된 강연을 포기하지 않았고, 바로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펴낸다. 이 책은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 줬다.
사회생물학의 승리
하지만 적어도 (이런 게 존재한다면) 교양 시장에서 사회 생물학은 확실히 시민권을 얻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1976년), <인간 본성에 대하여>(1978년) 등으로 시작한 사회 생물학 또 (이름을 슬쩍 바꾼) 진화 심리학은 전 세계 과학 교양 출판 시장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그 명백한 증거가 바로 이번에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과학 고전 리스트"를 표방하며 선정한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의 책들이다. 이 가운데 다소 엄격한 기준을 잡더라도 사회 생물학에 포함할 만한 책은 50권 가운데 7권이나 된다. (다른 필자가 선점하고 남은 책을 떠안은 덕택에 나는 다음에도 비슷한(?) 책의 서평을 써야 한다.)
윌슨의 동료 존 올콕이 이미 2001년에 <사회생물학의 승리(The Triumph of Sociobiology)>(김산하·최재천 옮김, 동아시아 펴냄)에서 공언했던 일이 적어도 교양 시장에서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윌슨이 했던 과학자 또 글쟁이로서의 중요한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는 그 생생한 증거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과학?
여기서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를 둘러싼 맥락을 살펴보자. 1978년 윌슨이 당한 봉변에는 분명히 1970년대 미국 대학의 분위기가 한몫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대학은 학교 밖에서는 씨가 마른 좌파의 영향력이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이다. 68 운동, 반전 운동, 또 마오쩌둥의 문화 혁명 등의 세례를 받은 이른바 '신좌파'가 득세했던 1970년대는 그 영향력이 훨씬 더했다.
윌슨이 근무하던 하버드 대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스티븐 제이 굴드, 리처드 르원틴, 존 벡위드 등을 중심으로 한 교수와 학생은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공모에 대한 문제의식을 벼르던 중이었다. 이런 그들에게 "인간 본성" 운운하는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분명히 수상쩍게 보였을 것이다.
윌슨과 그의 동료는 이들의 주장이 일종의 허수아비 비판이었다고 여긴다.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당시의 논쟁은 훨씬 더 넓은 맥락에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과학 지식과 사회의 상호 작용에 초점을 맞춰보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재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굴드와 같은 비판자 입장에서 사회생물학의 논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우생학에 열광했던 것은 히틀러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선배 '과학 좌파', 특히 193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과학자 여럿은 과학기술을 통해서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생물학 지식을 통한 인류의 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선배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등장한 굴드나 르원틴 같은 신좌파 과학자들이 과학 지식이 사회와 상호 작용하면서 낳는 효과에 민감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사회생물학은 윌슨이나 그의 동료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우생학과 비슷한 사회적 효과를 낳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2014년 8월 20일, 도킨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다운증후군 아이의 낙태를 권하는 짧은 글을 올려서 몰매를 맞았다. 나는 그의 글에서 '부도덕(immoral)'이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 그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는 일을 부도덕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생학으로 인류의 개선을 꿈꾸던 히틀러나 옛날의 과학 좌파들이 가장 손쉽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이들의 말살이었다. 그러니까,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는 일을 부도덕하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는 도킨스와 우생학을 신봉하던 이들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지 않다. (물론 사회생물학을 옹호한다고 해서 모두 도킨스 같은 도덕관을 가진 것은 아니다.)
둘째, 하필 1970년대 이후 40년간 사회생물학이 교양 시장에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1970년대 이후부터 지난 40년간은 20세기 역사에서 대반동의 시기였다.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는 연대에 기반을 둔 복지 국가 같은 사회 국가의 비전이 스러지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기반을 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교양 시장에서 사회생물학이 득세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기적 유전자' 같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수사를 내세운 책이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읽히고, (프란스 드 발이 <내 안의 유인원>(2005년)에서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호전적인 침팬지가 협력적인 보노보에 비해서 주목받았던 것은 분명히 시대상과 연관이 있다.
반면에 (역시 프란스 드 발이 꼬집듯이) 어느 순간부터 사회생물학이나 진화 심리학의 중요한 키워드가 '협력', '연대', '공감', '이타심' 같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왜 40년 전에는 이런 키워드가 과학자나 교양 시장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역시 사회생물학과 사회의 상호 작용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그 전에도 이와 같은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장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는 책의 뒷부분을 인간의 이타심에 할애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읽어도 <인간 본성에 대하여>가 고전으로서의 균형 감각을 갖추게 된 이유가 바로, 윌슨이 하버드 대학교의 동료 비판자를 의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왜 '올드 좌파'는 사회생물학에 열광하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윌슨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서 진화에서 비롯된 '인간 본성(유전자)'을 문화를 묶는 '가죽끈'에 비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문화는 그것을 묶는 가죽끈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속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비유는 또 다른 생각 거리를 준다.
사회생물학의 이런 사유는 '구조주의'와 다르지 않다. 알다시피, 구조주의는 '자율적'이라고 믿는 우리의 판단과 행동마저도 이미 존재하는 어떤 구조, 예를 들면 역사, 언어, 습속 혹은 사회적 관계에 의해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사유 역시 이런 전형적인 구조주의의 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쓴 <과학 수다 1>(사이언스북스 펴냄) 110~112쪽의 짧은 에세이를 참고하라.)
사회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진화의 흔적을 연구함으로써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제약하는 어떤 구조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바로 그 핵심에 놓여 있다. 마르크스가 '가죽끈'을 역사 속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자본주의)라고 보았다면, 사회생물학은 그것을 진화의 흔적(유전자)으로 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완고한 좌파 지식인 가운데 몇몇이 최근 사회생물학에 꽂히는 것도 이해 못 할 바가 아니다. 강력한 구조의 힘이 작용하는 원리를 파악하면, 인간과 사회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는 그들이 신봉한 마르크스주의와 (그들로서는 새로운) 사회생물학이 상당히 흡사할 테니까.
나는 굴드 같은 인문주의 과학자가 사회생물학을 못 견뎌 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윌슨보다 훨씬 더 영악한 도킨스 같은 이가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 장에서 (따지고 보면 모방과 다를 게 없는) '밈(meme)' 같은 알쏭달쏭한 개념을 내세우며 문화의 자율성을 인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굴드나 도킨스는 알았다. 한 가지 구조의 힘만으로 '환원'하기에는 개인의 마음과 마음이, 또 그것이 어우러져서 빚어내는 인간사의 복잡성이 상상을 넘어선다는 것을. <인간 본성에 대하여>가 지금 읽어도 여전히 흥미로운 한 시대를 상징하는 고전이지만, 읽고 나서 답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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