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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웃고, 투자자는 우는 '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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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웃고, 투자자는 우는 '브렉시트'"

[브렉시트 이후 ③] 미국-유럽 경제력 격차 확대될 듯

함께 추락하는 두 물체가 있다. 하나는 낙하산이 멀쩡하다. 나머지 하나는 낙하산이 찢어졌다. 둘 다 떨어지고 있지만, 더 빨리 떨어지는 쪽에선 나머지 한 쪽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브렉시트 이후, 미국 금융이 더 강해져

미국과 유럽 금융기관의 관계가 딱 이런 식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월스트리트는 치명타를 입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기관의 상대적 위치는 더 높아졌다. 여기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변수가 겹쳤다. '브렉시트' 이후, 자본 시장에서 유럽 금융기관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는 추세다. 결과적으로, 세계 금융 시장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투자은행 부문 상위 5개 은행인 JP모건 체이스 ·시티그룹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매출 총계는 1385억 달러였다.

유럽 투자은행 상위 5개 은행인 도이체방크 ·바클레이스 ·BNP파리바 ·크레디스위스 ·UBS의 매출 총계 601억 달러의 두 배가 넘었다. 지난해 세전 기준 순이익 격차는 미국 은행이 355억 달러, 유럽 은행이 42억 달러였다. 8배에 가까운 차이다.

금융 위기 직전인 지난 2007년까지만 해도,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이젠 격차가 확연하다. 위기 상황에서 추락하는 속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은행의 투자은행 및 증권사업부 매출은 전년보다 8% 감소했다. 반면 미국은 0.8% 줄어드는데 그쳤다.

유럽 '투자은행 챔피언', 더 어려워졌다

존 맥팔레인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 회장은 지난해 10월 <파이낸셜 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 금융기관의 영향력 확대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직원들에게 너무 높은 보너스를 주는 미국 금융권 관행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했다. 유럽은 이런 관행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게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금융기관의 보너스가 연봉의 2배를 넘지 못하게끔 하는 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효과가 없었다. 보너스 대신 연봉을 올렸기 때문이다.

아울러 맥팔레인 회장은 미국 금융기관에 맞서기 위해 유럽 은행의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광범위한 금융권 구조조정을 했다. 리먼브러더스, 베어스턴스, 메릴린치 등 미국의 대형 금융기관들이 망하거나 인수되면서,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금융기관은 몸집이 더 커졌다. 맥팔레인 회장의 제안은 이런 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유럽 금융권도 규모를 키우자는 게다. 그는 '투자은행 챔피언'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맥팔레인 회장의 기대를 깬 사건이다. 유럽 금융의 중요한 축이었던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겠다고 했다. 맥팔레인 회장의 제안에 공감했던 유럽 금융인들은 이제 새로운 비전을 찾아야 한다. 당장은 그게 쉽지 않다. 그 결과가 유럽 금융기관의 영향력 약화다.

유럽 대신 중국

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실물 부문의 경쟁력 약화다. 금융과 실물 경제가 따로 움직이는 현상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설령 지속돼도 부작용이 심하다. 영국이 그랬다. 런던 금융가(시티)와 다른 지역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이런 격차가 '브렉시트'의 한 원인이었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금융의 힘이 떨어져도 실물 부문이 건강하면 희망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독일을 제외한 유럽 국가에서 실물 부문, 즉 기업의 경쟁력은 퇴조하는 추세다. 그래서 전망이 더 어둡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이 문제를 짚었다.

기업 가치 순위 상위 50위 안에 든 기업 가운데 미국 기업이 31곳, 중국 기업이 8곳, 유럽 기업은 7곳이라는 게다. 유럽 500대 기업의 시가 총액은 미국 500대 기업의 절반 수준이다. 해당 산업 분야에서 유럽 기업이 1위를 기록한 사례 역시 드물다. 스위스에 본사를 둔 네슬레가 식품 분야에서 1위를 기록했을 뿐이다. 그밖에는 1위 사례를 찾기 힘들다.

유럽 기업은 과거 높은 기술력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옛말이 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럽 국가들은 연구개발 투자를 줄였다. 기술 강국으로 꼽히던 스웨덴마저 2008년 이전에 비해 연구개발 투자가 줄었다. 반면, 중국은 2008년 당시의 두 배가 넘는 연구개발 투자를 한다. 이는 유럽 기업의 경쟁력 약화가 더 이어지리라는 전망으로 연결된다. 아울러 과거 유럽 기업의 자리를 중국 기업이 차지하게 되리라는 예상과도 통한다.

유럽 기업은 왜 투자 매력을 잃었나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기업의 문제를 크게 네 가지로 꼽았다. 첫 번째는 첨단기술 산업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구글, 페이스북 등 신흥 기술기업이 계속 등장하는 미국과 대조를 이룬다. 아울러 기술 투자를 대폭 늘리며 미국을 추격하는 중국과도 비교가 된다. 두 번째는 브라질 등 신흥 시장의 침체다. 유럽 기업은 이들 신흥 시장에 투자한 비율이 미국 기업보다 높은 편이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신흥 시장이 침체하면서 유럽 기업도 어려워졌다. 세 번째는 인수합병이 드물어졌다는 점이다. 유럽의 대기업은 1980년대 활발하게 진행된 민영화 흐름을 타고 생긴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인수합병이 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흐름이 꺾였다. 네 번째는 유럽 기업 경영진이 미국 기업에 비해 주주 가치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시가 총액이 낮은 건 이와 관련이 있다.

이런 설명은 <이코노미스트>의 평소 논조를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시장주의 성향이 강한 매체다.


예컨대 <이코노미스트>가 문제라고 꼽은 지점들, 즉 인수합병의 부진 및 주주 가치 소홀 등에 대해선 다른 시각이 있다. 주주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이들은 경영진이 주주 가치에만 너무 관심을 두는 게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당장의 수익 확대에만 골몰하느라 장기적인 경쟁력은 떨어진다는 게다. 또 무리한 인수합병 역시 부작용이 심하다.


그럼에도 <이코노미스트> 기사는 의미가 있다. 유럽 기업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각이 잘 녹아 있다. 투자자의 철학, 주주자본주의의 관점에선 유럽 기업이 못마땅한 길을 걸어왔다. 이런 불만을 잘 정리했다. 투자자들은 활발한 인수합병, 그리고 시장의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이뤄지길 바란다. 하지만 '브렉시트'는 정반대로 향하는 결정이다.


"영국 농부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

투자자의 입장에선 '브렉시트'는 확실히 재앙이다. 투자자들의 불만은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다시 기업 경쟁력 약화와 금융 시장 침체로 연결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주로 읽고, 그들의 목소리를 주로 취재하는 주류 언론이 '브렉시트'를 저주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하지만 경제의 주체는 투자자만이 아니다. 주주자본주의의 관점으로만 경제를 이해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주식이나 채권이 전혀 없는 보통 사람들도 경제 활동을 한다. 그들에게 '브렉시트'는 어떤 의미일까. 아직 답을 찾기는 무리다. 금융의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주식이 없는 이들도 영향을 받는다.


최근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영국 밀 산업이 브렉시트 불빛을 즐긴다"라는 기사를 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대폭 떨어지면서, 영국의 밀 수출량이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50% 가까이 늘었다는 내용이다. 이 신문은 "영국 농부들의 입이 귀에 걸렸다"라고 표현했다.

'브렉시트'가 경제 주체 모두에게 재앙은 아니었다. 적어도 농부들은 혜택을 봤다. 밀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보유한 자산이 전체 영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 하지만 이들 농부들이 영국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보다 높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영국 주류 언론의 보도와 다른 결과가 나온 한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브렉시트' 투표 결과에 반발한 영국인들의 시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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