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대신 녹음을 하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절대 사표 내지 마라! 대신 녹음을 하라!

[양지훈의 법과 밥] 권고사직에 대처하는 법 ⑤

구조 조정, 권고사직의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권고사직 권유 행위 자체가 이미 회사의 집단 '괴롭힘' 행위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회사는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대상자를 '자발적으로 퇴사시키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2년 전 대규모 권고사직을 통해 '명예퇴직'을 단행한 대기업 노동자의 생생한 육성이다.

"명퇴를 권유할 때 OO(회사 이름)의 모습은 살아있는 지옥의 모습(입니다). 이번에 2주 정도 (사직 면담을) 했거든요. 매일 1시간에서 2시간씩 면담을 합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면담자는 계속 바뀌지요. 지사장, 팀장, 지부장…. 노사협력팀에서도 나오고. 로테이션으로 계속합니다. 나는 안 바뀌는데 상대는 계속 바뀌어요. 그걸 2주를 합니다. 그들은 특별하게 트레이닝 받은 사람이에요. 심리적으로 법적으로나."

어느 누가 이 면담 지옥을 견딜 수 있을까? 용케 그 압박을 견디고 사직 권유를 거부했다고 하더라도 그 뒤를 잇는 것은 조직적인 괴롭힘이다. 사실 괴롭힘에 앞서, 대상자로 선정된 순간 자신을 온전하게 지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회사가 제시하는 일부 보상금을 받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직 가능한 나잇대의 능력 있는 노동자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다.

사직서 제출 후 철회가 가능한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 저 압박감을 순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하자. 그 뒤에 바로 후회가 밀려와 사직서 제출을 철회할 수 있을까?

사용자가 사직(퇴직)을 권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망 내지 강박 행위로 노동자가 '사직의 의사 없이' 사직서를 제출한 경우에는 실질적인 해고에 해당할 수 있다. 사직서 제출 철회를 논하기에 앞서, 이 경우는 해고가 정당한 것인지 다툴 수 있게 된다(근로기준법 제23조). 다만 실무에서는 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한 경위를 자신이 입증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사용자는 매우 교묘하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기망이나 강박 행위를 노동자가 입증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노동자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은 일방적인 의사 표시로서 사용자의 승낙을 요구하지도 않으므로, 근로자의 사직 의사 표시가 사용자에게 도달하면 그 철회가 불가능한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 사용자의 집요한 사직 권유에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해당 노동자는 이를 해고에 준하여 다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원칙에 대한 예외는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사직서를 제출한 후 사용자가 선별적으로 사직서 수리하는 행위다. 이런 행위를 놓고는 사직서 제출 행위가 사직의 의사 표시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판례가 존재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노동자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순간, 이를 소송으로 다퉈서 승소하기는 매우 어렵다. 어쨌든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노동자가 회사에서 권고사직 대상으로 선정된 경우에는 조용히 짐 싸 들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잃을 게 없는 노동자라면, 부양해야 할 가족을 생각해 좀 더 긴 싸움(소송)을 준비해보자.

권고사직 거부 후, 회사의 괴롭힘을 지속해서 당할 때, 괴롭힘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조용히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아래는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 '보론'을 참고, 인용했다).

몇 가지 증거 수집 사례

먼저, 피해자는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낱낱이 기록해야 한다. 가해 행위는 일자, 시간, 날씨, 가해자가 입었던 옷 등 당시의 일을 모두 기록할 수 있어야 하고, 가해자가 모욕적인 언사를 했을 경우, 구체적으로 그 말을 기록해둘 필요도 있다.

추후 법정에서 제3자의 증언이 필요할 때, 증인에게 단순히 '가해자가 모욕적인 말을 피해자에게 했습니까'라고 묻기보다, '그날 피해자에게 밥값도 못 하면서 밥 먹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나요'라고 물을 경우에 유리한 증언을 끌어낼 수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모욕적 언사나 폭언을 기록하기에 앞서 그 말을 적극적으로 녹음할 필요도 있다. 피해자의 기록은 때에 따라 소송에서 증명력(쉽게 말해, 어떤 사실을 입증하는 정도나 쓰임새)이 낮을 수 있다. 기록 자체는 엄연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롭힘 현장을 고스란히 담은 녹음 파일은, 그 전후 맥락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기록보다 높은 증명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일반인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몰래' 녹음하는 것을 모두 위법하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현행 통신 비밀 보호법은 대화자(가해자-피해자) 사이의 녹음은 허용하지만, 제3자의 내용을 몰래 녹음하는 경우에는 처벌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언을 녹음하는 것은 통신 비밀 보호법상 위법 행위가 아니다. 이러한 녹음 행위와 함께, 피해자는 가해 행위의 입증을 위하여 회사 내 문서, 이메일, 문자 메시지, 사진 등 객관적 증거를 치밀하게 확보해야 한다.

이상과 같은 증거 수집을 통해, 피해자가 회사와 가해자를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을 불법 행위로 하는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노동자에게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피해자인 노동자가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이 얼마나 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실무에 축적된 사례가 많지 않다). 또한, 회사에 적을 두고 있든 그렇지 않든 소송을 진행하면서 노동자가 받을 정신적 고통은 매우 클 수밖에 없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 특별법'을 위하여

조직 내에서의 괴롭힘 행위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고, 구조적으로 이를 예방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국회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보다 상세하게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 이미 프랑스는 2002년 노동법과 형법에서 '정신적 괴롭힘'을 규율하고 처벌하고 있으며, 캐나다 일부 주에서도 2004년 노동기준법을 개정하여 관련 규정을 정비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 자체로 직장 내 괴롭힘의 주요한 유형인 '성희롱'에 대한 개념은, 우리 사회에서 1990년대에 들어서야 공론화되었고, 현재 '남녀 고용 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법률 안에 성희롱 금지를 담은 조문들을 갖고 있다.

"제12조(직장 내 성희롱의 금지) 사업주, 상급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 내 성희롱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우리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연 1회 비디오 예방 교육을 수강하거나 전문 강사의 교육을 받는 것은 바로 위 법률에 따른 것이다.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도 이를 막는 구체적인 사례를 방지하는 조항을 만들고 이를 처벌하는 내용을 법률로 만들 수 있다면, 미흡하지만 성희롱을 방지하는 남녀 공용 평등법만큼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직장 내 괴롭힘 방지 특별법'의 제정과 시행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어떤 직장 내 괴롭힘이 문제 되고 있고 그 정확한 정의를 어떻게 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모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더 활발하게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후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문제 해결에 한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

언젠가부터 회사는 우리에게 조직을 유사 가족으로 받아들이라고 설득해 왔다. 힘없는 종속 노동자인 우리는 신입사원 당시부터 회사가 주입하는 모든 이데올로기를 철저하게 내면화하고(속으론 비웃을지라도), 가족을 버리고 조직에 충성해왔다. 충성의 기간이 늘어나도 보장받는 미래는 불확실했으며, 우리는 경쟁적으로 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상을 보냈음에도, 전장에서 장렬히 패배한 기업들은 장수와 병들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있다(조선, 해운업 노동자들을 보라). 2016년 자본주의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이 냉혹한 현실을 아프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다만, 조직이 우리에게 달콤하게 주입했던 '가족처럼 일하자'는 설득은 이제 명백한 거짓말임을 확인하자. 우리가 사용자와 체결한 근로관계는 본질에서 '계약'임을 인식하고, 계약에 따른 책임을 상호 간에 요구하자.

우리들의 그 뒤늦은 확인들이, 앞으로 더 많이 패배할 회사들에서 일방적으로 희생당하고 인간적으로 배신당하는 것을 아주 조금이라도 막아 줄 수 있지 않을까. 망해갈 회사들은 권고사직의 꼼수를 부려 노동자들을 인격적으로 파괴하지 말고,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정리해고를 진행하면 될 일이다. 우리는 원래부터 같은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양지훈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