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인간 : 새로운 작은 사람의 등장
한국에서, 고통 없는 회사 생활이 가능할까? 회사 생활의 고통은 매우 불평등한 것이어서, 정확히 직급에 따라 분담되고 정해진다. 사원과 부장이 조직을 경험하고 느끼는 방식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일반적인 회사 조직은, 오직 부장 이상의 직급에게 최적화되어 있고 그 이하 직급에게는 고통을 강요하고 있다.
부장은 회사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맞춤 정장과 같다. 그들이 하는 일은, 낮엔 빨간 펜을 들고 부하들이 들고 오는 기안문을 수정해 주고, 밤엔 그들을 데리고 술집에 가는 것뿐이다. 불가능한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한 부하를 상대로, 조직에서 키운다는 명목으로 폭언과 강제 음주가 횡행하지만 이는 '갈굼의 리더십'으로 정당화된다.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있겠는가. 승진 탈락과 몇 년 전에 선 '줄'의 안위만이 걱정될 뿐이다.
간신히 버티고 있는 사원, 대리, 과장이야 말로 회사 조직의 '밑바닥 인생'이다. 그들에게 근로기준법이 중요한가? 천만의 말씀. 밑바닥 인생에게 대통령이 바뀌는 정권 교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이듬해 상사의 인사 이동 결과다. 지켜지지도 않을 대선 공약보다 나의 일상을 180도 변화시킬 상사의 캐릭터 종류가 백 배는 더 중요하다. 찰스 라이트 밀스가 말한 '새로운 작은 사람(new little man)'을 거부할 길이 있을까? 어느 조직에서건 3년만 밑바닥에서 구르면 순한 양이 되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에 만나는 여의도, 종로, 강남 길거리의 회사원들 얼굴은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점심시간이니까!). 그러나 사무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일상이 긴장으로 가득 차 있고 시시때때로 폭력이 난무하는 장면이 작업장의 진실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김 검사와 대기업 임원의 모멸감
지난 글에서 소개한, 자살한 김 아무개 검사는, 상사인 부장검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고충을 주변에 지속적으로 호소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 검사는 "부장검사에게 매일 욕을 먹으니 한 번씩 자살 충동이 든다. 술자리에서 내내 닦였다"거나 "(부장검사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웃으면서 버텼는데 (내가) 당당하다고 심하게 욕설을 했다. 너무 힘들고 죽고 싶다"고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펑펑 울다가도 "괜찮다. 이겨내겠다"고 말하고 나서, 며칠 후 비극적으로 자살했다.
그의 영혼에 평화가 깃들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한다. 그가 받았을 모멸감은 무엇이었을까? 그 질감을 가늠할 수 없지만, 나 역시 5년의 회사 생활 동안 비슷한 감정을 여러 차례 느꼈다. 회사와 회사를 몸으로 구현한 상사는 부하 직원에게 한없이 냉혹할 수 있다. 부하 직원의 직급이 낮을 필요도 없다. 경우에 따라 임원조차 조직으로부터 가혹한 괴롭힘을 당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더없이 '잘나가는' 듯 보였지만, 실제 그의 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끝없는 실적 압박과 회사 내 파벌 싸움에서 오는 시기, 질투에 괴로워했지만 그에게 손을 내미는 이는 없었다. 부인과 두 자녀를 둔 가장이자 회사 내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한, 성공했던 46살 가장은 결국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원은 그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 합병된 3사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은 파워콤 출신인 그는 입지가 좁았고, '회사 내 주류'인 텔레콤 출신이 직속 상사인 본부장으로 부임하면서 그런 현상은 더 강화됐다. 새 본부장은 이 씨를 배제한 채 부하 팀장들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하기도 했다. 견제에는 시기와 질투도 따랐다. (…) 눈에 띄게 말수가 줄어든 그는 팀장들에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묻고 '그동안 회사와 집만 다니고 취미나 다른 일이 20년간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평소와 달리 아내에게 '힘들다. 안아 달라'고도 했던 그는 2012년 8월 10일 처남에게 "우리 아이들과 처를 잘 부탁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뒤 이른 아침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 (☞관련 기사 : 잘나갔던 최연소 임원 비극 부른 '사내 따돌림')
폭언과 따돌림 : 심리적·정신적 괴롭힘
김 검사와 대기업 임원의 자살에는 직속 상사의 폭언과 따돌림이 각각 자살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폭언과 따돌림은, 직장 내 괴롭힘의 대표적인 심리적, 정신적 괴롭힘의 행위 유형이다. 피해자를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사생활을 공격하거나 직장 조직에서 배제하고 추방하기까지 한다.
엄격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지만, 화이트칼라 직군에서 심리적, 정신적 괴롭힘이 주된 유형이라면, 블루칼라 작업장에서는 신체적, 물리적 괴롭힘 사례가 더 많다. 제조업 공장에서 노동자에게 행해진 군대식 노무 관리와 얼차려 폭력은, 1980~90년대 노동조합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매우 일상적인 것이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공개적이거나 은밀하게 진행되는데, 통상적으론 두 유형이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과 사례는, 최근 발간된 <일터 괴롭힘, 사냥감이 된 사람들>(코난북스 펴냄) 제3장을 참고, 인용했다). 처음엔 피해자가 은밀하게 작업장 내에서 동료 집단으로부터 고립되다가(대화나 인사하지 않기, 정보 전하지 않기), 그를 대상으로 언어적 위협 등의 괴롭힘이 진행되고, 결국 공개적으로 망신 주기에 이르기도 한다.
직장 내 괴롭힘의 내용적 분류
직장 내 괴롭힘의 내용에 따른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조직적, 환경적 괴롭힘 ② 업무 관련 괴롭힘 ③ 대인간 괴롭힘이 그것이다.
조직적, 환경적 괴롭힘은 업무 관련 괴롭힘과 관련 있으며, 억압적인 노동 관리, 상사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리더십, 사생활 침해, 권고사직 뒤의 경영 전략으로서 구조적인 괴롭힘 등의 형태로 드러난다.
업무 관련 괴롭힘은 과중한 업무 압력, 매출 압박, 비합리적 데드라인, 과도한 업무 감시, 의견과 견해 무시하기, 반대로 의미 없는 과제를 부여하거나 일을 전혀 주지 않기, 본 업무를 박탈하고 주변적인 업무를 지시하기 등이 대표적인 유형이다. 마지막으로 대인간 괴롭힘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리더십의 폭군형 상사와 결합되어 모욕적인 언사로 연결된 경우를 들 수 있다.
어떤가? 평소에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상사와 동료의 행위가 '괴롭힘'으로 분류될 수 있지 않은가? 회사에서의 비인간적 행위를 재확인하고 그것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시작이다. 그럼에도 피해자 개인의 대응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가?
괴롭힘을 당할 때, 구경꾼을 조직하고 광장으로 나가자
회사는 지극히 폐쇄적인 곳이고 동시에 안정 지향적인 곳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회사의 공식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따라 해소되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인사 부서에 진정을 하거나, 상사의 상사에게 괴로움을 호소하더라도 피해자가 구제받기는 매우 어렵다. 구조적인 문제는 언제나 개인적 갈등으로 치환되고, 이는 폐쇄적인 회사 조직-특히 인사 부서-의 기본 전략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사소한 듯 보이는 개인적 문제를 공동체의 문제로, 사회적 문제로 확전시켜야 한다. 정치의 영역에서 학자들이 약자들로 하여금 갈등의 구경꾼인 참여자들을 조직하라는 조언은, 회사 안에서도 유효하다. 회사야 말로 가장 정치적인 곳 아니던가. 내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징후가 조금이라도 보일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회사 상사들이 마련한 사내 상담-정신건강센터가 아니라, '우리 편'이 많이 모인 곳이다. (다음 편에서는 권고사직에 대처하는 노동자의 구체적인 대응 방법을 얘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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