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세계 최고(最古) 은행, 부도 위기…새로운 폭풍?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세계 최고(最古) 은행, 부도 위기…새로운 폭풍?

[브렉시트 이후 ②] '이탈리아도 유로존 탈퇴'?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후폭풍이 가시화됐다. 약한 고리부터 흔들린다. 이탈리아 은행권이 대표적이다. 이들 금융기관의 건전성에 대해 내심 불안해하던 주주들이 '브렉시트'를 계기로 주식을 팔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BMPS)가 부도 위기를 맞았다. 1472년에 설립된 이탈리아 은행인데, 당시 한국은 조선 성종 시기였다.

아울러 이탈리아의 다른 은행들 역시 위기 상황이다. 포르투갈, 아일랜드 등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 재정 부실 탓에 은행 자본 확충에 소극적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럽연합(EU) 경제를 이끄는 독일에게 기대기도 어렵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도 위태위태하다. 이탈리아에서 불거진 위기가 유럽 전체, 그리고 세계로 번질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면 한국도 영향을 받는다.

이탈리아 금융의 특징소규모 은행이 많고, 개인의 채권 투자 비율 높아


이탈리아 은행의 위기가 꼭 '브렉시트' 때문인가? 그건 아니다. 원래 취약했는데, '브렉시트'가 도화선이 됐다는 표현이 맞다.

여기엔 이탈리아 금융의 특징도 한몫했다.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탈리아엔 오래된 소규모 은행이 많다. 지역 공동체에 뿌리를 둔 은행이라서, 인수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가 어려웠다. 이런 특징은 양면성이 있다. 좋게 보면, 풀뿌리 금융이다. 무리한 규모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점은 금융에 대한 감시와 통제가 엄격하게 작동할 때만 제대로 발휘된다. 이탈리아 금융은 이 대목에서 문제가 있었다.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부실이 쌓인 은행이 많다. 이들 은행들은 지역 유지들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중앙 정부도 칼을 대기가 어렵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에도 은행 자본 확충에 소극적이었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 재정 부실과도 관계가 있다. 그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탈리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개인이 채권에 투자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다. 다른 나라에선 채권 투자가 기관의 몫이다. 채권에 직접 투자하는 개인은, 대개 부자들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에선 저소득층도 채권에 투자한다. 그리고 이 채권 투자에서 문제가 생겼다. 기관, 또는 부자들만 투자한다면, 그들에게 책임을 묻기가 쉽다. 하지만 개인 투자 비율이 높은 이탈리아에선 그게 어렵다.

'이탈리안 잡'

▲ <이코노미스트> 유럽판 최신호 표지. ⓒ이코노미스트
영국 <이코노미스트> 최근호가 이 문제를 자세히 다뤘다. 영화 제목이기도 한 "이탈리안 잡(The Italian Job)"을 유럽판 표지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이탈리안 잡(The Italian Job)>은 금고털이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이탈리아 정부가 풀어야 할 문제가 그만큼 까다롭다는 뜻이다.

이탈리아는 경제 규모가 유로존(유로를 국가통화로 쓰는 지역) 3위 수준이다. 그런데 은행 대출 가운데 부실대출 비율은 18%다. 이는 유럽연합(EU) 은행 평균인 5.6%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은행의 5%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이탈리아 은행의 부실대출 액수는 모두 3600억 유로인데, 이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보다 4배, 2011년보다 2배 늘어난 수준이다. 국내총생산(GDP)의 17%에 이른다. 부실대출 규모가 커도, 은행의 충당금이 넉넉하다면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탈리아 은행의 충당금 규모는 적정 수준의 절반 이하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 탓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금융위기 이후 은행 자본 확충에 나섰다. 하지만 재정 부실이 심했던 이탈리아는 이에 소극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이 무너진다

'브렉시트'를 계기로 세계 금융 질서가 흔들리면서, 이 문제가 불거졌다. 세계 최고(最古) 은행인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가 특히 위험하다. 이 은행은 이탈리아 3위 규모인데, 최근 주가가 반 토막 났다. '브렉시트' 발표 직후, 투자자들이 대거 주식을 팔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288bp였던 CDS 프리미엄은 지난 6월 '브렉시트' 이후 650bp까지 치솟았다. CDS 프리미엄은 채권에 대한 부도보험료인데, 부도 위험에 대한 지표로도 쓰인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선 은행 채권 투자자 가운데 개인 비중이 45%에 이른다. 저소득층까지 채권 투자를 하는 나라는 이탈리아뿐이다. 예컨대 독일, 프랑스 등은 가계소득 2분위 계층이 채권 투자를 하는 비율이 0.0%로 조사됐다. 반면 이탈리아에선 그 비율이 2.2%다. 정부가 부실 채권을 털어내기 힘든 건 그래서다. 채권에 투자한 저소득층은 극빈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

EU, 납세자보다 채권자가 먼저 책임 져야"'불완전 판매'는 어쩌고"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은행에 4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투입하기로 하고, EU의 승인을 요구했다. 문제는 EU규정인데, 정부가 구제금융을 하기 전에 기업부실에 따른 비용을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먼저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이른바 '베일인'(Bail-in) 제도다. 그렇다면 채권 가운데 일부를 상각해야 한다. 돈을 떼였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요컨대 돈을 빌려준 측, 즉 채권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야만 정부가 재정을 투입할 수 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런 절차를 밟을 수 있을까. 그게 어렵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안 잡'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소득층까지 포함된 다수 개인 투자자에게 정부가 부담을 넘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니까. 게다가 이탈리아는 오는 10월 개헌 국민 투표를 앞두고 있다. EU가 정한 '베일인' 제도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거센 정치적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

또 이탈리아 안에선 '불완전 판매' 논란도 불거진 상태다. 개인에게 채권 투자를 권유한 은행 측이 '위험'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 한국에서도 종종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투자자들이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탈리아도 비슷한 일을, 더 큰 규모로 겪게 될 게다.

<이코노미스트> "그럼에도, 이탈리아 총리는 옳다"

12일, EU 재무장관 회의가 열린다. 이탈리아 은행권 공적자금 투입 여부가 논의될 예정이다. '반대'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 정부는 난처해진다.

<이코노미스트>는 이탈리아 정부와 EU 양쪽에 이렇게 제안했다. 우선 이탈리아 정부는 소규모 부실 은행의 통합을 서둘러야 한다. 좋게 보면 '풀뿌리 금융', 나쁘게 보면 '정실 자본주의'였던 구조를 바꾸라는 게다. 이 매체의 논조에 어울리는 제안이다. 또 EU에 대해서는 '베일인' 제도를 고치도록 제안했다. 개인투자자들이 추가 손실을 입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게다. 시장주의 성향이 강한 <이코노미스트>로서는 이례적인 제안이다. 이탈리아 은행 부실을 그만큼 심각하게 본다는 뜻일 수 있다. 이 매체는 "그럼에도, 이탈리아 총리는 옳다(Nonetheless, the Italian prime minister is right)"라고 했다. '베일인'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더 큰 부작용이 생긴다는 게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 거론되는 공적자금 규모로는 이탈리아 은행 부실을 해결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보다 적극적인 공적자금 조성을 주문한 셈이다.

도이체방크도 위기

이탈리아 정부가 풀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독일과의 관계다. 독일은 전통적으로 재정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었다. EU가 정한 '베일인' 제도 역시 EU를 이끄는 독일의 이런 태도와 관계가 있다. 독일의 전통적인 입장에선 채권자에게 충분한 책임을 묻기도 전에 정부 재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탈리아 정부가 요청한 구제금융 안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독일 역시 상황이 어려워졌다. 따라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가 위태롭다. 한때 세계 3대 은행으로 꼽혔던 도이체방크는 최근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세계 5위 규모로 추락했고, 올해 들어서는 시가총액이 반 토막 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주 발표한 독일 금융부문 안전성에 대한 연례보고서에서 도이체방크가 세계 금융시스템에 충격을 안겨줄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금융기관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역시 지난달 29일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도이체방크와 스페인 산탄데르의 미국 지점에 대해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스트레스 테스트란 시장에 대형 충격이 가해질 경우 대형은행의 대응 능력을 평가하는 것이다. 요컨대 도이체방크는 충격에 매우 취약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세계 금융에 미칠 부작용 역시 크다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새로운 충격 오나

그리고 지금, '브렉시트' 충격에 이어 이탈리아 은행 부도 위험이 불거졌다. 독일로서도 손 놓고 있기 어려운 상황이다. '베일인' 제도를 고치라는 <이코노미스트>의 제안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EU의 반대로 이탈리아 정부가 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나. 마테오 렌치 현 이탈리아 총리가 물러나고, 이탈리아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통합과 관련한 국민투표 결과 때문에 물러나는 총리가 또 생기는 것이다.

렌치 총리는 오는 10월 헌법 개정안 국민투표에서 자신의 총리 직을 건 상태다. 유로존 탈퇴 여부를 정하는 투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반(反)유로 정당인 '오성운동'이 렌치 총리가 이끄는 민주당을 제치고 정당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EU의 반대로 공적자금 투입이 가로막혀서, 세계 최고(最古) 은행인 '방카 몬테 데이 파스키 디 시에나'가 간판을 내리게 되면, '오성운동'에 대한 지지 여론은 더 높아질 수 있다.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라는 새로운 충격이 닥칠 수 있다는 말이다. 부실이 심한 금융기관부터 경고음을 내면서 연쇄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전 세계 중앙은행의 협력이 지금 거론되는 거의 유일한 해법인데, 각국 내부 정치 상황 역시 급변하고 있어서 미래를 내다보기 어렵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