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 지원을 논의한 '청와대 서별관 회의' 문건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지난 4일 공개한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지원 방안' 문건이다. 지난해 10월 22일 열린 '청와대 서별관 회의' 내용을 금융위원회가 정리했다. 해당 문건에는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최경환 경제부총리,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대우조선해양의 분식 회계 의혹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금 지원을 하기로 한 정황이 담겨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5일 "출처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논의 안건인지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정부가 갖고 있는 회의 자료를 공개하면 될 것 아닌가. 대조를 해보면, 해당 문건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할 수 있다. 아울러 부실기업 지원에 대한 책임도 규명할 수 있다.
"무역 규범 위반 들킬까봐 자료 비공개? 장관 지시라면 헌법상 탄핵 대상"
그런데 정부는 '청와대 서별관 회의'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다. "WTO(세계무역기구), FTA 등 무역 규범 상충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통상 문제까지 야기"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과연 그런가.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가 반박하고 나섰다. 송 변호사는 이 같은 정부의 입장에 대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 수석의 KBS 보도 통제 압력보다 더 심각한 언론 통제"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입장은 사실상 '한국 정부 관료들이 WTO 등의 규범을 어겼을 가능성이 드러날 수 있으니, 관련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법치주의 관료가 할 수 없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만일 그러한 조치가 장관이 지시한 것이라면 헌법상 탄핵 대상"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5월 열린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조선작업반 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구조 조정이 공적 지원이라는 주장에 대해 논의를 했다고 밝혔다. 또 정부는 지난달 21일 무라야마 시게루 일본 조선공업회 회장이 "대우조선해양 지원이 공정한 경쟁 조건을 왜곡하고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발언한 사실을 공개했다. 외국이 이런 근거로 대우조선해양 구조 조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게다.
송 변호사는 이에 대해 "지금의 정부 행태는 'WTO 규범 위반인데 들키지 않으면 된다'는 근시안적 접근"이라고 밝혔다. 이어진 그의 설명은 이렇다.
만약 WTO 규범을 어기지 않았다면, 그 근거를 유럽연합(EU)과 일본 등에 제시해서 설득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정당한 조치를 했다고 말이다. 만약 정부가 보기에도 WTO 규범을 위반한 셈이라면, 그래도 그렇게 해야만 했던 이유를 국회와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예 자료를 감춰버렸다.
결국 송 변호사는 지난 4일 금융위원회에 관련 자료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2005년 제소 사건 근거로 WTO 위반 판단해야
한 가지 궁금증. 한국 정부는 WTO 등 무역 규범을 어긴 걸까. 송 변호사가 보기엔 어떨까. 정부의 조선 산업 구조 조정은 지난 2005년 WTO에 제소당했었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관련 경험이 있다는 게 송 변호사의 설명이다. 당시 논의된 대책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된다는 것.
지난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금융 지원 대책에는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무역보험공사, 그리고 시중은행 등이 무조건 선수금 환급 보증(RG, Refund Guarantee)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RG는 취소가 불가능하며, 선박 주문자를 위해 무조건적인 반환 보증을 해주는 것이다.
지난 2005년 사건에서 WTO는 "신용 위험도에 따라 결정되지 않은 특정 경우는 WTO 금지 보조금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무조건 반환 보증을 해주는 경우는 WTO가 금지한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송 변호사는 "RG 액수의 규모와 보증 수수료 수준에 따라 WTO 위반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RG 지원이 정부의 지시에 따른 것인지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가 지시한 것이라면 WTO 위반 요건이라는 게 송 변호사의 설명이다.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정부의 태도는 "무역 규범을 어겨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라는 식이다. 이에 대해 송 변호사는 "WTO 보조금 사건은 최종 판정까지 5년이 넘게 걸리니 지금 내 임기 중에는 괜찮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송 변호사는 "대우조선해양 지원의 WTO 규범 위반 문제를 정면 승부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이 규범을 위반해야 했다면, 그 이유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규범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외국을 상대로 떳떳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게 법치주의 행정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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