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하루키처럼 여행하기, 싫으면 말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하루키처럼 여행하기, 싫으면 말고!

[프레시안 books] <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드디어 7월이다. 로망의 계절이다. 연애 호르몬이 불타오르는 봄과 가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도시의 현실을 견뎌내는 사람들에겐 7월이야말로 로망의 계절이다. 휴가철이기 때문이다. '일하다 죽어라'고 온 사물이 고함치는 것과 같은 이 사회도 7월과 8월 한여름에는 일상의 쳇바퀴를 잠시 벗어나길 권유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방콕' 족이 많아졌다고 하지만, 휴가의 백미는 역시 여행이다. 내 생활의 모든 리듬을 통째로 비틀어버리는 파괴적 휴식은 여행밖에 없다. 시간대가 바뀌고, 말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그에 따라 생각도 달라진다. 여행만이 주는 여흥이다.

여행의 계절을 맞아 두 권의 여행 책을 소개한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김춘미 옮김, 문학판 펴냄)와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다.

초롱초롱 눈을 뜬 관람기

<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는 20세기 중반 일본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가 쓴 네 권의 기행문집 중 마지막 편 <북에서 유럽으로>를 번역한 작품이다. 이노우에 야스시는 당대 일본 문단을 대표하는 여행광이었는데, 그 경험담이 책에 자연스레 녹았다.

책에 담긴 여정의 중심은 1960년 로마 올림픽이다. 당시 이노우에는 <마이니치신문>의 로마 올림픽 특파원 자격으로 유럽을 방문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그는 내친 김에 유럽 곳곳을 돌았다. 이때 그가 방문한 이탈리아, 북유럽(스웨덴, 핀란드),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가 이 책의 중심 무대다. 1964년의 미국, 1968년의 시베리아가 나머지 시점이다.

자연스레 시대상이 책에 투영된다. 이노우에는 북유럽의 복지 국가에서 권태와 늙음을 살펴본다. 그리고 복지 제도가 미비하지만, 활기찬 나라 일본의 현실을 떠올린다. 당시 일본은 마치 1980년대의 한국처럼 힘차게 고속 성장하던 젊은 나라였다. 단카이 세대(전후 등장한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가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도 않았던 때니, 나라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 밝았다. 21세기 들어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당시 이노우에의 시각은 무척 신선하게 여겨진다.

저자가 미국의 높은 대학 진학률에 감탄하는 모습(지금 한국, 일본과 미국의 대학 진학률은 당시와 다르다), 분단기 베를린을 왕복하는 모습, 로마 올림픽에 남자 100미터 달리기에서 누가 '마의 10초 벽'을 깰 것이냐에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옛 여행 기록의 신선함이다.

'예술에 바치는 이노우에의 헌사'라는 제목으로 바꿔도 무리 없을 듯하다. 그는 방문한 곳마다 미술관을 꼭 방문하고, 그곳에서 감상한 다빈치, 보티첼리의 작품을 평한다. 도시 광장에서 본 이름 없는 돌조각에서 사유를 끄집어내고, 젊은이들의 표정이나 도시 특유의 날씨에서도 일본과 다른 삶의 방식을 상상한다. 유럽 여행 중 박물관이나 고성 관람에 큰 매력을 느껴보지 못한 이라면, 이노우에의 설명을 듣고 생각을 바꾸게 될 부분이 많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광경을 독자에게 안내하기 위해 그는 바지런히 움직인다. 책의 홍보용 띠지에는 '어느 순간 느림 속을 방황하는 자유인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고 적혔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이노우에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목표를 정하고, 하루 종일 온 몸이 노곤해질 정도로 돌아다닌다.

그가 대부분 거치는 곳은 'OO에 간다면 꼭 방문해야 할 곳' 리스트로 정리해도 될 정도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이계를 탐구하기 위해, 이노우에는 때로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때로는 현지를 잘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당시 일본은 이미 국제 사회의 일원이었다) 새로운 세상을 학습한다.

마치 외국 여행 자유화 초창기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1990년대 이르러 세계와 마주한 한국의 여행객처럼, 저자는 조금 들뜨고 (지금의 시각으로) 조금은 촌스러운 마음가짐을 여과 없이 글에 담았다. 이런 순박함이 시대상과 어우러져 묘한 향수를 자아내고, 친숙함을 일으킨다.

미국에서 맛본 로브스터를 독자에게 설명하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다. 당시 일본인에게 바닷가재 요리란 무척 생소했으리라 여겨지는 대목이다.

"그다음에 록 로브스터(일본 대하보다 조금 더 크다) 삶은 것이 세 마리, 껍데기째 삶은 게가 반 다스 정도, 그리고 소량의 감자 튀김을 담은 큰 접시가 각자에게 주어졌다. (…) 안내인인 에나리 씨 부부는 냅킨을 목에 두르고 새우와의 격투를 시작했다. 나는 새우 껍질을 벗기기 위해 일어나야만 했다. 그렇게 힘이 들었다. 포크인지 손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다. 손으로 꼭 잡고 포크를 안에 쑤셔 박아 알맹이를 꺼낸다. 고생해서 꺼낸 알맹이 맛은 남부의 거목 이상으로 맛대가리가 없었다. 손을 쉬고 주위를 돌아보니 여자도 남자도 모두 게나 새우와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본 여성에게는 이 식사법은 무리이다. 나는 일본의 대하와 생새우를 껍질째 구운 요리를 떠올렸다. 똑같은 새우이지만 엄청나게 다르다."

무엇보다 이 책의 백미는 시베리아 여행기다. 분단의 특성상, 지금도 시베리아는 한국인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여행지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일찌감치 시베리아를 가깝게 경험했다. 책에서는 그곳의 쓸쓸함이 매우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이런 정취가 기묘하게 낭만적인 아련함을 자아낸다. 우리와 달리, 냉전 시대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소련을 방문할 수 있었던 당시 일본인의 시각을 통해, 정작 지금도 우리는 동구권 국가를 편견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냐고 반문하게 된다.

"호텔 식당은 밤 9시가 되면 외부 손님한테도 개방된다. 9시 가까이 되면 식당 입구에 젊은 남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9시 이후 식당은 번잡해진다. 맥주를 마시며 도시의 젊은이들은 명랑하게 까불기 시작한다. 춤은 거의가 트위스트이다. 이런 것은 듣던 것하고 달리 무척 자유스러운 느낌이다. 자유가 지나쳐 방종이라는 면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처음에 소련이라고 했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좀처럼 소련이라고 하지 않고 러시아라든가 러시아인이라고 한다."

이노우에는 이처럼 세밀한 관찰의 결과를 매일 저녁마다 노트했다. 따라서 이 책은 당시로서는 문학적 감탄이 어우러진, 대문호의 성실한 여행 가이드 북으로서 받아들여졌으리라 생각된다. 책에 무수히 수록된 저 많은 유적지의 풍경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어서 가방을 싸고 비행기표를 끊으라며 이노우에는 독자를 재촉한다.

▲ <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이노우에 야스시 지음, 김춘미 옮김, 문학판 펴냄),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문학동네 펴냄). ⓒ프레시안

하루키 씨의 일상으로의 초대

<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가 여행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독자의 등을 떠미는 선생님의 가르침이라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여행객 무라카미가 독자를 자신의 일상으로 초대하는 책이다.

"여름에는 가로수가 산책길에 짙고 시원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보스턴의 여름은 누가 뭐라 하든 멋진 계절이다. 하버드와 BU(보스턴 대학)의 학생들이 레가타 연습에 여념이 없다. 여자들은 잔디 위에 타월을 깔고 iPod을 들으며 무척 과감한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긴다. 밴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이동식 가게도 있다. 누군가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개는 플라스틱 원반을 쫓아 달린다. 그러나 머지않아 뉴잉글랜드 특유의 짧고 아름다운 가을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던 깊고 압도적인 녹음은 어렴풋한 황금빛에 조금씩 자리를 내어준다."

이 문장은 야스시처럼 세밀한 관찰 하에 나오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그가 정리한 보스턴의 여름은 순간을 기록한 사진이 아니다. 매일 같이 지나가며 본 모든 일상의 응축이며 정수다. 두 작가의 차이는 여행과 타지에서의 삶이 보편화한 현대와 일본이 갓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 시작하던 1960년대의 다름이다.

두 작가의 세계관, 그들이 살았던 시대상이 다르기에, 자연스럽게 책의 흐름도 달라진다. 이노우에가 나를 드러내지 않고 독자에게 가이드로서 역할을 한다면, 무라카미는 '여행지에서의 무라카미다운 무라카미'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재즈 마니아이기에 무라카미의 뉴욕 이야기는 온전히 재즈 이야기다. '재즈의 성지' 빌리지 뱅가드 이야기와 중고 LP 가게 이야기가 전부이지, 고층 빌딩,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이야기는 없다. 지금은 '힙스터의 수도'로 떠오른 포틀랜드에서 무라카미는 그곳 특유의 친환경적 먹거리 문화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사변적 이야기로 독자에게 정리해 준다.

핀란드에서도 카우리스매키(<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등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영화 감독)가 운영하는 술집을 방문하고, 시벨리우스의 생가를 찾아간다. '그리스'하면 떠오르는 지중해의 아름다운 햇빛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라카미가 방문한 그리스의 섬은 추운 겨울 날씨에, 관광객도 찾기 힘든 을씨년스러운 곳이다. 무라카미의 여행기에서 핀란드의 복지 제도가 어떻고, 로마의 콜로세움이 이렇다는 이야기는 찾기 힘들다.

이점이야말로 무라카미가 그토록 세계 독자에게 사랑받은 이유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과거보다 외국이 훨씬 가까운 세상에 산다. 우리는 이미 간접적으로는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조각조각, 대강은 알고 여행 짐을 꾸린다. 이제 우리 여행의 중심은 사람으로 변했다. 새로운 사람과 만나고, 그들과 교류하고, 무엇보다 낯선 곳에서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더는 관찰자에 머무르지 않고, 나의 넓은 세상을 확인하고자 여행을 선택한다. 무라카미가 그의 소설에서 일찌감치 독자를 넓은 대륙과 사변의 영역으로 이끌었다면, 이 책에서 그는 그 넓은 세상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물론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 100% 만족을 줄 수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얘기는 진리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에서 작가의 말을 따르면 더 많은 사유의 거리가 솟아오르듯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최대한의 공부는 충실한 여행을 위해 중요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세상이 (밤과 추위로만 기억되는 아이슬란드처럼) 지루할 수도 있다.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물음이 나올 정도로 별다른 것 없는 라오스에서 스님의 탁발 풍경을 조용히 감상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여정에서도 여행의 의미는 발견된다. 따라서 둘의 책에서 드러난 대조적 태도의 어느 중간에 나의 생각을 고정한다면, 올 여름 떠날 여행은 특별히 더 값지리라 여겨진다. 굳이 두 책을 한꺼번에 소개하는 이유다. 우리가 여행에서 얻어야 할 중요한 의미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질문에 관한 무라카미의 대답에 담겼다. 이 대답에 동한다면, 지금이라도 비행기표를 끊어보는 건 어떨까. 여름은 이제 시작이니 말이다.

"루앙프라방의 사원을 느긋하게 도보로 돌아보며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즉 '평소(일본에 살 때) 우리는 그렇게 주의 깊게 사물을 보지 않는구나'란 사실이다. 우리는 물론 매일같이 여러 가지를 보지만, 그것은 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보는 것이지, 정말로 보고 싶어서는 아닐 때가 많다. 전철이나 차에서 창밖으로 잇따라 흘러가는 경치를 멍하니 눈으로 좇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언가 한 가지를 찬찬히 살펴보기에는 우리 생활이 너무나 바쁘다. 진정한 자신의 눈으로 대상을 본다(관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차츰 잊어가고 있다.

그런데 루앙프라방에서는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자신의 눈으로 진득하게 시간을 들여 바라봐야 한다(시간 하나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갖고 있는 상상력을 부지런히 발동해야 한다. 우리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기준이나 노하우를 적당히 끼워맞춰 기계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대상을 선입견 없이 관찰하고, 자발적으로 상상하고(때로는 망상하고), 앞뒤를 가늠해 큰 그림을 그리고, 취사선택해야 한다. 평소에 그리 익숙한 습관이 아니다보니 처음에는 조금 피곤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이 그곳 공기에 익숙해지고, 의식이 시간의 흐름에 순응해감에 따라 그런 행위가 점점 재미있어진다."

▲ 여행의 계절입니다. ⓒpexels.com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이대희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