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중앙위원회가 29일 마련한 혁신 토론회에서, 친박계 정종섭 의원과 정치 평론 및 전문가들이 새누리당의 총선 참패 이유를 두고 맞부딪쳤다.
정 의원은 "정체성이 맞지 않으면 우리 당에 있을 필요가 없다"면서 청와대의 국정 운용 기조에 다른 목소리를 냈던 비박계 인사들을 에둘러 공격했다.
반면, 토론회에 참여한 당 외부의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계파 이익만 고려한 공천 결과로 총선에 참패한 것" 등의 의견을 내며 청와대와 친박계의 자성을 주문했다.
총선이 끝나고 2달 반이나 흘렀지만 여전히 선거 패배 이유를 둘러싼 여권 안팎의 갑론을박, 그중에서도 특히나 친박계의 '책임 회피 및 남 탓' 행태가 계속되는 모습이다.
정종섭 "노선이 다르면 같이 할 수 없다"
정 의원은 이날 "저번 총선을 통해서 우리 당이 안고 있는 그 모든 것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면서 '정체성 위기'를 거론했다.
그는 "정당은 동일한 이념과 가치, 정책 노선을 추구하는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면서 "노선이 다르면 같이 할 수가 없다"고도 했다.
또 "우리가 총선 때 왜 이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이념이 분명했느냐"면서 "우리 당에 맞지 않으면 있을 필요가 없고, 우리 당 이념에 맞는 사람을 더 충원하는 것이 맞다"고도 말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를 주장한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 인사들을 공격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정 의원은 "우리 당에 있는 사람이 정체성이 정반대인 당에 뛰어가는 것 자체가 (새누리당 일각이) 정체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진영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하기도 했다.
진 의원은 지난 4.13 총선 당시 용산 지역에서의 공천을 신청했으나 배제돼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고 당선됐다.
김무성 전 대표의 '상향식 공천'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발언도 나왔다.
정 의원은 "정당 내부에서 미리 (공직자 후보자를) 발굴해 훈련시켜 적재적소에 배치하거나 외부에서 (적임자를) 수혈하는 것이 공천"이라면서 총선을 앞두고 "인적 충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대표적인 친박계 초선 의원이다. 총선 출마 전까지는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냈으며 새누리당 연찬회에 참석해 '총선 승리'를 외쳐 관권 선거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지난 3월 대구 동갑에서 공천을 받고 동시에 이 지역 19대 의원이었던 류성걸 의원이 '친유계'로 분류돼 공천에서 배제되었던 것은, 새누리당을 총선 참패로 몰고 간 '공천 파동' 중의 여러 줄기 중 하나였다.
정 의원 등 대구 지역 이른바 '진박' 예비 후보들의 지난 1월 집단 식사 회동은 '보스 정치이자 패거리 정치의 전형'이라는 조소를 낳기도 했었다. (☞ 관련 기사 : "우리가 진박"…정종섭·윤두현 등 대구 예비후보 6인 회동)
외부 전문가 진단은 판이…"전위대 배치 공천, 계파 공천으로 참패"
정 의원의 이런 발제가 끝난 후 이어진 정치 평론가 및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과 설득은 앞선 것과 판이했다.
정 의원이 '정체성 위기'라고 비난했을 법한 박근혜 정부 국정 기조 비판이 이어졌고, "계파 이익을 앞세운 공천이 총선 참패를 불렀다"는 따끔한 질책도 나왔다.
황장수 미래경영연구소 소장은 이날 "저성장이 일반이 된 시대에 새누리당도 변해야 한다"면서 "여전히 창조 경제 같은 것으로 성장 동력이 생길 것처럼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새누리당의 부동산 부양책, 구조조정 지원책, 경제활성화 법안, 규제 프리존, 규제완화 원샷법, 노동 개혁, 담뱃값 인상, 4대 개혁, 동남권 신공항 등에 어떤 이들이 박수를 칠 것이라고 보는가"라면서 "새누리당을 대기업 소수 상층을 위한 금수저 정당이라고 느끼지 않겠는가"라고도 했다.
이어 황 소장은 "당 내부 권력 투쟁에 몰입하지 말고 정책과 비전이 있는 친서민 노선으로 수정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이현출 건국대학교 겸임 교수는 "계파 이익과 사리사욕만 챙기려 하면 국민이 외면하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총선 전 새누리당이 보인 모습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차기 전당대회와 차기 대권을 앞두고 전위대를 배치하는 식으로 공천을 했다"며 "그런 정당에 국민은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이어 그는 "정종섭 의원 말대로 가치와 정체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누가 정하는 것"이냐면서 "법인세나 세금 논쟁이 일었을 때 당내에서 치열한 토론을 해본 적이 있나. 어디서 누군가 정해주는 거 같은 것으로 (토론을 대체) 해버리지 않았나"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그중에서도 친박계가 당 전체를 청와대의 거수기처럼 운용하려 하는 것을 지적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교수는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주장이 나오면 그것에 대해서 치열하게 논의를 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당론 결정 과정은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는 통일된 결속력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이주영 정병국 김용태 의원 등 차기 전당대회 출마 희망자들이 대거 등장해 축사 형식을 빌어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비박계 대표 주자로 거론되는 정병국 의원은 "'봉숭아 학당'이라고 비판받던 최고위원회의가 (당을) 자기들만의 리그로 만들었다"면서 "이번에 비대위를 구성해 혁신하자는데 이 또한 우리들만의 리그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천박한 계파 싸움을 청산해야 한다"고 해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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